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윌리엄 톰슨 캘빈경을 비롯한 많은 물리학자들은 이제 물리학에서 밝혀내야 할 중요한 문제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사소한 문제 몇 가지만 해결되면 끝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알려진 근본적인 힘은 중력과 전자기력 두 가지뿐이었습니다. 그중 중력에 대해선 뉴턴이 아주 멋지게 해결해주었고, 전자기력도 패러데이와 맥스웰이 깔끔하게 정리하였습니다.
당시 해결해야 할 ‘사소한 문제’는 대략 세 가지 정도였습니다. 먼저 흑체 복사 문제가 있었고 다음으로 광전효과 그리고 마지막으로 러더퍼드의 원자 모형 문제였지요.
먼저 흑체 복사 문제를 들여다보겠습니다. 가령 빛을 비추면 그 빛을 모조리 흡수하는 물체 (흑체 black body)가 있다고 가정합니다. 빛을 흡수하면 흑체의 온도가 올라갑니다. 그러면 흑체는 다시 주변으로 전자기파, 즉 빛을 내놓습니다. 온도에 따라 가장 많이 내놓는 파장은 서로 다릅니다. 온도가 낮으면 진동수가 작은 쪽을, 온도가 높으면 진동수가 높은 쪽을 많이 내놓죠. 하지만 그렇다고 진동수가 다른 전자기파를 내놓지 않는 건 아닙니다. 쇠젓가락을 불에 달구면 처음엔 빨갛게 빛나지만, 온도가 올라가면 하얗게 빛납니다. 백열이라고 하지요. 하얗게 빛나는 이유는 빨간색부터 파란색까지 여러 진동수의 빛을 같이 내놓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자외선 등도 나오지요.
실제 흑체는 존재하지 않으나 그림처럼 흑체를 상상할 수 있다. 작은 구멍으로 들어온 빛은 나가지 못하고 흑체 안에서만 존재하게 된다. 빛이 계속 구멍을 통해 들어오면 흑체가 가열되고 전자기파를 내놓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빛의 진동수가 한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주 많은 쪽에서 아주 적은 쪽까지 무한대입니다. 따라서 흑체가 전자기파를 이 무한대의 영역 모두에서 내놓는다면 흑체가 발산하는 에너지가 무한대가 되어야 하는 곤란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실제론 그렇지 않다는 걸 다들 알지요. 들어가는 에너지가 일정한데 어떻게 나오는 에너지가 무한대가 되겠나요. 다들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막스 플랑크가 해답을 내놓습니다.
플랑크 상수(h)라는 값과 진동수를 곱한 값이 그 진동수에서 내놓을 수 있는 최소량이고, 그 양의 배수로만 에너지를 내놓을 수 있다고 선언한 겁니다. 식으로 쓰면 다음과 같습니다.
따라서 진동수가 높으면 내놓을 수 있는 에너지의 최솟값이 커지는데 그 값이 흑체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넘어버리면 내놓고 싶어도 내놓을 수 없게 되지요.
그런데 전자기파, 즉 빛은 파동이라 다들 여겼는데 파동이 입자처럼 최솟값을 가진다는 것이 여간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플랑크 자신도 이를 임시방편으로 여겼을 정도이지요. 이때 아인슈타인이 두 번째 사소한 문제인 광전효과를 해결하는데 이를 이용합니다.
광전효과란 빛이 금속의 표면을 때리면 전자가 튀어나오는 현상입니다. 전자가 빛 에너지를 흡수해서 원자핵의 인력을 뿌리치고 튀어 나가는 것이죠.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한 일이 발생합니다. 빛의 에너지는 두 가지에 의해 결정됩니다. 하나는 진동수고 다른 하나는 진폭입니다. 진동수가 많을수록, 진폭이 클수록 에너지가 큽니다. 또 진동수는 빛의 색으로 나타나고 진폭은 밝기로 나타납니다. 즉 파란색 빛은 빨간색 빛보다 에너지가 크고, 밝은 빛은 어두운 빛보다 에너지가 큰 것이죠.
그런데 광전효과 실험을 하다 보니 파란색 빛에서는 아무리 밝기가 약해도 전자가 튀어나오는데 빨간색 빛은 아무리 세기를 높여줘도, 즉 밝게 해줘도 전자가 튀어나오지 않는 현상이 발생하는 거죠. 게다가 파란색 빛에서 튀어나오는 전자의 속도는 밝기와 무관하게 항상 같았습니다. 밝기를 더 해주면 전자의 속도에는 변함이 없고 튀어나오는 전자의 개수만 늘어났던 거죠.
즉 빛의 진동수는 튀어나오는 전자의 속도에만 관여하고, 전자의 개수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또 진폭은 튀어나오는 전자의 개수에만 관여하고, 전자의 속도에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지요. 둘 다 전자에 에너지를 전달하는 것은 똑같은데 말이지요. 에너지를 파동의 형태로 전달하는 경우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건 말이 되질 않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여기서 빛이 입자라는 개념을 도입합니다. 즉 이전에는 진동수가 색을 결정한다고 여겼지만, 아인슈타인은 빛 입자(광자) 하나가 가지는 에너지에 따라 색이 결정된다고 주장한 거지요. 입자 하나가 가진 에너지가 크면 파란색, 작으면 빨간색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전자가 파란색 빛과 충돌하면 그만큼 큰 에너지를 가지니까 튀어 나가는 속도가 빠른 것이고, 빨간색 빛과 충돌하면 가질 수 있는 에너지가 적어서 튀어 나가는 속도가 느리다는 것입니다.
또 빛의 밝기는 진폭이 아니라 빛 입자의 개수에 의해 정해진다는 거지요. 그래서 밝은 빛은 빛 입자가 많은 것이니 더 많은 전자와 충돌해서 튀어 나가게 하고, 어두운 빛은 빛 입자의 개수가 적어서 튀어 나가는 전자의 개수도 적어진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광양자설이라고 합니다.
(광전효과 모식도- 왼쪽의 전극에서 발생한 빛이 렌즈를 통과해 오른쪽 빨간 금속에 닿으면 전자가 방출된다. 방출된 전자는 원의 가운데 전선에 가서 닿고 전체 회로에 전류가 흐르게 된다. 빛의 파장을 필터를 통해 조절하면 전자가 방출되는 파장의 한계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빛이 파동이라는 것은 이미 수천 번의 실험을 통해 확인되었습니다. 빛은 파동이 아닌 입자는 가질 수 없는 간섭이라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도 빛이 파동이 아니라고는 단정하지 못하고 파동의 성질도 가지면서 입자의 성질도 가진다고 했습니다. 이를 빛의 이중성이라고 하지요.
이를 바탕으로 프랑스의 물리학자 드 브로이는 빛이 파동이면서 동시에 입자라면 물질도 그렇지 않을 것이 무엇이냐며 물질도 동시에 파동의 성질을 가진다고 주장하며 물질파 이론을 제안합니다.
결국, 물질도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증명됩니다.
이즈음 닐스 보어는 다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 중이었습니다. 러더포드의 원자모형 문제입니다. 뉴질랜드 출신의 과학자 러더포드는 실험을 통해 원자 내부는 중심에 플러스 전기를 띄는 원자핵이 있고, 그 주변을 마이너스 전기를 가지는 전자가 돌고 있다고 밝혀냈습니다. 마치 태양 주위를 행성들이 도는 것과 같다고 해서 이를 태양계 모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모델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맥스웰이 멋지게 만든 전자기 방정식에 따르면 전자가 원자핵 주변을 원운동을 하게 되면, 전자기파의 형태로 에너지를 내놔야 한다는 것이죠. 실제로 전기를 띠는 물체를 원운동을 시키면 어떤 경우든 전자기파를 내놓습니다. 모든 실험에서 다 확인이 되지요. 그런데 태양계 모델에서 전자는 전자기파를 내놓지 않는 겁니다. 사실 전자기파를 내놓아도 문제가 되는 것이 에너지를 내놓으면 자신이 가진 에너지가 줄어들고, 이어서 원자핵 주변을 도는 속도가 느려지고, 결국 원자핵에 충돌해버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현실의 전자는 전자기파를 내놓지 않아서, 원자가 붕괴되지도 않고 우리도 무사한 것인데, 이게 기존 이론으로는 설명이 되질 않는 것이죠.
닐스 보어가 그 해결책을 내놓는데 막스 플랑크처럼 선언을 하지요. “전자는 아무렇게나 에너지를 내놓거나 흡수하지 못한다. 내놓거나 흡수할 수 있는 에너지의 최솟값이 있고 이의 배수로만 내놓고 흡수할 수 있다.” 그래서 원자핵 주변을 도는 전자는 자신이 가진 에너지가 내놓을 수 있는 에너지보다 적기 때문에 내놓지 못하고 그냥 도는 거라고 주장합니다.
당시로선 아니 그렇게 자기 마음대로 주장해도 되냐고 생각될 만큼 이상한 주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닐스 보어의 이론에 따라 계산을 했더니 실제로 러더퍼드의 원자 모형 문제도 해결이 되면서 당시 이미 관측되었던 수소원자의 선 스펙트럼도 설명이 아주 잘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19세기 말에 인지한 세 가지 사소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성공했는데 더 큰 난제들이 남게 되었습니다. 빛과 물질이 모두 파동이면서 동시에 입자인 이중성을 가진다는 이상한 상황에 맞부딪친 것이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태어난 것이 양자역학입니다. 사소하다고 여겼던 그곳에서 20세기 양자 혁명이 시작되었던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