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렌과 아도르노의 '문화 산업'
1. 뱃사람을 홀리는 노래
바다의 마녀 사이렌은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과 새의 몸을 하고 있다. 그녀들은 암초 위에 앉아 지나가는 배를 향해 노래를 부른다. 그 선율이 너무나 감미롭고 환상적이어서, 뱃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홀린 듯 바다로 뛰어든다. 결국 배는 암초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고, 선원들은 물귀신이 된다. 사이렌의 노래가 무서운 이유는, 그것이 '망각'을 선물하기 때문이다.
노래를 듣는 순간 선원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목적도, 현재의 파도가 위험하다는 사실도 잊어버린다. 오직 그 쾌락의 소리에만 집중하다가 스스로 파멸을 맞이한다.
2. 아도르노와 붕어빵 찍어내기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현대의 TV, 영화, 대중가요를 '문화 산업(Culture Industry)'이라 부르며 맹비난했다. 그는 대중문화가 우리에게 진정한 휴식을 주는 게 아니라, 우리를 '생각 없는 바보'로 만든다고 보았다.
"현대인의 여가 시간은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한 시간일 뿐이다."
힘든 노동을 끝낸 사람들은 복잡하게 생각하기를 싫어한다. 그래서 시스템은 그들에게 아주 단순하고 자극적인 콘텐츠(사이렌의 노래)를 제공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며 낄낄거리고 현실의 고통을 잠시 잊지만, 그 과정에서 비판적인 사고력은 거세당한다.
결국 우리는 퇴근 후에도 시스템이 주입하는 영상을 소비하며, 내일 다시 출근할 힘을 얻는 배터리 충전 신세가 된다.
3. 새벽 2시의 푸른 불빛
밤 12시, 내일 출근을 위해 자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나는 불 꺼진 방에서 스마트폰을 켜고 누워 있다.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 넷플릭스 시리즈... 15초짜리 자극적인 영상들이 내 엄지손가락을 타고 뇌를 강타한다.
"이것만 보고 자야지."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새벽 2시다. 눈은 뻑뻑하고 머리는 멍하다. 그런데도 멈출 수가 없다.
이것은 현대판 사이렌의 노래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 미래에 대한 불안, 공허함. 이 끔찍한 현실을 잊게 해주는 마약 같은 도파민.
나는 침대라는 작은 배 위에서, 스마트폰이라는 암초를 향해 스스로를 던지고 있다.
화면 속 사람들은 맛있는 걸 먹고, 명품을 사고, 춤을 춘다. 나는 그 화려한 가짜 인생을 멍하니 구경하며 내 진짜 인생(수면 시간과 건강)을 갉아먹는다. 아도르노의 말처럼, 나는 쉬고 있는 게 아니다. 내 뇌를 마비시켜 내일의 노동을 견딜 수 있게 '마취'하고 있을 뿐이다.
4. 돛대에 몸을 묶어라
신화 속 오디세우스는 사이렌의 유혹을 이기기 위해, 부하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고 자신의 몸을 돛대에 꽁꽁 묶었다. 그는 노래를 듣고 싶어 미쳐 날뛰었지만, 결박된 밧줄 덕분에 살았다.
우리에게도 밧줄이 필요하다.
퇴근 후, 습관적으로 켜는 스마트폰을 내려놓을 결박.
알고리즘이 떠먹여 주는 영상 대신, 심심하고 지루한 침묵을 견딜 수 있는 인내심.
당신이 쇼츠를 넘기는 그 순간, 당신의 시간은 삭제되고 있다.
타인의 삶을 구경하느라 당신의 삶이 난파되고 있다.
지금 당장 그 푸른 불빛을 꺼라.
그리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오롯이 당신 자신의 숨소리를 들어라.
지루함만이, 사이렌의 노래를 멈출 수 있는 유일한 해독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