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폭의 위로

by 정명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고들 하지만, 때로는 그 거리마져 지우고 싶은 계절이 있습니다. 마음의 무게가 유독 버겁게 느껴지는 날이면, 거창한 위로보다 그저 묵묵히 곁을 내어주는 고요한 존재가 그리워지곤 합니다.


길을 걷다보면 문득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가야 할 목적지가 어디인지보다, 지금 누구와 어떤 마음으로 발을 내딛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요. 루시드폴의 선율처럼 군더더기 없는 길 위에서, 나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그저 가만히 걸어가자"라고요.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위치를 옮기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내 안의 소란스러운 생각들을 정돈하고, 발바닥에 닿는 땅의 촉감을 통해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가장 정직한 수행입니다. 누군가는 앞서가는 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초조해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삶이라는 문장에는 정해진 마침표가 없기에, 조금 느려도 자신만의 구두점을 찍으며 걷는 발걸음은 그 자체로 충분한 의미를 지닙니다.


때로는 세찬 바람이 불어와 우리의 어깨를 웅크리게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라면, 서로의 보폭에 기대어 그 바람조차 하나의 배경으로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화려한 성취가 보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어두운 밤길을 비추는 작은 등불 하나와 곁에서 들려오는 당신의 숨소리라면 충분하니까요.


비록 우리의 생이 가끔은 위태로워 보일지라도, 서로의 보폭을 맞추며 걷는 이 시간만큼은 그 무엇보다도 단단한 진실입니다. 거창한 약속이 없어도, 그저 곁에서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안도가 스며드는 밤이 있습니다.


오늘 당신의 발걸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나요. 만약 조금 지쳐 있다면, 잠시 멈춰 서서 나의 손을 잡아보세요. 우리는 서두르지 않고, 그저 우리다운 속도로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갈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당신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건네는 가장 정직한 보폭의 위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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