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귀신과 레비나스의 '얼굴'
1. 표정이 없는 공포
깊은 산속, 나그네가 묘한 사람을 만난다. 뒤를 돌아본 그의 얼굴에는 아무것도 없다. 눈도, 코도, 입도 없는 매끈한 살색의 달걀 같은 형상. 바로 달걀귀신이다.
이 귀신이 무서운 이유는 흉측해서가 아니다.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웃고 있는지, 화를 내는지, 슬퍼하는지 알 수 없다. 소통이 불가능한 존재, 나의 감정을 전달할 수도 없고 상대의 감정을 읽을 수도 없는 절대적인 '익명성'. 그것이 인간이 느끼는 원초적인 공포다. 달걀귀신은 귀신 중에서도 가장 한이 깊은 귀신이라 한다. 자손이 없어 제사를 지내줄 사람이 없는, 즉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기억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고독한 영혼들이 뭉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2. 레비나스와 얼굴의 윤리
프랑스 철학자 레비나스는 "타인의 얼굴(Visage)이 곧 윤리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누군가의 눈을 보고, 표정의 떨림을 볼 때 비로소 그를 '살아있는 인간'으로 느낀다. 그때 "이 사람을 해치면 안 된다"는 윤리적 호소(Epiphany)를 듣게 된다.
반대로 말하면, 얼굴을 지우면 살인이 쉬워진다.
전쟁터에서 적군을 '괴물'이나 '타겟'으로 부르고, 사형수의 얼굴에 두건을 씌우는 이유다. 얼굴(인격)을 지워버려야 죄책감 없이 도구로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레비나스가 보기에 얼굴이 없는 사회는, 윤리가 작동하지 않는 야만의 사회다.
3. 김 대리는 언제든 교체 가능하다
출근하는 순간, 우리는 얼굴을 반납한다.
회사라는 시스템은 '나'라는 고유한 인간(얼굴)을 원하지 않는다.ㅈ그들은 '마케팅팀 대리', '영업팀 과장'이라는 '가면(Persona)'이 필요할 뿐이다.
우리는 가면을 쓰고 일한다.
아파도 안 아픈 척, 화가 나도 괜찮은 척. 내 진짜 얼굴(감정)은 매끈한 달걀처럼 지워버리고, 회사가 지급한 '친절한 사원'이라는 가면을 쓴다.
상사가 나에게 막말을 퍼부을 수 있는 이유도 내 얼굴이 지워졌기 때문이다. 그는 '나'라는 사람이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 보는 게 아니라, 월급 주면 돌아가는 '업무 머신'으로 보기 때문에 윤리적 거리낌이 없다.
더 서글픈 건 우리가 사라진 뒤다.
내가 퇴사하거나 과로로 쓰러져도, 회사는 슬퍼하지 않는다.
"사람인에 공고 올려. 다음 사람 뽑아."
일주일이면 내 자리는 새로운 달걀귀신으로 채워진다. 책상은 그대로고, 모니터도 그대로인데, 앉아있는 사람만 바뀌었다. 아무도 위화감을 느끼지 못한다.
나는 철저하게 '대체 가능한 부속품'이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4. 가면을 벗는 시간
달걀귀신이 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퇴근 후에라도 내 얼굴을 찾는 것이다.
직함, 연봉, 회사의 평판.
이 껍데기들을 다 떼어내고 거울을 봐라.
거기에 무엇이 남았는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면, 당신은 이미 달걀귀신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회사에서는 어쩔 수 없이 가면을 쓰더라도, 가면이 내 피부가 되게 놔두지는 마라.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 짓는 미소, 맛있는 것을 먹을 때의 찡그림, 부당함에 분노하는 눈빛.
그 사소한 표정들이 당신이 부속품이 아니라 '고유한 인간'임을 증명하는 마지막 보루다.
우리는 회사원(Company Man)이기 이전에, 얼굴을 가진 사람(Human)이다.
그 사실을 잊는 순간, 우리는 영원히 기억되지 않는 달걀귀신이 되어 빌딩 숲을 떠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