놋페라보의 거울

당신의 진짜 얼굴은 어디에 있습니까

by 정명

​옛 일본의 밤길, 한 남자가 울고 있는 여인을 발견합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다가가 어깨를 다독이자, 고개를 돌린 여인의 얼굴에는 눈도, 코도, 입도 없었습니다. 달걀처럼 매끄러운 살덩어리만 남은 기괴한 형상. 겁에 질린 남자가 달아나 국숫집으로 숨어들어 주인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국숫집 주인은 자신의 얼굴을 쓱 문지르며 묻습니다. "당신이 본 얼굴이... 혹시 이런 얼굴이었소?" 주인의 얼굴 역시 아무런 이목구비가 없는 매끄러운 달걀귀신, '놋페라보'였습니다

​이 기이한 전설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서늘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얼굴을 바꿉니다. 직장에서는 유능하고 친절한 직원의 얼굴을, 집에서는 헌신적인 부모의 얼굴을, SNS에서는 행복과 여유가 넘치는 동경의 대상으로서의 얼굴을 갈아 끼웁니다. 사회라는 무대 위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타인이 원하는 정답에 맞춰 정교하게 설계된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문제는 그 가면을 너무 오래, 너무 완벽하게 쓰고 있을 때 발생합니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만 신경 쓰다 보면, 어느 순간 가면 뒤에 숨겨진 나의 진짜 표정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리게 됩니다. 내가 정말로 무엇을 할 때 기쁜지, 어떤 부조리에 분노하는지, 무엇을 갈망하는지조차 모른 채 매끄러운 가면의 미소만을 유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살아있으나 영혼의 이목구비가 사라진, 현대판 놋페라보의 모습과 다를 바 없습니다.

​놋페라보 전설에서 가장 무서운 지점은 '누구나 놋페라보가 될 수 있다'는 전염성에 있습니다. 내가 진실한 내 얼굴을 잃어버리는 순간, 내 주변의 사람들도 그저 역할로만 존재하는 무표정한 타인이 됩니다. 진심 어린 대화 대신 매뉴얼화된 친절이 오가고, 뜨거운 감정 대신 계산된 표정만이 교환되는 공간에서 인간은 서로에게 '얼굴 없는 존재'로 남게 됩니다.

​주체적인 인간으로 선다는 것은, 하루에 단 몇 분이라도 타인의 시선이라는 거울을 치우고 자신의 민낯을 마주하는 용기를 내는 일입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매끄러운 얼굴'이 아니라, 때로는 일그러지고, 때로는 상처 입었으며, 때로는 거친 욕망으로 가득 찬 자신의 진짜 이목구비를 되찾는 과정입니다. 내 얼굴의 주인이 나 자신임을 선언할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명령이 아닌 자신의 의지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지금 거울 속을 들여다보십시오. 그곳에 있는 것은 당신의 진짜 얼굴입니까, 아니면 세상이 당신에게 강요한 매끄러운 가면입니까? 가면을 벗어 던졌을 때 드러날 비어 있는 공백이 두려워, 여전히 얼굴 없는 귀신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신의 진짜 얼굴을 찾는 일은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거친 민낯이야말로 당신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주체로 존재한다는 유일한 증거입니다. 이제 타인의 시선이라는 손으로 당신의 얼굴을 문지르지 마십시오. 당신만의 눈으로 보고, 당신만의 입으로 말하며, 당신만의 표정으로 오늘을 살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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