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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용 Aug 23. 2022

6990원짜리 치킨런과 공짜 물류

여러분의 시간에는 얼마의 가격을 매길 수 있나요?


6990원짜리 치킨을 구매하기 위해 늘어선 인파 ⓒ커넥터스

6990원짜리 치킨이 화제입니다. 오전 11시부터 판매하는 치킨을 구매하고자 9시부터 줄 서는 사람들이 나올 정도로요. 옆 동네 다른 마트는 화제가 된 6990원짜리 치킨에 배가 아팠는지, 5980원짜리 치킨을 출시합니다. 또 다른 옆 동네 마트는 종전 15800원에 팔던 치킨을 8800원에 반값 할인 판매하기 시작합니다.    

 

소비자들은 열광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저렴한 치킨이 나올 수 있냐고요. 프랜차이즈 치킨보다 3배 가까이 저렴한데, 지금껏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저렴하게 팔 수 있었음에도 폭리를 취한 것 아니냐고요. 치킨 가격이 너무 올라서 먹기 부담스러웠는데, 저렴한 치킨을 팔아줘서 고맙다고요.     


흔한 미디어 보도가 만들어내는 레퍼토리에 저는 왠지 좀 불편합니다. 6990원짜리 대형마트 치킨 가격에는 어떤 ‘가치’가 빠져있습니다. 여러분이 기꺼이 ‘공짜 물류’를 감수하며 만들어내는 이동의 가치입니다.     


예컨대 우리는 치킨 한 마리를 구매하기 위해 대형마트에 방문하고, 경우에 따라서 1시간 이상의 시간을 기다리고, 구매한 치킨을 계산하고 집까지 다시 가져갑니다. 집하와 조리 대기, 배송이 결합되는 이 과정에 우리는 ‘금액’을 책정하지 않습니다. 책정할 생각조차 안 합니다. 대중교통 요금이든, 연비에 따른 유류비든, 하다못해 도보 이동에 따른 시간과 수고로움은 분명히 있었을 텐데 말이죠.     


심지어 마트 초저가 치킨은 대부분 ‘한정판’으로 시간대별로 수요를 충족할 만큼 충분한 물량을 준비하지 않습니다. 이에 따라 애써 치킨을 영접하러 갔음에 불구하고 구매하지 못하는 참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실패 비용’ 또한 고려하지 않습니다. 2000원 오른 배달비엔 그렇게 민감했으면서, 자신의 공짜 물류에는 관대합니다.     


6990원짜리 치킨이 화제입니다. 이 치킨의 가격에는 여러분의 이동이 만들어내는 가치가 빠져있습니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물류의 가치입니다. 생각해보죠. 치킨을 기다리는 여러분의 2시간에는 얼마의 가격을 매길 수 있나요? 다시 한 번 생각해보죠. 우리가 기꺼이 ‘공짜 물류’를 수행하도록 만든 요인은 무엇인지요. 여기 타오르는 물류비를 감당할 수 있는 어떤 힌트가 숨어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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