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라는 이름의 처세

왜 우리는 괴담 앞에서 서늘해지는가

by 정명

1. 관대하지 않은 사회와 생존의 공포


현대 한국사회는 단 한 번의 오판(誤判)조차 허용하지 않는 거대한 검열의 장이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며, 그 선택이 나를 나락으로 밀어 넣을지 모른다는 실존적 공포 속에 살아간다. 실수는 곧 낙인이 되고, 낙인은 곧 사회적 죽음을 의미한다. 이 비관대한 시스템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긴장감은 처세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지만, 그 본질은 짐승이 포식자 앞에서 느끼는 원초적인 공포와 닮아 있다.


내가 지금 베푸는 호의가 훗날의 올가미가 될지, 나의 재능이 누군가의 살의를 깨울지 알 수 없는 안개 속을 걷는 기분. 이 불투명한 생존 게임의 감각이 바로 우리가 괴담을 읽을 때 느끼는 그 '서늘함'의 실체다.


2. 박이전(博異傳) '노승' 에피소드의 해부

당나라 설종(薛綜)이 기록한 기이한 서사집 '박이전(博異傳)'에는 이러한 공포의 원형이 담겨 있다. 산속에서 정체불명의 존재를 마주한 노승은 그것을 구원해야 할 '천사'로 믿고 자비를 베푼다. 노승은 자신의 도덕적 신념에 따라 최선의 선택을 내렸지만, 그 결과는 참혹한 파멸이었다.


여기서 전율이 느껴지는 지점은 악의 사악함이 아니다. 선(善)과 악(惡)이 도저히 분간할 수 없게 설계된 세계의 '악의성' 그 자체다. 노승은 최선을 다했지만, 세계는 그에게 오판의 책임을 물었다. 이는 정보의 비대칭성 속에서 단 한 번의 실수로 평판이 무너지고 사회적 사형을 선고받는 현대인의 실존적 불안과 소름끼치도록 닮아 있다.


3. 괴담의 서늘함과 현실의 비린내

우리가 고전 괴담을 읽으며 느끼는 서늘함은 허구의 귀신이 주는 공포가 아니다. 그것은 "나 역시 노승처럼 단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현실적 자각에서 오는 통찰이다. 누군가를 돕기 위해 내민 손이 성추행의 증거가 되고, 선의로 건넨 조언이 갑질의 기록이 되는 시대. '박이전' 속 노승이 마주했던 '천사인가 악마인가'의 딜레마는 이제 2026년을 사는 우리 모두의 일상이 되었다.


4. 맺음말: 비린내 나는 진실을 응시하라

선의가 파멸의 씨앗이 되고, 진실이 가죽 속에 숨겨진 시대다. 이 기록은 누군가에게 불편한 비린내를 풍기겠지만, 그것이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의 물성(物性)이다. 관대하지 않는 세계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처세는 눈 앞의 불가해함을 피하지 않고 응시하는 것 밖에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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