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듭의 과정

by 정명

외출을 하려 현관에 설때마다 발치에 시선이 머문다.

길게 늘어진 운동화 신발 끈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바닥을 훑으며

나풀거리고 있다. 단단히 묶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매듭은 힘을 잃고

풀려버렸다. 오늘만 벌써 몇번째인지 모른다.


풀린 끈을 가만히 응시하다 보면,

그것이 꼭 요즘 내 마음의 끝자락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 아침마다 "오늘은 조금 더 단단해지자"고 "흔들리지 말자"고

마음의 끈을 조여 매지만, 문밖을 나서기도 전에

무력감과 자책이라는 바람에 매듭은 힘없이 느슨해지곤한다.

반복되는 이 풀림 앞에서 나는 종종 지친다.

"나라는 사람은 왜 이토록 매듭 하나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는 걸까"

하는 자책이 고개를 든다.


하지만 문득 무릎을 굽히고 앉아 다시 끈을 잡았을 때,

손가락 끝에 닿는 끈의 질감이 낯설지 않다. 여러번 묶고 풀리기를 반복한 탓에

끈에는 자잘한 보풀과 깊은 주름이 패어 있다. 그 주름은 상처라기 보다, 어떻게든

길을 나서보려 했던 치열한 시도의 흔적처럼 보였다.


생각해보면 우리네 삶에서 '완벽한 매듭'이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공들여 묶은 다짐이 풀리는 것은 끈이 부실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끊임없이 걷고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가해지는 미세한 진동과 마찰은

필연적으로 매듭을 헐겁게 만든다. 그러니 신발끈이 풀렸다는 것은, 내가 오늘도 세상속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는 가장 정직한 지표인 셈이다.


지겹게도 반복되는 이 '고쳐 묶는 행위'는 그래서 의미 없는 헛수고가 아니다.

그것은 나 스스로를 가다듬은 가장 낮은 자세의 수행이다. 풀린 끈을 다시 쥐고,

양손에 적당한 텐션을 실어 나비 모양을 만드는 그 찰나의 시간.

그 시간만큼은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오직 나의 발끝, 나의 다짐에만

온전히 집중하게 된다.


고쳐 묶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풀리지 않는 매듭을 만드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 아니다.

매듭이 풀리 때마다 당황하지 않고 다시 무릎을 굽힐 수 있는 '용기'와

거칠어진 끈을 가만히 쓰다듬을 수 있는 '여유'를 배우는 과정이다.


오늘도 나는 현관문 앞에서 다시 무릎을 굽힌다.

갈피를 못 잡는 끈을 모아 정성스레 교차시킨다. 다시 단단해진 매듭을 보며 비로소 깨닫는다.

어쩌면 나를 지탱해주는 것은 한 번의 완벽한 결심이 아니라, 수천 번 풀려도 끝내 다시 고쳐 묶으려

했던 그 집요하고도 다정한 손길이었다는 것을.


신발 끈을 고쳐 묶고 일어서는 순간, 비로소 길은 다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