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머스보다 중요한 '재미'
1. 이 글은 커넥터스가 만드는 큐레이션 뉴스레터 '커넥트레터'의 2월 17일 목요일 발송분입니다.
안녕하세요, 급 쌀쌀해진 날씨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엄지용입니다. 커넥트레터 구독자 여러분, 감기 조심하세요.
외부에 잘 알리진 않았지만, 제 소소한 취미 중 하나는 음식점 리뷰입니다. 아무래도 업무 특성상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혼자 밥 먹을 일이 많은데요. 그렇게 방문한 음식점의 사진과 짧은 시식평을 인스타그램에 남기고 있습니다. 이른바 엄지용의 혼밥로드인데, 어찌된 게 밥집보다 술집이 많습니다.
사실 제가 리뷰를 남기는 음식점들은 ‘맛집’이 아닙니다. 딱히 유명한 음식점을 찾아가기보다는 그냥 발 가는 데로, 느낌 있는 곳을 방문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방문한 음식점이 제 입맛에 맞을 수도, 아닐 수도 있죠.
리뷰를 남기는 데는 작은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저의 입맛에 맞지 않더라도, 맛이 없다는 평가는 남기지 않습니다. 음식의 ‘맛’이라는 것이 주관적일 수밖에 없잖아요. 저에게 맛이 없는 음식이 누군가에게는 맛이 있는 음식일 수 있습니다.
어제 만난 한 수산물 버티컬 커머스 플랫폼을 운영하는 대표님은 저에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그가 운영하는 플랫폼에는 ‘별점’ 평가가 없다고요. 애초에 표준화가 어렵고 모두에게 상대적일 수 있는 자연에서 나온 수산물의 맛을 어떻게 ‘숫자’로 평가할 수 있냐고요. 그 업체는 별점 대신 작은 ‘하트’ 하나를 클릭할 수 있도록 남겨뒀습니다. 생산자를 생각한 플랫폼의 작은 배려입니다.
저는 온라인에서 식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별점’ 관리가 업주에게 얼마나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는지 작게나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음식점 리뷰를 하지만, 조금은 조심스럽습니다. 제가 무슨 미식 평가단도 아니고, 고작 먹부림 기록하는 데 부정적인 편향을 누군가에게 남기긴 싫었습니다.
물론 저는 음식이 맛있다면 가감 없이 맛있다고 밝힙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저에게 맛있는 음식이 맛없을 수도 있겠죠. 우린 서로 다를 수 있잖아요. 제가 쓰는 글이 누구에게나 같은 느낌으로 다가가진 않는 것처럼요. 오늘의 뉴스픽 시작합니다.
자연스럽게 ‘콘텐츠’ 이야기로 이어갑니다. 과거 쿠팡과 함께 자웅을 겨뤘던 소셜 3사 친구들은 이제 각자의 영역으로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류에 미친 친구와 싸우기 위해선 더 미쳐야 하는데 그러려면 돈이 많이 들거든요.
위메프는 ‘메타 커머스’를 선포하며, 네이버의 영역으로 뛰어듭니다. 이미 존재하는 수많은 상품 DB를 검색과 추천에 방점을 맞춰서 소비자에게 제공해준다는 것이죠. 승부처를 ‘기술’에서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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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몬의 전략 방향은 ‘콘텐츠 커머스’입니다. 소셜커머스의 낮은 가격, 물류 인프라를 강화한 빠른 배송의 경쟁에서 벗어나 콘텐츠를 기반으로 고객에게 상품 가치를 제안하는 ‘관계형 커머스’가 되겠다는 게 티몬의 방향입니다. 당장 티몬이 지난해 새로 선임한 장윤석 대표부터 커머스보다는 ‘콘텐츠’ 영역의 경험을 쌓은 인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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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커머스라고 하니 좀 말이 거창합니다. 쉽게 말해 영상, 이미지, 텍스트 등 다양한 콘텐츠를 활용해서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콘텐츠 커머스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라이브 커머스’도 라이브 영상으로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니 큰 틀에서 본다면 콘텐츠 커머스의 범주 아래 있다고 볼 수 있죠.
그럼 티몬은 대체 어떻게 ‘콘텐츠 커머스’를 확장한다는 것일까요? 티몬이 ‘라이브 커머스’의 시조새인 것은 다들 알지만, 그 영역은 이미 네이버, 카카오, 배달의민족 같은 트래픽 공룡 친구들이 뛰어든 초경쟁 시장 아닌가요? 티몬의 콘텐츠 커머스에 어떤 특이점이 있는지 궁금하던 찰나에, 그 방향성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바로 어제 티몬이 아프리카TV의 디지털 콘텐츠 제작 자회사 ‘프리콩’과 협력하여 신규 웹예능 <게임부록>의 제작 발표회를 열었습니다. <게임부록>은 게임전문 토크쇼로 게임판 <유퀴즈온더블럭>을 표방합니다. 슈퍼주니어 멤버 김희철, 게임 전문 유튜버 김성회, 게임 전문 캐스터 성승헌이 MC를 맡아 초청 게스트들과 함께 게임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입니다.
어제 저는 현장에서 40분 동안 이어진 <게임부록> 제작 발표회를 모두 봤습니다. 다 보고 나니 이게 대체 ‘커머스’와 뭔 상관이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이날 제작 발표회의 대부분은 MC들간의 ‘잡담’으로 구성됐거든요. <게임부록> 제작을 맡은 이승열 프리콩 총괄 PD가 MC들의 짓궂은 질문에 곤혹스러워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만, 커머스와 관련된 내용은 ‘하나’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행사 뒤에 이어진 기자간담회를 통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상품을 팔아야 하는 티몬과 콘텐츠를 터뜨리고 싶은 프리콩 사이의 줄다리기가 있었더군요. 박성호 티몬 제휴전략본부장과 이승열 프리콩 PD의 대담을 들어보죠.
우리는 처음부터 ‘게임판 유퀴즈(유퀴즈온더블럭)’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아프리카TV는 게임쪽에 강점이 많고, 기왕 방송을 한다면 돈 버는 커머스쪽 선수인 ‘티몬’과 함께 재밌는 것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저희가 티몬에게 내건 조건은 커머스나 광고는 뒤로 제쳐 두자는 것이었습니다. 그걸로 티몬과 계속해서 싸우고 있는 중입니다(이승열 프리콩 PD)
사실 티몬은 초반부터 커머스 요소를 넣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게임부록>은 게임 방송이잖아요. 처음부터 ‘커머스’가 강도 있게 들어간다면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도 부담스럽고, 재미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커머스보다는 콘텐츠에 집중하기로 결정했습니다(박성호 티몬 제휴전략본부장)
티몬이 생각하는 ‘콘텐츠 커머스’의 제1 가치는 ‘재미’입니다. 이번에 제작하는 <게임부록>과 같은 경우에도 ‘커머스’가 전면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티몬이 콘텐츠 시청자에게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아프리카TV와 티몬간 시스템 연동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반적인 ‘라이브 커머스’처럼 상품을 전면으로 두고 상품 위주로 이야기하는 구성을 취하지는 않았습니다. 세 명의 MC와 초청 게스트간의 토크쇼, 그러니까 ‘콘텐츠’가 핵심입니다.
<게임부록>은 후반부 방송에 컨셉과 어울리는 ‘상품’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커머스와 콘텐츠의 연계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어떻게 상품을 자연스레 녹일지가 고민점입니다. 당연히 PPL(Product Placement)을 활용하겠지만, 단순히 상품을 배치하는 것보다 자연스레 콘텐츠의 스토리텔링에 상품이 등장하는 맥락을 만들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건 스포일러가 돼 이야기하기 어려우니 몇 가지 예를 들어봅니다. <게임부록> MC들이 서로 편하게 게임 이야기를 하다가 어젯밤에 잠은 제대로 잤냐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면 베개가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며칠씩 제대로 씻지 못하고 게임을 하던 상황이 나올 수 있겠죠. 그때는 괜찮은 샴푸가 추천 상품으로 등장합니다. 우리의 핵심은 ‘콘텐츠’입니다. 재밌는 콘텐츠 스토리텔링에 자연스레 상품을 연결시키고자 합니다(박성호 티몬 제휴전략본부장)”
티몬이 <게임부록>을 공중파가 아닌 유튜브와 같은 모바일 미디어에서 상영하는 이유도 콘텐츠의 ‘재미’ 때문입니다. 지상파, 종편, 케이블을 막론한 방송국 콘텐츠 상영에는 아무래도 가이드나 심의규정이 많아서 콘텐츠를 만드는 데도 조심스러워진다고요. 성역 없이 재밌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 <게임부록>의 ‘유튜브’ 방송을 결정했다는 설명입니다.
앞서 콘텐츠 커머스는 콘텐츠를 활용해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당연히 콘텐츠 커머스의 목표는 ‘상품을 잘 판매하는 것’이 돼야합니다. 티몬이 콘텐츠 커머스에 있어서 커머스가 아닌 ‘콘텐츠’를 전면에 내세우는 이유도 사실 잘 팔기 위해서입니다.
콘텐츠 커머스는 흔히 ‘높은 구매전환율’을 만드는 수단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러기 위해선 전제가 있습니다. 시청자들이 ‘콘텐츠’에 최대한 머물러야 합니다. 애초에 재미없는 콘텐츠라면, 예컨대 처음부터 대놓고 상품을 팔고자 하는 콘텐츠라면 일말에 주저 없이 시청자들은 이탈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상품을 판매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됩니다.
시청자들은 재밌는 콘텐츠에 기꺼이 그들의 시간을 쏟습니다. 콘텐츠와 교감하면서 자연스레 다양한 상품 광고에 노출되고, 브랜드를 인지하는 단계까지 나아갑니다. 나아가 콘텐츠에서 소개된 상품을 구매합니다.
재밌는 콘텐츠는 그 자체로 상품의 마케팅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티몬에 따르면 콘텐츠는 상품상세 정보에 VOD 형태로 남아서 상품을 구매하고자 하는 고객들이 참고할 수 있는 정보가 됩니다. 한 번 방영돼 휘발된 콘텐츠는 상품에 남아서 다시 한 번 살아납니다. 구매 전환을 이끕니다.
지속적으로 티몬이 강조한 콘텐츠 커머스의 핵심 요인은 ‘재미’였습니다. 콘텐츠 커머스는 ‘커머스’와 결합이 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커머스가 전면에 나서면 안 됩니다. 재밌는 콘텐츠를 만들고, 조금은 조심스럽게, 자연스럽게 커머스를 녹여야 합니다. 어찌 보면 콘텐츠 커머스의 성공은 잘 팔려고 하지 않는 데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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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넘어가기 아쉬운 몇 가지 소식을 빠르게 훑어봅니다. 첫 번째, 지난 커넥트레터에서 이야기한 소식이었죠. 서울시의 물류 사업 계획 중 한 축이 ‘전통시장 MFC(Micro Fulfillment Center)’라고요. 그런데 굳이 ‘전통시장’에 물류 비즈니스가 붙을 필요가 있겠냐는 실무자의 의견이 제기됐습니다. 실제 전통시장 플랫폼을 경험한 필자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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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상장 이슈로 뜨거운 신선식품 버티컬 커머스들이 새벽배송에 이어 ‘퀵커머스’에서 맞설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오아시스마켓이 메쉬코리아와 협력한 퀵커머스 서비스를 3월 론칭하고자 준비하고 있는 와중, 마켓컬리가 ‘초록마을’ 인수를 타진한다는 내용이 서울경제를 통해 보도됐거든요. 쉬워 보이지만 않는 두 업체의 상장전은 어떤 양상으로 흘러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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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나이키가 유행시킨 ‘한정판 마케팅’은 브랜드의 가치를 만드는 대표적인 방법처럼 여겨졌습니다. 소매가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리셀’ 상품이 풀리는 현상이 이를 방증하죠. 그런데 이런 현상에 반감을 갖는 소비자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마냥 한정판 마케팅이 ‘브랜드 가치’를 만든다고 보기에도 위험성이 있습니다. 리셀업자인 아들 덕분에 나이키 부사장을 사임한 앤 허버트의 이야기가 괜히 떠오르는 것은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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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커넥트레터는 여기까지입니다. 저녁 약속 나갈 생각에 다시 몸이 떨리는데, 다음 주는 오늘보다 조금 더 따뜻해졌으면 좋겠어요. 커넥트레터 구독자 여러분 얼마 안 남은 한 주 좋은 일 가득하길 바라며, 저는 다가오는 목요일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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