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겉으로는 완벽한 틀을 유지한다. 직선으로 뻗은 도로, 규칙적으로 줄지어 선 아파트, 심지어 신호등이 바뀌는 시간까지 정교하게 계산되어 있다. 모든 것이 효율적으로 설계된 이곳에서 우리는 미리 정해진 경로를 걷고, 짜여진 삶의 리듬에 맞춰 살아간다. 그러나 이런 정형화된 틈새를 비집고 나오는 의외의 순간들이 있다. 도시의 작은 틈, 바로 그곳에서 예측 불가능한 자유가 피어난다.
아침 출근길, 번잡한 지하철에서 문이 닫히기 직전의 ‘틈’에 누군가가 뛰어 들어오곤 한다. 그 찰나의 순간에는 긴장감과 안도감이 뒤섞인다.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 열차 안에서 그 사람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머리칼을 쓸어 넘긴다. 이 짧은 ‘틈’을 통해 하루의 지각을 면하고, 누군가는 다행스러운 하루의 시작을 맞는다. 도시의 시간표는 칼처럼 예리하지만, 사람들은 이처럼 예측 불가능한 빈틈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도로와 인도의 경계에도 틈이 있다. 인도 보도블록이 살짝 비틀어진 그 사이로 민들레가 고개를 내민다. 회색으로 뒤덮인 도시에서 이 노란 민들레는 마치 작은 저항처럼 보인다. 인간이 만든 견고한 구조물에도 생명은 스며들 틈을 찾아낸다. 이 작은 틈을 통해 우리는 자연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확인한다.
카페 창가에 앉으면 보이는 거리도 그렇다. 창문 너머 보이는 풍경은 언제나 예측 가능하지만, 창문이 열리는 순간, 바깥의 소음과 냄새가 밀려온다. 익숙한 거리 풍경 속에 낯선 사람들의 대화, 지나가는 오토바이의 굉음, 어느 가게에서 새어 나오는 빵 굽는 냄새가 섞인다. 도시가 아무리 일관된 모습을 유지하려 해도, 이 ‘틈’을 통해 새로운 감각들이 밀려든다.
그리고 사람 사이에도 틈이 있다. 마주친 시선, 우연히 섞이는 발걸음, 계산대 앞에서 짧게 나누는 인사. 도시인들은 서로에게 무심한 듯 보이지만, 그 무심함 속에도 작은 틈들이 존재한다. 짧은 미소나 건넨 말 한마디가 관계의 문을 살짝 열어둔다. 이 틈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도시는 결코 완벽하게 봉합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숨 쉴 틈, 생각할 틈, 사랑할 틈. 도시의 작은 틈은 우리가 인간다운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마지막 여백이다. 그리고 그 여백이야말로 우리가 도시를 사랑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