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길을 걷는다. 걷는 데는 목적이 있다. 출근, 등교, 약속, 운동, 혹은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하지만 나는 길을 걸을 때마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길은 그 자체로 목적일 수 없는가?
한 번은 지하철역에서 내려 집까지의 길을 일부러 멀리 돌아가 보기로 했다. 낯선 길목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익숙한 풍경이 낯설게 다가왔다. 예전에 분명히 지나쳤을 빌라 옥상에 피어난 꽃나무, 새로 생긴 작은 독립 서점, 누군가의 베란다에 매달린 오래된 풍경소리가 귓가에 스쳤다. 나는 그곳들을 처음 발견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매일 지나치는 길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 익숙한 것들에 무감각해진다.
길은 단순히 우리가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 밟고 지나가는 무언가가 아니다. 길에는 누군가의 흔적, 꿈, 추억, 그리고 시간이 깃들어 있다. 새벽에 길을 걸으면, 낮에는 볼 수 없었던 고요가 들린다. 바람이 나무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는 소리,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도시의 숨소리 같은 것들. 저녁에는 어딘가로 서둘러가는 발걸음들 사이로 반짝이는 가로등 불빛이 저마다의 사연을 들려준다.
나는 가끔 길 위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의 삶을 상상해 본다. 좁은 골목길 끝 작은 창문에 비친 불빛은 누군가의 저녁 식탁을 밝히고, 횡단보도 앞에 선 낡은 구두는 주인의 하루를 묵묵히 따라 걸어왔을 것이다. 길은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하나의 지점에서 만나기도 하고 다시 흩어지기도 한다.
누군가는 길 위에서 사랑을 만나고, 누군가는 길을 잃는다. 또 다른 누군가는 길 위에서 자신을 찾기도 한다. 길은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우리의 삶을 이어 주는 연결고리다. 그래서 나는 길을 걸을 때마다 그곳에 새겨진 흔적들을 읽어 내려가며 나의 존재를 되새겨 본다. 걷는다는 행위는 어쩌면 세상과 대화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은 어딘가로 가기 위해 걷지 말고, 그저 길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 보라. 그 길 위에서 당신은 어떤 풍경을 마주하게 될지 모른다. 길은 언제나 거기에 있지만, 우리가 얼마나 열린 마음으로 길 위에 서는가에 따라 세상은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그 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마도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나 자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