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의 고갯짓과 당신의 알고리즘

허기를 채우는 것은 무엇인가

by 정명

​18세기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들판의 꿩을 관찰하며 짧은 기록 하나를 남겼습니다. "꿩은 곡식을 먹을 때 한 입 쪼고는 반드시 한 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살핀다. 매가 두려운 탓이다." 꿩은 배고픔이라는 생존 본능과 매라는 외부의 위협 사이에서 쉴 새 없이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입니다. 이익은 이 분주한 고갯짓을 보며, 욕망에 눈이 어두워지면 위태로워지고 공포에 사로잡히면 배를 채울 수 없는 인간의 처지를 짚어냈습니다.

​300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고갯짓은 성호가 본 꿩보다 훨씬 더 빈번하게 반복됩니다. 다만 우리가 고개를 숙여 쪼고 있는 것은 들판의 낱알이 아니라 스마트폰의 푸른 화면입니다. 알고리즘이 개개인의 취향에 맞춰 정교하게 배치한 정보의 낱알들은 우리를 잠시도 쉬지 못하게 만듭니다. 타인의 소비 실적, 유행하는 투자처, 타인의 여행 기록이라는 낱알을 쪼아 먹느라 우리는 고개를 들 틈이 없습니다.

​성호가 본 꿩은 최소한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고개를 들었습니다. 먹이에 정신이 팔려 생명을 잃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의지가 그 고갯짓에 담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습니까? 화면 속 낱알을 받아먹는 일에 매몰되어, 나를 낚아채 가려는 '타인의 시선'이나 '집단적 유행'이라는 매가 머리 위를 맴도는 줄도 모릅니다. 아니, 내가 지금 쪼고 있는 것이 진짜 내 삶의 영양분이 되는 곡식인지, 아니면 나를 가두기 위한 정교한 미끼인지조차 구분하지 못한 채 손가락만 움직입니다.

​이 지점에서 하나의 불가피한 비극이 발생합니다. 우리는 꿩보다 더 많이 낱알을 소비하고 있지만, 내면의 허기는 해소되지 않습니다. 내 안에서 자생한 욕망이 아니라, 시스템이 복제해서 던져준 타인의 욕망을 내 것인 양 받아먹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할 틈도 없이, 다음 욕망을 지시하는 알고리즘의 낱알을 향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입니다.

​결국 "분명한 내 생각과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법은 성호의 꿩에게서 배울 수 있습니다. 낱알을 쪼는 동작을 잠시 멈추고 고개를 드는 것입니다. 남들이 좋다고 떠드는 소음, 시스템이 정해준 취향의 낱알에서 시선을 떼고 잠시 텅 빈 '하늘'을 보십시오.

​그 하늘은 차갑고 막막할 것입니다. 거기엔 나를 유혹하는 광고도, 나를 평가하는 숫자의 나열도 없습니다. 그 정적 속에서 "나는 지금 왜 이 낱알에 집착하고 있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을 수 있다면, 당신은 비로소 사육된 욕망의 궤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주체성이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남들이 다 좋다는 낱알이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리고 미련 없이 고개를 들어 고요한 정적을 마주하는 그 짧은 '멈춤'의 시간입니다. 당신의 시선이 낱알이 아닌 허공을 향할 때, 비로소 타인의 목소리에 묻혀있던 진짜 '나의 기준'이 들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오늘 밤, 잠시 화면을 끄고 성호의 꿩처럼 고개를 들어 보십시오. 당신이 쪼고 있던 낱알들이 사실은 당신을 더 허기지게 만들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 거기서부터 당신의 진짜 통찰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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