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지용 Sep 16. 2019

음식 배달을 한다는 것

플랫폼 노동과 긱 노동 사이에서

왕왕 배달을 나갑니다.

점심시간에 사무실 바로 앞에 주차된 따릉이를 끌고 나가기도 하고요.

요즘 서울 곳곳에 깔리고 있는 전동킥보드 덕을 보기도 합니다.

따로 저녁시간이나 주말을 할애해서 별도로 업체에 일자리를 신청하고 현장에 나가기도 합니다.


가끔은 지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요즘 배달 자주 나가는 것 같다. 돈 좀 벌리냐"고요.

돈은 안 벌립니다. 김밥천국에서 부대라면 한 그릇 사먹을 돈을 법니다.

아무래도 돈보다는, 현장을 알고 싶은 욕심 때문에 배달일을 합니다.

겸사 운동도 되고, 돈도 전혀 못 버는 것은 아니니 손해는 아니란 생각입니다.


얼마 전 한 방송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배달업계의 노동 환경에 대한 인터뷰를 하고 싶다나요.

물론 거절했습니다. 제가 배달현장에서 일하는 시간은 짧게는 30분, 길게는 6시간.

현장에 나간 것은 기껏해야 수십건이고, 그마저도 최근에 많이 나간 것입니다.

전업으로 배달일을 하시는 분들이 분명히 있는데, 저는 그들을 대변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닙니다.

저에게 배달은 삶이 아닙니다. 돈을 목적으로 배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배달이 삶인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이 바라보는 배달과 제가 바라보는 배달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언젠가 배달기사의 노동 환경을 이야기하는 기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

거기 달린 댓글이 이렇더군요. 배달기사들 신호 위반하고 난리인데, 그것부터 어떻게 좀 하라고요.

언젠가 배달기사가 묶음배달을 하곤 한다는 기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

거기 달린 댓글이 이렇더군요. 묶음배달 때문에 내 음식 다 식어서 오는데, 이런 걸 그냥 두냐고요.


저는 배달을 잘 모릅니다. 하지만 배달현장에서 마주하는 그 촉박함은 알고 있습니다.

당장 지난주 추석, 저는 배달현장에 나갔습니다. 한 고객의 집에 음식을 들고 방문했습니다. 노크를 했지만 고객은 집에 없었습니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죠.

조급한 마음에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어떻게 해야 될지 물었습니다. 확인을 하고 답해준다고 하더군요.

10분, 9분, 7분. 그 짧은 사이 시간은 가고 있습니다.

이 시간은 다음 음식점까지 픽업을 정시에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소중한 1분입니다.

분단위로 바뀌는 시간 속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저 먹먹하게 기다리는 것뿐이었습니다.


픽업 좀 늦으면 어떻냐고요?

늦을 수 있지만, 일자리를 잃을 수 있습니다.

고객이 부재중이든, 길이 막히든, 가다가 사고가 나든, 어떤 사정에서든,

우리는 픽업이나 배달을 늦게갈 수 있지만, 일자리를 잃을 수 있습니다.

특수고용직노동자라고 하죠. 요즘 말로 멋있게 플랫폼 노동자라고 하더군요.

남들은 사장님이라는데, 업체가 우리를 다루는 방식은 사장님 같지 않습니다.

정해진 픽업시간과 배달시간으로 관리하고, 그걸 못 지키면 콜을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더 이상 일거리를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회사에서 나가라고 합니다.


저는 배달이 삶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치열하지 않습니다. 기자 월급 나오니까요.

배달로 한 시간 일해서 부대라면 한 그릇 사먹을 돈을 벌어도 운동했으니까 만족합니다.

하지만 배달이 삶의 전부인 사람들은요? 삶을 위해 부대라면 한 그릇 이상의 돈을 벌어야 되는 사람들은요?

위험한 운전을 감행합니다. 더 빠른 픽업과 배달을 위해서요.

그들이 정말 위험하게 달리고 싶을까요? 불법을 감수하면서 인도 주행을 하고 싶을까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저는 배달을 잘 모릅니다. 하지만 배달현장에서 마주하는 그 촉박함은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안전하게 달리고 싶습니다. 안전하게 달리고 기왕이면 돈도 만족할만큼, 최소한 살만큼은 벌고 싶습니다.

전속 계약 라이더 월급이 통상 250~270만원 정도 돼요.

최저임금은 치고 오르는데 이 정도면 살만해 보이나요? 이 분들 하루에 10시간, 12시간 일하고 있을 수도 있어요.


누구나 들어오고 나갈 수 있는 플랫폼 노동자라고 합니다.

하지만 누구나 내보내기도 쉽고 대체하기도 쉬운 플랫폼 노동자입니다.

음식 배달이  사람에게, 플랫폼 노동이란 무엇일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물류 까대는 북클럽을 만듭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