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의 끝, 가려진 삶의 얼굴

지도 위의 이방인, 삶의 다양성

by 정명

​마음이 소란스러운 날이면 가끔 구글맵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바다 위를 정처 없이 떠돈다. 모니터 속의 푸른빛은 차갑지만, 그곳을 유영하는 동안만큼은 나를 에워싼 현실의 소음에서 잠시나마 자유로워질 수 있다. 손가락 끝으로 화면을 툭툭 건드리다 남태평양과 인도양 그 경계 어디쯤에서, 점보다 작은 얼룩 하나를 발견했다.

​호기심은 이내 집요한 클로즈업으로 이어졌다. 수십 번의 손가락질 끝에 비로소 형체를 드러낸 그곳은, 지도의 끝자락에 겨우 매달려 있는 외딴 섬이었다. 지우개 가루보다도 작고 무인도에 가까운 그 비좁은 땅 위에서, 나는 우연히 한 이방인의 흔적과 마주했다. 스트리트 뷰가 포착한 그의 얼굴은 흐릿한 블러(blur) 처리에 가려져 있었지만, 구부정한 어깨와 짙게 드리워진 그림자만큼은 선명했다.

​그는 어떤 계절을 지나 이곳에 머물게 된 것일까. 아침이면 어떤 파도 소리에 눈을 뜨고, 해가 저물면 누구의 이름을 나직이 부르며 하루를 마감할까. 그가 살아온 인생의 궤적은 내가 매일 마주하는 정제된 세상의 문법과는 전혀 다른 언어로 쓰여 있을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그에게는 오늘 내가 겪은 일상의 번잡함이나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따위는 바닷바람 한 번에 씻겨 내려갈 만큼 가벼운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때로 너무나 천편일률적인 틀을 강요한다. 정해진 시기에 도달해야 할 목적지들, 남들과 비슷하게 맞춰가야 하는 삶의 속도. 우리는 그 궤도에서 한 치라도 벗어나면 인생이 통째로 어긋나는 것처럼 조바심을 내며 산다. 삶은 마치 단 하나의 정답지처럼 여겨져서, 그 답을 맞히지 못한 이들은 스스로를 '오답'이라 부르며 자책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도 위 외딴 섬에서 마주한 그 흐릿한 실루엣은 나에게 조용한 웅변을 건넸다. 어디에서나 인간의 생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 우리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무수한 삶의 방식들이 저마다의 속도와 온도로 숨 쉬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삶은 단일한 선이 아니라, 수만 개의 점이 모여 이루는 입체적인 풍경이다. 지도에도 제대로 표기되지 않는 저 작은 섬에서도 생의 중력은 작동하고 있으며, 누군가는 그곳을 자신의 우주로 삼아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다양성이라는 말은 때로 거창하게 들리지만, 실은 '나와 다른 온도로 살아가는 이들이 어디선가 숨 쉬고 있음'을 인정하는 다정한 마음이다. 그 이방인의 가려진 얼굴 뒤로 내가 보지 못한 무수한 고통과 환희가 교차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본질적으로 나의 생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위도의 섬에서 자기만의 파도를 견디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구글맵을 끄고 다시 현실의 모니터로 돌아온다. 여전히 세상은 빡빡하고 일상은 어수선하지만, 내 마음 한구석에는 아까 본 그 외딴 섬의 파도 소리가 작게 출렁인다. 삶은 다양한 모습으로 흘러가고, 그 모든 흐름은 그 자체로 고귀하다. 어쩌면 나 또한 나만의 외딴 섬을 가슴에 품고, 나만의 방식으로 이 치열한 도심을 항해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어디나 삶은 있고, 어디에나 삶은 흐른다. 우리가 보는 지도가 전부가 아님을, 가려진 이방인의 어깨가 가만히 일깨워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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