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두사와 사르트르의 '지옥'
1. 눈을 마주치면 끝장이다
고르곤의 세 자매 중 막내인 메두사는 저주받은 괴물이다. 머리카락은 꿈틀거리는 뱀이고, 그녀의 가장 무서운 무기는 바로 '눈'이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생명체는 그 즉시 생명력을 잃고 차가운 돌덩이로 변해버린다. 영웅 페르세우스조차 그녀를 직접 볼 수 없어, 방패에 비친 모습을 보고서야 겨우 목을 칠 수 있었다. 이 신화가 주는 공포는 명확하다. 누군가 나를 '노려보는 것'만으로도 나의 존재가 지워지고, 나는 그저 딱딱한 조각상(사물)이 되어버린다는 무력감이다.
2. 사르트르와 '타인의 시선'
사르트르는 희곡 '닫힌 방'에서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단순히 인간관계가 힘들다는 뜻이 아니다. 철학적으로 훨씬 섬뜩한 의미가 담겨 있다.
내가 혼자 있을 때, 나는 세상의 주인(주체)이다. 나는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문이 열리고 '타인'이 들어와 나를 쳐다보는 순간, 권력 관계는 역전된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나는 더 이상 주인이 아니다. 나는 저 사람이 평가하고, 판단하고, 정의 내리는 '객체(대상)'로 전락한다.
"저 사람은 옷을 못 입네." "저 사람은 능력이 없네."
타인의 시선은 나를 난도질하고 규정한다. 사르트르는 이를 '시선(Le Regard)'에 의한 사물화라고 불렀다. 타인이 나를 바라볼 때, 나의 자유는 박탈당하고 나는 그가 보는 대로 '돌'처럼 굳어진다.
3. 회의실의 메두사들
월요일 오전 회의 시간.
나는 준비한 기획안을 발표하기 위해 일어선다. 자유롭고 당당했던 '주말의 나'는 온데간데없다.
테이블 맞은편에 앉은 팀장, 임원, 그리고 동료들의 눈빛이 일제히 나에게 꽂힌다.
그들은 현대판 메두사다.
팀장의 눈은 "돈값은 하는지 보자"며 나를 평가한다.
동료의 눈은 "실수 하나만 해봐라"며 나를 감시한다.
그 수많은 시선의 십자포화 속에서 나는 돌처럼 굳어버린다. 말은 더듬거리고, 등 뒤로는 식은땀이 흐른다. 내 인격, 내 감정, 내 고유성은 사라지고 오직 '평가받는 대상'으로서의 껍데기만 남는다.
우리가 회사를 지옥이라 느끼는 건 업무량 때문만이 아니다. 하루 9시간 동안 내 뒤통수에 꽂히는 그 끈적하고 날카로운 '시선들' 때문이다.
밥을 먹을 때도, 화장실을 갈 때도, 퇴근 인사를 할 때도 우리는 타인의 눈치를 본다.
"저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 생각에 사로잡히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 감옥에 갇힌 죄수가 된다.
4. 방패를 들어라
메두사를 이기는 방법은 그녀의 눈을 피하는 것이 아니다. 페르세우스처럼 '거울(방패)'을 드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타인의 시선에 굴복하지 않으려면, 내가 다시 그들을 응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를 평가하려는 그들의 눈빛을 피하지 마라. 똑바로 쳐다보라.
그리고 속으로 외쳐라.
"당신이 나를 평가하듯, 나도 당신을 보고 있다. 당신도 내 눈앞에 있는 하나의 인간일 뿐이다."
상사가 나를 노려볼 때, 쫄지 말고 그의 미간을 응시하라.
그가 절대적인 신이 아니라, 밥 먹으면 이 사이에 고춧가루가 끼는 평범한 아저씨임을 직시하라.
내가 주체성을 회복하고 상대를 객체로 바라보는 순간, 메두사의 저주는 풀린다.
돌이 되지 마라.
당신은 누군가의 눈요깃감이 되기 위해 태어난 조각상이 아니다.
살아서 꿈틀거리는, 피가 도는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