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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 과학 Feb 14. 2019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이유는 뭘까?



야생화를 전문적으로 촬영하는 사진작가나 식물 애호가들이 보고 싶어 하는 가장 극적인 장면은 무엇일까요? 꽃봉오리가 활짝 열리는 순간일까요? 열매 주머니가 탁 갈라지며 씨앗을 퍼뜨리는 순간일까요? 아니면 갈라진 아스팔트 사이를 뚫고 나오는 새싹일까요? 아마도 사진작가나 식물 애호가들에게는 엄동설한 눈 속에서 꽃을 피운 식물의 모습이 가장 극적인 장면일 것입니다. 몇몇 식물은 왜 그 추운 겨울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걸까요? 얼어 죽을 수도 있는데도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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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눈이 쌓인 한겨울. 깊은 산이라도 햇볕이 잘 드는 경사지를 보면 복수초가 눈을 뚫고 노란색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운이 엄청 좋거나 아니면 작정하고 몇 날 며칠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복수초는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입니다. 복수초는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우기 때문에 설연화(雪蓮花), 얼음 사이에서도 꽃이 피어 빙리화(氷里花), 설날 즈음에 꽃을 피워 원일초(元日草)라고도 합니다. 또 꽃이 황금색 잔과 비슷하게 생겨서 중국에서는 측금잔화(側金盞花)라고 합니다.



황금색 잔 모양을 하고 있어 측금잔화라고도 부르는 복수초



복수초라는 이름은 억울한 일에 대해 앙갚음하는 복수가 아니라 행복과 장수를 기원한다는 아주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꽃말도 식물 이름처럼 ‘영원한 행복’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새해에 복과 장수를 기원하며 복수초를 선물한다고 합니다. 꽃말 중에는 ‘슬픈 추억’도 있기도 한데 이것은 아마도 복수초의 영어 이름 ‘아도니스(Adonis)’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아도니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명계의 여왕 페르세포네의 사랑을 동시에 받은 미소년입니다. 그런데 아도니스가 멧돼지에 치여 죽게 되자 신들의 제왕 제우스가 아도니스에게 여름에는 지상 세계에서 아프로디테와 지내고, 겨울에는 지하 세계에서 페르세포네와 지내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슬픈 미소년의 이름이 복수초에 붙여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복수초는 왜 이렇게 이른 봄 아니 한겨울에 꽃을 피우는 것일까요? 복수초는 깊은 산뿐만 아니라 동네 야산에서도 볼 수 있는 비교적 흔한 식물입니다. 그런데 깊은 산 속에서 자라는 복수초는 다른 식물들이 모두가 잠자고 있을 때 눈 속을 뚫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씨앗을 퍼뜨리고 뿌리만 남긴 채 말라버립니다. 봄기운으로 눈이 서서히 녹으면 숲속의 많은 풀들이 앞을 다투어 잎과 줄기를 내밉니다. 또한, 나무들도 하나둘씩 기지개를 펴고 잎이나 꽃을 피웁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햇빛 쟁탈전이 벌어집니다. 나무들은 그나마 높은 곳에 잎이 있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합니다. 하지만 땅바닥에 가까운 풀들은 나무 그늘이 지면 햇빛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이럴 때 풀들이 살아남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나무가 잎이나 꽃을 피워 그늘이 지기 전에 빨리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른 봄 깊은 산 속 햇볕이 잘 드는 풀밭에 가 보면 복수초를 비롯해서 얼레지, 바람꽃 종류, 제비꽃 종류, 현호색 종류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습니다. 추위를 무릅쓰고 야생화 사진을 촬영하러 가는 이유가 여기 있지요. 이러한 야생화 촬영은 때를 놓치면 1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얼음 속에서 꽃을 피운 복수초.


그런데 유독 복수초와 앉은부채는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울 만큼 대담합니다. 눈이 녹지 않으면 햇빛과 자신의 몸속에서 나는 열을 이용해 눈을 녹이고 꽃줄기를 내고 꽃을 피웁니다. 다른 식물들과 싸움조차 하지 않고 서둘러 일 년을 마감하는 것이지요. 복수초와 앉은부채는 자신이 낸 열로 주변보다 5~7℃ 높여 눈을 뚫고 나온다고 합니다. 앉은부채는 천남성과의 여러해살이풀인데 열매를 감싸고 있는 불염포라는 것이 부채를 닮아 이런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앉은부채는 체온을 조절하는 것으로 알려진 식물입니다. 앉은부채도 복수초와 마찬가지로 햇빛 쟁탈전을 피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 눈이 녹지 않은 겨울에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좌) 눈 속에서 꽃을 피운 앉은부채 우) 꽃과 잎이 함께 나 있는 앉은부채



식물이 추위를 나는 방법

봄이 되면 개나리, 진달래, 목련, 벚나무 등은 잎보다 꽃을 먼저 피웁디다. 이에 질세라 다 말라죽은 것 같은 벌판에도 풀들이 파릇파릇 싹을 틔웁니다. 목련 같은 경우는 꽃이 피고 잎이 나오고 열매를 맺고 잎을 떨구고 나면 겨울눈을 만들어서 일 년 생을 마감합니다. 겨울눈 속에 봄에 필 꽃잎을 꼭꼭 숨겨 놓습니다. 겨울눈은 식물에게 솜이불 같은 존재입니다. 개나리, 진달래, 벚나무도 마찬가지입니다.




풀의 경우는 생장 주기에 따라 겨울을 나는 방법이 다릅니다. 한해살이풀은 봄에 싹이 트고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씨앗을 퍼뜨리고 죽습니다. 봄부터 살아서 겨울이 오기 전에 생을 마감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한해살이라고 합니다. 두해살이풀은 대개 씨앗이 싹이 튼 후 한 번의 겨울을 나고 이듬해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씨앗을 퍼뜨립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의 곡식인 벼는 늦봄에 심고 가을이면 열매인 벼를 거두어들입니다. 그러니까 한해살이풀인 셈이지요. 그런데 같은 곡식인 보리는 가을에 심고 싹이 난 채로 겨울을 납니다. 겨울을 난 보리는 봄부터 계속 자라 여름에 열매를 맺는데 우리가 그 열매인 보리를 거두어들입니다. 그래서 두해살이풀입니다. 보리는 추운 겨울을 견뎌야 이듬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한해살이 인 벼와 두해살이풀인 보리


김치의 주재료인 배추 같은 경우, 우리가 먹는 부분은 잎입니다. 김장을 하는 배추의 경우는 초가을에 심어 겨울이 들어서면서 포기 진 잎으로 김장을 담급니다. 그러나 배추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려면 겨울을 지나야 합니다. 두해살이풀이기 때문입니다. 배추는 잎을 이용하는 채소이기 때문에 꽃이 필 때까지 놔두지 않아 우리가 꽃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해살이풀은 겨울에도 뿌리가 땅속에 살아 있어서 매년 그 뿌리에서 싹이 트고 줄기가 나와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복수초 같은 풀이 여러해살이풀입니다. 겨울에 땅 위에 있는 잎은 모두 말라 죽지만 땅속의 뿌리는 살아서 겨울을 납니다. 나무의 경우는 겨울에도 땅 위의 부분인 줄기는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다만 잎을 모두 떨어뜨려 성장을 최소화하여 겨울을 나는 것이지요.




한해살이풀의 경우는 땅속에 씨앗을 떨어뜨려 씨앗 상태로 겨울을 납니다. 두해살이풀인 경우는 싹이 튼 다음 뿌리로 겨울을 나는 것도 있고 잎으로 겨울을 나는 것들도 있습니다. 잎으로 겨울을 나는 종류들은 대개 ‘로제트 모양’을 만듭니다. 로제트(rosette)란 장미꽃 모양이라는 뜻인데 뿌리에서 난 잎들이 서로 겹치지 않게 방사상으로 배열되어 있어 마치 장미 꽃잎처럼 나 있는 것을 말합니다. 민들레, 개망초, 방가지똥, 냉이 종류들이 이런 로제트 잎을 땅바닥에 바싹 붙이고 추운 겨울을 나는 풀들입니다. 기온이 낮고 바람이 많이 부는 겨울에는 지열을 쉽게 받고 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지면과 가까이 있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로제트로 추운 겨울을 나는 민들레



바닷가나 추운 지역에 사는 나무들은 높게 자라지 않고 방석처럼 낮게 서로 엉겨 자라 추위를 피합니다. 대개 바람이 부는 방향을 등지고 옆으로 자라는 것이지요. 지면과 가까우면 바람도 피하고 햇빛의 복사열도 더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 추운 지역에 사는 풀들은 빨리 생을 마감하면서 종족을 유지합니다. 짧은 여름 동안 꽃을 피우고 곤충의 도움을 받아 열매를 맺고 씨앗을 퍼뜨려 긴 겨울을 나는 것이지요. 또한, 갑작스러운 추위에 대비해 어떤 식물들은 세포 안에 인지질(분자 안에 인산이 들어 있는 복합 지질) 함유량을 늘리거나 당이나 아미노산 등 질소 함유 물질 등으로 만든 부동액을 세포에 분포시켜 얼지 않도록 합니다. 식물은 동물처럼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자기 자리에서 오랫동안 추위에 견디며 종족을 유지하며 살아갑니다.



백두산 천지 주변에서 사는 상록소관목인 노랑만병초.추운 지역에 살면서도 잎에 부동액이 들어 있어 겨울에도 잎이 얼지 않고 광합성을 할 수 있다.


자연 사진은 자연스러운 최고!

눈 속에서 당당하게 꽃을 피운 복수초나 앉은부채는 야생화 사진작가에게는 평생을 두고 만나보고 싶은 장면입니다. 하지만 추위를 무릅쓰고 산에 가서 눈 속에서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것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야생화 촬영이 취미인 필자도 한 번도 찍어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찍겠다는 욕심으로 눈을 함부로 헤집어 놓거나 잘 피어 있는 복수초 주변에 눈을 뿌리면 안 됩니다. 식물은 스스로 열을 내어 눈 속을 뚫고 꽃을 피웠지만, 인위적으로 눈을 뿌리면 준비가 안 된 식물은 정말 얼어 죽을 수 있습니다. 자연의 신비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면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참고 자료

『식물의 겨울나기』, 이성규, 김정명, 대원사

동아사이언스, http://dl.dongascience.com/magazine/view/S201508N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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