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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 과학 Jun 02. 2021

[제2의 몸] 심장


고대 이집트인들은 미라를 만들 때, 사후 세계에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장기를 따로 꺼내 카노푸스의 단지(Canopic jars)라는 이름의 항아리에 따로 보관했습니다. 보통 미라 한 구당 카노푸스의 단지는 네 개가 사용되었는데, 각각 위, 간, 폐, 창자를 보관하였습니다. 하지만 단 하나, 심장만큼은 꺼내지 않고 그대로 몸 속에 둔 채 미라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생전의 악업이 심장에 모두 쌓이기에, 사후 세계에 들기 전, 엄중한 심판관에게 그 몸의 주인이 지은 죄를 심장이 고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Walters Art Museum (Baltimore, US) [Public Domain/Wikimedia Commons]


심장을 특별하게 여긴 이들은 비단 이집트인들만이 아닙니다. 아주 오랫동안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심장은 여타의 다른 장기에 비해 더 중요한 존재로 인식되어 왔고, 종종 간이나 뇌와 같은 다른 장기에게 그 중요성이 밀리더라도 적어도 쿵쿵 뛰는 심장의 박동만큼은 생과 사의 여부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으로 인식되어온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심장의 질환이나 이상은 곧 죽음과 동의어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했습니다. 심장이 정상적으로 박동하여 제대로 피를 뿜어내지 못하면, 우리 몸의 모든 조직들은 산소와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해 서서히 죽어갑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는 심장을 수술하려면 박동을 아예 멈춰야 하는데, 우리의 뇌는 혈류가 공급되지 못하면 단 5분을 넘기지 못하고 영구적으로 망가져 버리며, 시간 차는 있어도 신체의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심장을 대신해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첫 시도는 자연의 방식을 모방하는 데서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외과의사 C. 월튼 릴러하이(Clarence Walton Lillehei, 1918~1999)는 인간을 비롯한 포유류의 임신 과정 시 일어나는 혈액 순환 방식에 주목했습니다. 태아는 물로 된 양수로 둘러싸여 자랍니다. 다시 말해 호흡을 통해 산소를 공급받을 수 없는 환경에 놓여 있지요. 하지만 태아가 양수에 의해 질식하는 일은 없습니다. 엄마가 폐를 통해 받아들인 산소를 탯줄을 통해 전달받고, 세포 호흡을 통해 만들어진 이산화탄소는 다시 엄마의 혈액으로 내보내며 살아가니까요. 이를 전체적으로 놓고 본다면, 아기에게도 심장이 있고, 심장이 쿵쿵 뛰면서 혈액을 자신의 몸으로 밀어내고 있지만, 그 혈액 속에 든 산소와 영양분은 스스로 호흡하거나 섭취한 것이 아니라 엄마의 순환계를 통해 받아들인 것입니다. 즉, 엄마의 심장은 자신의 신체뿐 아니라, 그 안에 자리잡은 또 다른 심장을 가진 아기의 몸 전체까지 책임을 지고 있는 상태인 것이죠.  


그렇다면, 혈관계만 적절히 이어준다면 하나의 심장이 자신의 몸뿐 아니라, 또다른 몸의 혈액 순환까지도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는 조절 교차순환(controlled cross-circulation)이라는 개념으로, 릴러하이는 먼저 개를 가지고 실험해 보았습니다. 두 마리의 개를 마취시키고, 둘의 혈관을 이어 서로 피가 통하도록 만든 뒤, 한쪽 개의 심장 주변의 혈관들을 묶어서 심장이 피를 뿜어내지 못하게 한 채로 결과를 관찰한 것이죠. 초기 몇 번은 실패했지만, 결국 그는 이 실험을 통해 두 마리 개의 혈관계를 이었을 때 한쪽 심장만 박동하더라도 두 마리 모두 혈액 순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냈습니다. 이제 남은 건, 사람에게도 이런 시도가 통할지의 여부였지요.  


조절 교차순환 기법이 처음으로 사람에게 적용된 것은 1954년 3월이었습니다. 심실중격결손(Venticular Septal Defect)으로 심부전 증세를 보이는 갓 돌이 지난 어린 남자 아기였습니다. 심장을 수술할 동안 아이의 혈액순환을 책임져줄 이는 아이의 아버지였습니다. 릴러하이는 수백 마리의 개를 대상으로 실험했던 방법을 그대로 아이와 아버지에게 시도했습니다. 이 아기는 엄마의 심장과 아빠의 심장으로부터 (문자 그대로) 모두 피를 받은 아기가 되었습니다. 수술 자체는 성공했습니다. 아빠의 심장이 아기의 심장 대신 아기의 몸에 혈액을 순환시키는 동안 릴러하이는 아기의 심장에 생긴 구멍을 완전히 메꿀 수 있었으니까요. 안타깝게도 아기는 2주 뒤 수술 합병증으로 얻은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가능성은 여전히 남았기에 이 방법은 이후 몇 년간 45명의 환자에게 더 시도되었고, 이 중 28명은 더 긴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기법을 계속 시도하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너무 위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 수술을 통해 꼭 심장이 뛰지 않더라도 혈액순환만 제대로 된다면 환자의 생존과 회복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에 살아있는 사람의 심장 역할을 대신해 줄 인공심폐기의 개발에 더욱 박차가 가해지기 시작합니다. 


사실 인공심폐기는 이미 1953년 미국의 외과의사 존 기번(John Gibbon, 1903~1973)에 의해 시도된 바 있었습니다. 환자의 정맥에 튜브를 연결해 혈액을 빼내 이를 산소가 가득한 실린더에 통과시켜 산소를 머금게 한 뒤, 이를 다시 환자의 동맥에 펌프를 통해 주입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보통의 혈액은 혈관이 아닌 플라스틱이나 금속 성분과 접하게 되면 굳어서 혈전이 생기기에 이를 방지하는 혈전방지제의 역할이 여기서 매우 중요했습니다. 처음 개발된 인공심폐기는 무게가 1톤이나 되는 거대한 기계였고, 혈전이 만들어지는 것을 통제하기 어려워 수술의 심각한 부작용 중 하나인 폐동맥색전증으로 사망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후 사람을 보조심장으로 사용하는 릴러하이의 방식보다는 기계펌프를 이용하는 기번의 방식이 의학계에서는 더 대세로 받아들여졌고, 이에 인공심폐기 역시도 개량과 발전을 거듭해 현재는 심장 수술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보조장치로 떠올랐습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해마다 100만건 이상의 심장수술이 행해지고, 심장수술 환자의 사망률을 극적으로 떨어뜨릴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인공심폐기의 개발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인공심폐기의 개념도. 왼쪽 위부터 혈액펌프, 혈액산소화기, 저장소로 구성되어 있다

by Blausen Medical Communications, Inc.[CC BY 3.0, Wikimedia Commons]


하지만 인공심폐기는 어디까지나 심장 수술을 위한 일시적인 보조장치일 뿐, 심장 그 자체의 기능을 대신하는 제2의 심장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현실적으로 회복 불가능한 심장병을 지닌 이들에게 가장 큰 효과를 보이는 방식은 심장이식이지만 - 현재 심장이식 환자의 3년 생존율은 90%를 넘습니다 - 이식할 심장을 구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심장은 아직 박동이 멈추지 않은 상태에서만 이식이 가능하기에 대부분의 사체 기증자들, 즉 완전히 심장이 정지된 상태의 사람들은 심장 기증자가 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심장이식은 죽은 이로부터 받아야만 하나 그 기증자가 완전한 사망 상태여서는 안 된다는 이중 조건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심장 기증자는 반드시 건강한 뇌사자여야만 해서 다른 장기에 비해 더욱 더 대기 시간이 길 수밖에 없습니다. 심장이식은 누군가가 죽어야만 내가 살 수 있다는 생명 교환의 1:1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분야가 바로 인공심장입니다. 


인공심장에 대한 연구는 이미 1950년대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1973년 미국 유타 대학교 연구팀은 인공 심장을 단 송아지를 297일 동안 생존시키는데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유타대의 로버트 자빅 박사는 1983년, 세계 최초로 자신의 이름을 따 자빅-7(Jarvik-7)이라 이름붙은 1세대 인공심장을 환자에게 이식합니다. 최초의 인공심장 수혜자는 112일을 더 살았고, 추가로 이식받은 이들 중 가장 오래 생존한 이는 620일간의 삶을 연장받았습니다. 하지만 자빅-7을 제대로 구동하기 위해서는 170kg에 달하는 무게를 지닌 커다란 펌프 장치가 필요했기에 환자는 인공심장을 달고 사는 것이 아니라 인공심장에 달린 상태로 인공심장에 달린 줄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최초의 인공심장 Jarvik-7 [Public Domain/Wikimedia Commons]


정말로 ‘심장’처럼 몸 안에 넣은 상태로 이동이 가능한 최초의 인공심장이 등장한 것은 2001년의 일입니다. 이후 전세계의 연구진에 의해 13종의 각기 다른 인공심장이 개발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의료용 실리콘을 3D프린터를 이용해 찍어내어 환자의 원래 심장의 크기와 모양이 비슷하고 물성도 말랑말랑하여 심장과 유사한 인공심장을 개발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인공심장은 완전한 심장의 대체품이라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생체조직이 아닌 외부물질과 혈액이 섞이면서 생기는 혈전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고, 평생 25억번 이상 박동이 가능한 심장에 버금갈 만큼 강한 내구성을 지닌 인공심장은 개발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현재 인공심장의 주요한 역할은 이식이 가능한 생체 심장이 나타날 때까지 심장의 기능을 대신하는 한시적 심장 대체품입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심장 이식 대기 기간이 길어지고, 인공심장의 성능이 개선됨에 따라 인공심장을 달고 4년 이상 생존하는 사람들이 나타남으로 인해 인공심장의 생존 한계 기간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중입니다. 앞으로 그 한계 기간이 인간이 타고난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참고 문헌

1. C. 월튼 릴러하이 https://en.wikipedia.org/wiki/C._Walton_Lillehei

2. The first open-heart repairs using extracorporeal circulation by cross-circulation : A 53-year follow up , James H. Moller etc. Ann Thorac Surg. 2009:88

3. 심실중격결손, 서울아산병원 질환백과 : http://m.amc.seoul.kr/asan/mobile/healthinfo/disease/diseaseDetail.do?contentId=31633&diseaseKindId=C000010 

4. Evolution of Artificial Hearts : An overview and history, Sanna Khan & Waqas Jehangir, Cardiol Res. 2014 Oct:5(5)

5. [심장:은유, 기계, 미스터리의 역사], 샌디프 자우하르 지음/서정아 옮김, 글항아리사이언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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