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산들
여행을 좋아한다. 추적추적 비 내리는 골목을 좋아한다. 낯선 거리를 걷는 것을 좋아한다. 고즈넉한 밤거리와 해변의 노을을 좋아한다. 옛스러운 건물과 간판을 좋아한다. 강남보다 강북, 휴양지보단 도시를 좋아한다. 깔끔하고 예쁘게 꾸며진 공간보다 조금은 시끌벅적한, 널부러진 공간을 좋아한다. 그런 공간에 함께 있으며 아무 말이 없어도 불편하지 않은,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음식을 좋아한다. 매일 먹던 것보다 새로운 것이 좋다. 새로운 곳에 가면 무조건 그 지역의 음식을 먹어야 한다. 걷다가 우연히 마주친 맛있는 음식점을 좋아한다. 그렇게 만난 좋아하는 음식점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해주는 것을 좋아한다. 음식과 잘 어울리는 술을 좋아한다. 소금 한줌과 레몬을 곁들인 데낄라를 좋아한다. 술자리는 4명 이하가 모여야 좋다. 맛있는 음식은 하루에 6번도 먹을 수 있다. 그렇게 함께 돌아다녀도 질리지 않을,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음악을 좋아한다. 락을 좋아한다. 인디음악을 좋아한다. 그룹사운드를 좋아한다. 여러 악기가 어울리며 나오는 화음을 좋아한다. 기타솔로를 좋아한다. 리프를 깔아놓고 자유롭게 연주하는 것을 좋아한다. 가사를 쓰고 곡을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노래하는 것을 좋아한다.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 LP판으로 듣는 음악을 좋아한다. 함께 좋아하는 음악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사람을 좋아한다. 한결 같은 사람을 좋아한다. 솔직한 사람을 좋아한다. 낭만을 품은 사람을 좋아한다. 색이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신념이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배울 수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잘 말하는 사람보다 잘 들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자유로운, 그러면서도 예의를 갖춘 사람, 겸손한 사람을 좋아한다. 이렇게 가끔 쓰는 이불킥 감성글을 사랑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2018년 9월 15일. 회사를 떠난다.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일을 했다. 또 많은 것을 배웠다. 멋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을 배우고 싶어서 따라하기도 참 많이했다. 감동을 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인터뷰 중간에 눈물을 찔끔 짤 정도로. 고마운 사람들을 만났다. 부족한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3년 전 한 퀵서비스 업체가 망하고 임금을 받지 못한 퀵서비스 라이더들을 취재하고 있을 때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동료에게 충전금을 받지 못한 기사를 찾고 있는 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연락드렸습니다. 저 같이 나이 많은 사람들은 인터넷을 하지 않아서 이렇게 늦게 소식을 접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돈은 못받아도 괜찮습니다. 그저 우리 같은 사람들을, 아둥바둥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주신 것만으로, 공감해주신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합니다.
난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 아름다운 일을 하고 싶다.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아름다운 이들과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싶다.
난 평범한 사람이다. 조금은 특별해지고 싶어 발버둥치던.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나 또한 변해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잊을 수 없는 것,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어딘가 남아있다.
난 그렇게 조금씩, 아름다운 것을 찾는,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그런 길을 가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