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소 옆 들풀이 되리

by 정명

살다 보면 누군가의 존재가 너무 거대하여, 그가 가진 시간의 유한함이 인류의 손실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예전의 나는 그런 위대한 이들의 노쇠함을 지켜보며 나의 생을 떼어 그들에게 이어 붙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나의 평범하고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시간은 그들의 훌륭한 생에 비하면 갚지 못한 부채와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낭비었고, 그들의 시간은 보존되어야할 가치였다. 그것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서글픈 위계였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 마음조차 나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한 비겁한 도피였음을.

누군가는 지금의 나를 바라보면 바스러지고, 흔들거리며 한없이 나풀대며 사라질 존재라고 정의내릴지도 모른다. 우울의 무게에 눌려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나의 생을 보며 가망이 없는 문장이라 치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제 나의 비루함을 타인의 위대함과 맞바꾸려 하지 않는다. 바스러지는 것이 나의 본질이라면 기꺼이 바스러질 것이고, 흔들리는 것이 나의 현현이라면 끝까지 흔들릴 것이다.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선택한 생의 방식은 화려한 화단의 꽃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시골 노택의 낡은 변소간 옆.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척박한 땅에 겨우 뿌리 내린 이름 없는 들풀이 되기로 했다.

변소 옆 들풀의 생은 고결함과는 거리가 멀다. 악취를 견뎌야 하고, 들이치는 비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며, 때로는 발에 짓밟히기도 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피어난 풀은 그 누구의 생도 빌려오지 않는다. 비루한 환경을 거름 삼아 스스로의 힘으로 땅을 움켜쥐고,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먼저 계절의 변화를 목도한다.

나의 인생이 비록 나풀대는 들풀과 같을지라도, 그 안에는 나만의 액자가 있다. 짓밟혀도 다시 일어서는 복원력이 아니라, 짓밟힌 채로도 그 땅의 감촉을 기록하는 끈질긴 생명력이다. 나는 이제 위대한 누군가의 시간을 연장하는 부품이 되기를 거부한다. 대신 나의 삶에 여겨지는 소소함을 온전히 살아가며, 이 낮은 곳에서만 보이는 풍경들을 문장으로 옮길 것이다.

노택의 변소 앞에 피어난 들풀은 누군가에게는 외면하고 싶은 초라함이겠지만 나에게는 가장 정직한 삶의 현장이다. 부채감으로 여겨졌던 내 인생은 이제야 비로소 나만의 온전한 자산이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자기보폭의 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