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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 과학 Feb 28. 2017

루돌프 디젤,
미스터리 속으로 사라지다

루돌프 디젤의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

독일 공학자이자 발명가인 루돌프 디젤은 디젤 엔진 발명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지만 하루아침에 사라진 그에 대한 수수께끼로도 사람들에게서 계속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의 죽음의 미스터리를 소개합니다.



#사건의 정황

루돌프 디젤은 이미 30대 중반에 미국과 독일에서 디젤 엔진 관련 특허를 등록하는 등 그의 생의 중요한 과학적 업적을 이룹니다. 그 이후 디젤은 디젤 엔진을 활용한 사업 영역을 확장하려고 하였고 동시에 디젤 엔진의 효율을 더 개선하고자 하였습니다.

1913년 9월 29일, 50대 중반이던 루돌프 디젤은 벨기에 앤트워프에서 영국 런던으로 향하는 증기선 ‘드레스덴’호를 타게 됩니다. 배에서 그는 드레스덴호의 선주인 조지 카렐즈와 즐거운 분위기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 밤 10시에 자신의 선실로 돌아갔습니다. 선실로 가면서 그는 아침 6시15분에 모닝콜을 해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목격한 루돌프 디젤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식사에 디젤이 나타나지 않자 사람들이 그의 선실을 찾아갔지만 방은 비어 있었습니다. 침대에는 잠을 잔 흔적이 없었으나 잠을 자려고 준비한 것 같이 잠옷은 펼쳐져 있었고 시계는 침대 옆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선장이 배 수색을 명하였으나 결국 그를 찾아내지 못하였습니다. 단지 그의 코트와 모자가 갑판 난간 아래에 깔끔하게 접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0일 후에 네덜란드 선박 코어트젠호의 선원들이 노르웨이 근처의 북해에서 시체 한 구를 발견하게 됩니다. 시체는 부식이 많이 진행되어 누구인지 식별하기 어려웠습니다. 기상상태가 좋지 않았고 선박에 여유 공간도 없어서 선원들은 시체를 수습하기에는 어렵다고 판단하여 시체 옷가지에서 지갑, 안경 케이스, 신분증 등 개인 소지품만을 수거하고 시체는 다시 바다로 돌려놓았습니다.

10월 13일에 루돌프 디젤의 막내아들인 유진 디젤이 그 소지품이 자신의 아버지 것이 맞는다고 확인하였고, 이로써 당국은 자살로 사건을 종결지었습니다.

하지만 자살이라는 당국 설명에도 여전히 살인을 의심하는 의견들이 지속적으로 나오면서 루돌프 디젤의 죽음은 사람들에게 미제 사건으로 기억되게 되었습니다.
그럼, 당국은 어떤 근거로 자살로 규정한 것일까요? 그리고 살해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의 근거는 무엇일까요?



#루돌프 디젤의 자살 결론의 근거

 루돌프 디젤이 나오는 독일 우표


루돌프 디젤의 자살을 믿는 사람들은 그가 2013년 9월 29일 밤, 영국해협을 지나고 있는 드레스덴호 갑판 난간에서 바다로 뛰어내려 자살한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갑판 난간에 가지런히 놓인 코트와 모자가 디젤이 그곳에서 뛰어내린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북해에서 발견한 시체에서 나온 개인 소지품이 루돌프 디젤의 것으로 확인 되었으니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살 동기도 충분하였다고 믿었습니다. 디젤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고 경제적으로도 위기이었다는 점입니다. 루돌프 디젤은 30대 중반에 디젤 엔진 특허를 따냄으로써 큰 부자가 될 기회가 있었으나 특허 관련 법정싸움을 하게 되고 돈 관리와 투자에는 미숙하여 많은 돈을 잃었습니다. 또한 디젤 엔진 확산도 기술 적용에 시간이 소요되어 디젤 엔진의 본격적인 사용은 그의 사후에나 가능하였습니다.

루돌프 디젤은 드레스덴호를 타기 며칠 전에 부인 마사 디젤에게 가죽 상자를 건네면서 잘 지키라는 말과 함께 열어보지 말라고 일렀습니다. 루돌프 디젤이 행방불명 된 이후에 열게 된 상자에는 20만 마르크가 현금으로 들어있었고, 여러 통장 잔고가 비어있다는 은행 증명서가 들어있었습니다.

통장이 비어있는 상태에서 그가 감당할 수 없는 큰 금액의 이자 상환일이 그가 죽은 직후인 10월 1일로 다가오고 있었다는 것도 또 다른 사유로 거론되었습니다.


#루돌프 디젤의 죽음과 관련한 음모설


1906년에 만들어진 디젤 엔진

하지만 루돌프 디젤의 자살 결론은 결국 시체 확인이나 부검 없이 정황상 증거로만 결정되었기에 살해 의심을 잠재우지는 못하였습니다.
디젤의 죽음을 살인 사건이라고 규정하는 사람들의 논리에는 음모설과 관련이 있습니다.

루돌프 디젤이 사라진 선실에서 잠 잘 준비를 한 흔적이 있을 뿐만 아니라 선실로 오기 전에 모닝콜을 요청한 것이 자살할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선실에서는 일기장이 발견되었는데 실종된 당일 페이지에 작게 십자가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자살을 할 사람이라면 유언장이 있어야 하는데 그 대신 남겨진 작은 십자가가 의구심을 키웠습니다.

음모론이 나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루돌프 디젤이 마지막 여정으로 영국에 가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디젤이 영국으로 가기로 한 것은 영국 해군성 초청으로 사업상 미팅을 위한 것인데 영국의 기업들과 디젤 엔진 사업 논의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디젤 입장에서는 조건에 따라서는 기술을 전격적으로 영국에 팔 수 있었던 형편이었습니다. 시기적으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1년 전인 시점이라 이미 독일과 영국은 갈등 국면을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영국과 디젤은 잠수함 개발에 대한 논의를 할 의사가 있었기에 독일 입장에서는 기술 유출을 막을 필요가 있어 살해를 했다는 의견입니다. 독일은 당시 디젤 엔진을 U 보트에 적용하려고도 했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음모설은 디젤은 일찌감치 석유 연료가 환경 문제를 일으킬 것을 비판적으로 인식하여 가급적 적은 석유 연료로 최대한의 에너지를 활용 가능하도록 엔진을 효율화하는데 매진하였고 석유 연료가 아닌 대체 연료 사용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당시 주로 사용하던 증기기관은 연료의 실질적인 에너지양의 1/10만 활용 가능할 정도로 비효율적이었기에 디젤의 주장과 그의 엔진 효율화 노력은 기존 증기기관 업계와 석유 관련 산업에는 위협이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에 이 업계의 음모로 목숨을 잃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결국 루돌프 디젤의 자살을 목격한 사람이 나오지 않았고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의 죽음에 대한 명확한 결론은 영원히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한 한 가장의 단순한 자살일 수도 있는 죽음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죽음에 다양한 음모설이 제기되는 것은 그가 지닌 기술이 시대를 변화시킬 수도 있었다는 사실 때문일 것입니다.

즉 그의 죽음과 관련한 음모설은 루돌프 디젤, 그의 시대적 가치의 반증인 셈입니다.



[참고 자료]


Wikipedia: Rudolf Diesel
https://en.wikipedia.org/wiki/Rudolf_Diesel

The Mysterious Death of Rudolf Diesel
http://www.newhistorian.com/the-mysterious-death-of-rudolf-diesel/4932/

Inventor Rudolf Diesel Vanishes
http://www.history.com/this-day-in-history/inventor-rudolf-diesel-vanishes


[이미지 저작권 표시]


최상단 이미지: 디젤 엔진의 원형

Diesel's_prototype_engine.jpg by Imotorhead64, Creative Commons Attribution-Share Alike 4.0 International


1906년에 만들어진 디젤 엔진

Dieselmotor_vs.jpg by Flominator, 
Creative Commons Attribution-Share Alike 3.0 Unpor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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