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마음의 시선으로부터의 도피
필리핀의 마을에는 오래전부터 ‘아스왕(Aswang)’에 대한 공포가 흐릅니다. 그는 밤이면 날개 달린 괴물로 변해 지붕 위를 날아다니며 인간의 심장을 노리지만, 해가 뜨면 누구보다 선량하고 조용한 이웃의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마을 사람들은 옆집 남자의 눈동자가 유난히 충혈되어 있지는 않은지, 길에서 만난 여인의 시선이 거꾸로 맺히지는 않는지 끊임없이 살핍니다. "내 곁에 있는 저 사람이 사실은 괴물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마을 전체를 지배합니다.
아스왕 전설이 우리에게 던지는 진짜 서늘함은 괴물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그 괴물을 찾아내려는 인간들의 ‘투사된 증오’에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아스왕은 다른 이름으로 불립니다. 혐오의 대상, 적대적 타자, 혹은 나를 위협할지도 모르는 잠재적 가해자. 우리는 주체적으로 세상과 소통하기보다, 타인을 향한 날 선 의심의 장벽을 쌓는 데 더 익숙해져 있습니다. 내가 느끼는 불안과 무력감의 원인을 외부로 돌려 "저 사람 때문에 내 삶이 불행하다"거나 "저 집단이 우리를 위협한다"는 식의 '괴물 만들기'에 몰두하곤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아스왕을 가려내는 방법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아스왕의 눈동자를 똑바로 들여다보면, 그 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거꾸로 보인다고 합니다. 이는 매우 상징적인 비유입니다. 우리가 타인을 괴물로 규정하고 증오할 때, 우리가 보는 것은 그 사람의 진실한 모습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에 도사린 공포와 나약함이 거꾸로 투영된 환상일 가능성이 큽니다. 타인을 향해 쏟아내는 그 비정한 말과 시선들은, 사실 내 안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만들어낸 가짜 얼굴인 셈입니다.
주체적인 인간으로 선다는 것은 타인을 괴물로 낙인찍어 자신의 안전을 확인받으려는 비겁함을 버리는 일입니다. 내 삶의 문제를 타인의 탓으로 돌리며 혐오의 대열에 합류하는 것은, 결국 나 스스로가 또 다른 의미의 아스왕이 되는 길입니다. 진정한 주체는 타인을 의심하기 전에 내 안의 눈동자를 먼저 살핍니다. 내가 가진 편견이 타인의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지는 않은지, 내 나약함을 감추기 위해 누군가를 사냥하고 있지는 않은지 정직하게 물어야 합니다.
지금 당신이 증오하고 있는 그 ‘아스왕’은 정말 괴물입니까? 아니면 당신의 불안이 만들어낸 허상입니까? 타인의 정체를 밝혀내려 애쓰기보다, 그를 바라보는 당신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먼저 응시하십시오. 괴물은 어두운 숲속이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닫힌 마음의 틈새에서 태어납니다.
이웃의 눈동자 속에서 거꾸로 된 당신을 발견했다면, 그것은 상대가 괴물이라는 증거가 아니라 당신의 시선이 뒤틀려 있다는 경고일지도 모릅니다. 혐오라는 가면을 벗고 인간의 얼굴로 타인을 마주할 때, 우리는 비로소 공포라는 이름의 늪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연대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