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지하철 플랫폼의 공기는 언제나 무겁고 건조하다.
각자의 전장으로 향하기 전, 마지막 전열을 가다듬는 사람들의 어깨 위로 형광등의 푸르스름한 빛이
쏟아진다. 오늘도 늘 같은 칸, 같은 문 앞에 서있는 그녀를 본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지만,
매일 아침 시선의 끝자락에서 마주치는 익숙한 타인, 우리는 서로에게 아무런 다정함도 건네지 않지만
매일 그 자리에 나타남으로써 서로의 생존을 묵묵히 증명해주는 기묘한 동행자들이다.
열차를 기다리며 무심코 그녀의 뒷모습에 시선이 머물렀다. 살짝 숙인 그녀의 고개 위로 지하철의 가파른
조명이 정면으로 떨어진다. 그 빛 아래 드러난 그녀의 정수리는 생각보다 휑했다. 한때는 밤의 숲처럼
까맣고 울창했을 머리숱들이 어느 생의 골목에서 길을 잃고 다 빠져나간 것일까. 듬성해진 머리카락
사이로 하얗게 드러난 두피의 속살이 왠지 모르게 내 마음을 서늘하게 건드렸다.
처음에는 그저 세월의 가차 없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가만히 그 빈터를 응시하다 보니, 그것은 결핍이라기
보다 차라리 '투명한 기록'에 가까워 보였다. 머리카락은 인체의 영양분이 가장 마지막 도착하는 변방이다.
생존을 위한 에너지가 급할 때, 몸은 가장 먼저 변방의 보급을 끊는다. 그녀의 에너지는 아마도 머리카락을
윤기있게 지켜내는 사치 대신, 오늘 하루를 버티고 가족의 끼니를 챙기며 누군가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절실한 밥벌이'의 현장으로 먼저 달려갔을 것이다.
머리숱이 휑해진 자리에는 그녀가 견뎌온 세월의 골격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그것은 가을이 깊어지면
나무가 잎을 떨구고 비로소 제 본연의 가지 모양을 드러내는 것과 닮았다. 무성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비워지고 나서야 선명해지는 법이다. 그녀가 잃어버린 머리카락의 양만큼, 어쩌면 그녀는 누군가의 삶을
풍성하게 채워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 휑한 자리는 부끄러운 약점이 아니라, 치열하게 살아낸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숭고한 훈장처럼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내 머리 위를 가만히 짚어본다.
나의 머리숱은 아직 넉넉한가. 만약 그렇다면 나는 아직 누군가를 위해 나를 온전히 쏟아붓지 못한 채,
나만의 요새를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나 역시 매일 조금씩 휑해지는 마음의 빈터를 들키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이 길 위에 서있는 것일까.
플랫폼으로 열차가 들어오며 강한 바람이 분다. 흩날리는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로 다시 한번 하얀 속살이
반짝인다. 나는 이제 그녀의 그 빈틈을 연민하지 않기로 했다. 그 빈틈이야말로 세상의 모진 바람이 가장
먼저 온몸으로 받아내며 만들어진 '숨구멍'이라 믿기로 했다.
비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무언가를 밖으로 쏟아냈다는 증거다. 우리가 지치고 절실해질 때마다 몸 어딘가에
생겨나는 빈터들은, 우리가 세상에 내어준 진심의 흔적들이다. 열차에서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응원을 보낸다. 오늘 그녀가 향하는 전장이 너무 거칠지 않기를, 그리고 그녀의 비어 있는 자리마다 누군가의 다정한 시선이 물러 잠시나마 온기가 채워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