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지난 기록이 건네는 고요
책상 구석, 먼지의 궤적이 얇게 가로지른 자리에 작년의 캘린더와 다이어리가 놓여 있습니다. 한때는 나의 하루를 지배하고, 때로는 밤잠을 설칠만큼 육중한 무게로 다가왔던 계획들이 이제는 누렇게 변색된 종이 뭉치가 되어 침묵하고 있습니다. 손끝으로 그 서걱이는 질감을 문지르다 보면, 문득 한 시절을 지배했던 열망의 흔적들이 얼마나 속절없이 식어버렸는지를 목도하게 됩니다.
다이어리의 첫 장을 펼쳐보면, 정성껏 눌러 쓴 신년의 다짐들이 보입니다. 그때의 나는 마치 이 기록들이 내 삶을 구원하기라도 할 것처럼 필사적이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삶을 '결핍을 채우려는 맹목적인 의지의 연속'이라 말했습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는 고통에 시달리고, 막상 그것을 손에 넣으면 이내 권태라는 늪에 빠지고 맙니다. 작년의 내가 이 다이어리에 빼곡히 적어 내려간 약속과 목표들은, 어쩌면 고통과 권태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던 마음의 시계추가 남긴 고단한 흔적일지도 모릅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지키지 못한 약속 위에 그어진 서툰 줄들이 나타납니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패배처럼 느껴져 쓰라렸으나, 지금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 실패들은 의외로 명징한 평온을 선사합니다. 헤겔은 역사가 정반합의 과정을 거쳐 더 나은 방향으로 진보한다고 믿었지만, 우리의 일상은 그리 거창한 논리로 흐르지 않습니다. 고통은 그저 고통으로 존재하고, 사라진 시간은 무언가를 남기기보다 그저 비워질 뿐입니다. 우피나샤드에서 말하는 '마야(Maya)', 즉 환상의 장막이 걷히고 나면, 우리가 그토록 집착했던 성취의 기록들은 한낱 종이 위의 얼룩과 다를 바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 이 다이어리 속의 언어들은 온기를 잃고 서늘한 무게만 유지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일정들, 이제는 연락조차 닿지 않는 이름들, 그리고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분노와 슬픔들, 이 쓸모없어진 기록들을 바라보며 나는 비로소 안도합니다.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 타인의 시선에 보폭을 맞추려던 초조함이 이 낡은 종이들과 함께 폐기되었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과거를 딛고 일어서야 한다고 말하지만, 때로는 과거를 그저 '철 지난 물건'처럼 방치하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굳이 의미를 부여해 승화시키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작년의 캘린더가 더 이상 오늘의 날짜를 알려주지 못하듯, 지나간 마음들 역시 오늘의 나를 구속할 권리가 없습니다.
다이어를 덮으며 책상 위를 정리합니다. 손바닥에 묻은 얇은 먼지를 털어내고,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오늘의 빈 페이지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미래라는 환상에 기대를 걸지도, 과거라는 유령에 발목을 잡히지도 않은 채, 그저 지금 이 순간의 정직한 보폭만을 믿기로 합니다.
인생이라는 문장에는 정해진 마침표가 없기에, 우리는 그저 매일 조금씩 서늘해지는 마음을 품고 묵묵히 걸어갈 뿐입니다. 이것이 철 지난 기록들이 나에게 건네는 가장 명확하고 단단한 보폭의 위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