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이라는 환상이 만든 번아웃
'요재지이'에는 '화벽'이라는 기묘한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벽화 속 눈부신 절경에 매료된 한 선비가 그림 안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그는 꿈에 그리던 여인을 만나 향기로운 시간을 보내지만, 현실의 노승이 벽을 두드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시 차가운 바닥이었습니다. 그림 속 여인의 머리 모양이 유부녀로 바뀌어 있는 흔적만을 남긴 채 말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가슴 속에 벽화 하나씩을 품고 살아갑니다. 그 풍경의 이름은 때로 성공이기도 하고, 부(富)이기도 하며, 타인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은 조급한 욕망이기도 합니다. 벽 너머의 세상이 너무나 찬란해 보여서, 우리는 기꺼이 현실의 고단함을 잊고 그 환상 속으로 발을 내딛곤 합니다.
빨리 도달하고 싶은 갈망이나 더 높은 곳을 향한 초조함은, 어쩌면 저 단단한 벽 너머의 낙원으로 숨어들고 싶은 마음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릅니다. 환상 속에 머무는 동안은 내 어깨를 짓누르는 바위의 무게도, 버거운 일상의 한숨도 잠시 잊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환상은 그곳에 머물 때만 아름다운 법입니다. 노승의 죽비 소리처럼 현실이 우리를 불러 세웠을 때 마주하는 것은, 환상에 쏟아부은 시간만큼 더 가혹하게 다가오는 현실의 정적입니다. 그림 속 여인의 머리카락이 바뀌었듯, 우리가 환상을 쫓는 사이 우리 곁의 소중한 무언가도 그 결을 달리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오늘 당신이 그토록 간절히 바라보는 그 벽화는 어떤 모습인가요. 혹시 그 화려한 색감에 눈이 멀어, 당신의 발이 딛고 서 있는 지금 이 순간의 흙먼지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우리가 얻어야 할 진짜 삶은 벽 너머의 환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차가운 벽을 만져보는 당신의 정직한 손끝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림 안은 따뜻하겠지만, 우리가 살아내야 할 곳은 여전히 벽 밖의 시린 공기 속입니다. 그 차가움을 견디며 묵묵히 내딛는 발자국이야말로 우리가 세상에 남길 수 있는 가장 고귀한 흔적일 것입니다.
비록 바위는 무겁고 공기는 차갑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진짜 숨을 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