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보폭의 완주

은막 뒤로 사라지는 아름다움에 대하여

by 정명

오늘 나는 한 시대의 마침표를 보았다. 곧 은퇴를 앞둔 선배의 뒷모습이다. 그는 화려한 조명 아래서 박수갈채를 받으며 승전보를 올리는 영웅의 모습으로 기억되는 분은 아니었다. 남들보다 빠른 속도로 승진의 고개를 넘지도 않았고, 세상을 놀라게 할 만큼 파격적인 일취월장을 보여준 적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단 한번도 자기 보폭을 어긴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책상은 늘 정갈했고, 그가 처리한 업무는 소리 없이 단단했다. 화려한 수식어보다는 정확한 수치를, 요란한 선동보다 묵묵한 실행을 택했던 그의 시간들. 본받을 점이 많다는 후배들의 평가는 그가 쌓아온 성실의 밀도가 얼마나 높았는지를 증명한다. 그런 그가 이제 조용히 짐을 챙겨 은막 뒤로 퇴장을 준비하고 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묘한 먹먹함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연민이나 아쉬움과는 다른 종류의 감정이었다. 무대 위에서 주인공으로 남기 위해 끝까지 마이크를 놓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추함이 만연한 시대에, 자신이 내딛어야 할 마지막 보폭을 알고 스스로 무대의 불을 끄는 자의 뒷모습은 얼마나 서늘하고 고귀한가.


사람들은 흔히 정상에 오르지 못한 퇴장을 초라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오늘 확신했다. 초라함이란 결과의 크기가 아니라, 과정의 정직함이 결여되었을 때 발생하는 악취라는 것을. 선배의 퇴장은 전혀 초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의 예술 작품이 완성된 후 작가가 붓을 내려놓는 찰나의 정적처럼 아름다웠다.


그는 일터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자기 자산으로 돌아가는 길 위에 서 있었다. 조직이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품으로 살아가던 속도를 멈추고, 이제 오직 자신의 심장 박동에 맞춘 본연의 보폭을 회복하려는 참이다. 그의 굽은 어깨는 짐의 무게 때문이 아니라, 완주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묵직한 훈장처럼 보였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은막 뒤로 사라진다. 그때 우리를 증명하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높이 올라갔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내딛은 걸음걸이가 얼마나 정직했느냐일 것이다. 선배가 남긴 빈자리는 공백이 아니라, 그가 수십 년간 꾹꾹 눌러 쓴 존재의 지문으로 가득차 있다.


나는 오늘 선배의 뒷모습에서 내일의 나를 읽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나 또한 언젠가 무대를 떠날 때, 타인의 박수가 아니라 스스로의 보폭에 부끄럽지 않은 평온한 뒷모습을 남기겠노라고. 은막 뒤로 사라지는 것은 소멸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을 위한 가장 정중한 인사임을 오늘 그 선배의 뒷모습이 가르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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