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아래의 심야 우체국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상상해보자. 어느 도시의 골목 끝, 가장 어두운 구석에 위치한 심야 우체국. 이곳은 한밤중에만 문을 열고, 해가 뜨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 존재를 알 수 없다. 이 우체국은 단순히 편지를 보내는 곳이 아니다. 여기는 사람들의 잊힌 말, 전하지 못한 마음, 그리고 풀지 못한 사연들이 편지가 되어 날아드는 곳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느껴지는 건 고요 속의 웅성거림이다. 낮에는 들리지 않던 단어들이 이곳에서 다시 태어난다. 어떤 편지는 아직 열어보지도 않은 채로, 누군가의 가슴속에 수십 년 동안 묻혀 있었던 것들이다. “미안하다”는 짧은 한마디가 적힌 편지, 이름도 없는 수신인을 찾는 오래된 봉투, 그리고 말로는 차마 전할 수 없어 쓴 고백들이 우체국의 나무 상자들 속에서 졸고 있다.
여기서 일하는 직원들은 조금 독특하다. 말이 없는 남자, 그의 손은 늘 잉크와 오래된 종이 냄새로 얼룩져 있다. 그가 하는 일은 사람들이 보낸 편지들을 읽고, 그것이 정말 전달될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소녀가 하나 있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는 은색 깃펜으로 누군가의 지워진 편지를 복원한다. 잉크는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지만 그녀의 손끝에서 다시 살아난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녀의 기억은 매일 아침 달빛이 사라질 때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다.
심야 우체국의 가장 큰 비밀은 그곳에 도착한 편지가 반드시 수신인에게 전달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보통의 방법으로는 아니다. 어떤 편지는 먼 꿈속에서 전달되고, 어떤 편지는 사라진 추억 속에서 떠오르며, 또 어떤 것은 낡은 책갈피 사이에서 우연히 발견된다. 누구도 이 편지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지만, 이상하게도 그것이 자신을 위한 것임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심야 우체국에는 단 하나의 규칙이 있다. 그곳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편지를 절대 보낼 수 없다는 것. 그들은 누군가의 비밀을 전달해주지만, 자신의 비밀은 영원히 가슴속에 묻어야 한다.
오늘 밤에도 그 우체국은 문을 열 것이다. 어둠 속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는 한숨을 쉬며 편지를 꺼낸다. 이곳의 존재를 아는 당신은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그 편지를 보낼 것인가, 아니면 영원히 묻어둘 것인가?
달빛 아래의 심야 우체국은 늘 그 자리에 있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