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령만 기다리는 흙인형의 비극

골렘과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by 정명

​1. 입은 있지만 말하지 않는 괴물

​골렘은 랍비가 강가 진흙을 빚어 주술로 생명을 불어넣은 인형이다. 이 괴물의 특징은 '자아(Ego)'가 없다는 것이다. 말을 할 수도 없고, 스스로 생각할 수도 없다. 오직 주인이 내린 명령을 수행할 뿐이다. "물을 길어오라"고 하면 홍수가 날 때까지 물을 붓고, "지키라"고 하면 상대를 죽일 때까지 팬다.

​골렘의 이마에는 '진리(Emeth)'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여기서 첫 글자를 지워 '죽음(Meth)'으로 만들면 흙으로 돌아간다. 골렘이 무서운 건 악한 마음을 품어서가 아니다. '마음'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판단하지 않는 절대적인 복종, 그것이 통제 불능의 재앙을 부른다.


​2. 한나 아렌트와 생각 없음의 죄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 학살의 실무 책임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보며 충격을 받았다.

그는 뿔 달린 악마가 아니었다. 너무나 평범하고, 가정적이며, 심지어 성실한 공무원이었다.

그는 법정에서 이렇게 항변했다.

"나는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나는 내 의무를 다했습니다."

​아렌트는 이를 보고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정립했다.

거창한 악의가 세상을 망치는 게 아니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를 멈춘 태도", "명령의 윤리적 의미를 고민하지 않는 무사유(Thoughtlessness)"가 평범한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

생각하지 않는 성실함, 그것은 죄악이다.


​3. "시키니까 했는데요"

​회사에는 수많은 골렘들이 걸어 다닌다.

우리는 그들을 '성실한 김 부장', '충직한 박 과장'이라 부른다.

그들은 위에서 까라면 깐다. 토를 달지 않는다.

​"이번 구조조정 명단 작성해."

"네, 알겠습니다." (동료의 가족이 굶든 말든, 엑셀 칸을 채운다.)

"이 불량 부품, 그냥 덮고 출고해."

"네, 알겠습니다." (소비자가 다치든 말든, 결재를 올린다.)

​그들은 자신이 나쁜 짓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회사를 위해 헌신한다고 믿는다.

문제가 터지면 그들은 억울해하며 아이히만처럼 말한다.

"저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제 권한이 아니었습니다."

​사무실의 진짜 공포는 사이코패스 상사가 아니다.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전혀 고민하지 않는' 수많은 예스맨들이다.

그 영혼 없는 근면 성실함이 회사를 망치고, 동료를 죽이고, 사회를 병들게 한다.


​4. 멈추어 질문하라

​회사는 당신에게 골렘이 되기를 요구한다.

"생각은 내가 할 테니, 너는 손발만 움직여."

​하지만 거부해야 한다.

이마에 박힌 명령어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순간, 당신은 인간이 아니라 흙덩어리가 된다.

​상사가 부당한 지시를 내릴 때, 혹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비윤리적인 일이 벌어질 때.

잠시 멈추고(Stop), 생각(Think)해야 한다.

"이게 옳은가? 이 행동 끝에 무엇이 있는가?"

​비록 밥줄 때문에 거창하게 저항하진 못할지라도, 최소한 마음속으로라도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작은 회의감, 그 불편한 망설임만이 당신이 골렘이 아님을 증명한다.

생각하라. 생각하기를 멈추는 순간, 우리는 모두 공범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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