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탁 구매대행과 뒤틀린 황천의 데이터
1. 이 글은 커넥터스가 만드는 큐레이션 뉴스레터 '커넥트레터'의 5월 25일 목요일 발송분입니다.
몇 년 전 한 글로벌 셀러와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쇼피, 라자다, 큐텐 등 동남아시아 마켓플레이스에 입점하여 상품을 팔고 있었고요. 연매출로는 10억원 정도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부업 판매자로 시작한 그가 연매출 10억원을 만든 것도 대단했지만요. 특히 저의 흥미를 끌었던 건 그의 판매 방식이었습니다. 그는 쿠팡, G마켓, 11번가 등 한국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해외에서 잘 팔릴만한 상품을 찾았고요. 동남아시아 현지 이커머스 플랫폼에 한국에 이미 올라온 상품 정보를 배송비와 마진을 더한 가격을 붙여서 업데이트했습니다.
그렇게 현지 고객 구매가 발생하면요. 한국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똑같은 상품을 주문해서 사무실로 배송 받았고요. 그것을 재포장하여 현지 고객 주소까지 해외 발송했습니다. 현지 고객 주문이 들어온 이후에야 한국 플랫폼에서 상품을 구매하는 구조로, 재고 구매 및 관리 부담을 최소화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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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업태를 한국에서는 ‘구매대행’이라고 부르는데요. 생각보다 많은 판매자들이 이 방식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쿠팡과 같은 이커머스 플랫폼뿐만 아니라 올리브영이나 코스트코와 같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특가 상품을 사서 온라인에 판매하는 분들도 있고요. 여러분이 네이버에서 구매하는 상품 중에는 아마존이나 알리익스프레스에서 누군가가 구매하여 배송한 상품이 섞여있을 가능성도 당연히 있습니다.
갑자기 옛날이야기로 서문을 연 이유는요. 오늘 다룰 주제 역시 ‘구매대행’과 관련됐기 때문입니다. 방금 소개했던 쿠팡 상품을 쇼피에 파는 것과 같은 방식이 아니라요. 네이버 상품을 쿠팡에 판매하는 셀러가 있다는 제보를 받았거든요!
얼마 전 저는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는 지인으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의 상품이 무단으로 쿠팡에 팔리고 있다는 이야기였는데요. 그가 이 사실을 발견한 과정은 이렇습니다.
지인은 어느 날 고객 주문정보를 통해 그가 네이버에 팔고 있던 ‘유리창 청소기’를 특정 구매자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속해서 사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상한 것은 매번 구매자와 실제 상품을 발송받는 사람의 이름이 달랐다는 건데요. 처음 지인은 구매자가 주변 사람들에게 유리창 청소기를 선물로 주나보다 생각했지만요. 하도 주문이 많아서 이상한 마음에 구매자에게 직접 전화를 해서 물어봤다고 해요. 혹시 이거 사서 다른데 되팔고 있는 거 아니냐고요.
지인의 질문에 구매자는 가타부타 말을 못했다고 하는데요. 그런 구매자를 보면서 지인은 자신의 추측이 들어 맞았다고 확신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 뒤, 지인은 그의 생각을 실체로 확인하게 되는데요. 그가 팔고 있는 상품과 똑같은 상품을 쿠팡에서 팔고 있는 어떤 셀러를 찾아냈기 때문입니다.
그 쿠팡 셀러의 방법은 간단합니다. 쿠팡에서 고객 주문이 들어오면요. 지인의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 방문하여 상품을 주문하고요. 배송 받을 주소만 자신이 아닌 쿠팡에서 주문한 고객의 주소로 기입합니다.
네이버 셀러인 지인은 자체 운영하는 창고에 상품을 재고로 보관하여, 고객 주문에 따라 포장하고 택배사에 출고하고 있었는데요. 쿠팡 판매자는 마치 지인의 회사를 3자 물류회사처럼 가용하여 쿠팡 고객에게 상품을 판매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류 운영을 전혀 하지 않고요.
물론 물류 운영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런 행위가 번거롭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쿠팡과 네이버가 서로 시스템 연동을 한 것은 아니기에, 쿠팡에서 받은 주문 정보를 복사, 붙여넣기 해가면서 네이버에 다시 주문을 해야 하고요. 혹여 네이버에서 해당 상품이 ‘품절’이라도 된다면 그에게 주문한 고객에게 일일이 전화하면서 발송 지연이나 품절 사실을 또 알려야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팡 판매자가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이유는 너무나 명확하게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까 말한 ‘유리창 청소기’의 경우 지인은 네이버에서 1만1400원(배송비 3000원 별도)에 팔고 있었는데요. 쿠팡 판매자는 그것을 2만4900원(배송비 무료)에 팔았습니다. 배송비를 포함한 가격으로 비교하더라도 1만500원의 차익이 발생하고요. 쿠팡에 지불하는 수수료를 감각하더라도 남는 장사임이 분명합니다.
쿠팡 판매자는 상품상세 페이지를 통해 스스로를 ‘위탁 구매대행’ 사업자라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지인의 상품 외에 다른 상품들도 같은 방식으로 쿠팡에 올려 팔고 있었고요. 자신이 판매하는 것은 ‘배송대행’ 상품으로, 배송처별로 주소가 다를 수 있다는 안내를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 판매자의 방식을 ‘위탁판매’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원청(?)인 네이버 셀러 지인이 이 쿠팡 판매자에게 상품 판매를 ‘위탁’한 것이 아니니까요. 추측컨대 쿠팡 판매자는 네이버에서 특히 저렴하게 팔리던 지인의 상품을 봤고요. 이를 구매하여 쿠팡에 웃돈을 붙여 팔더라도, 경쟁력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지인의 상품을 소매가에 구매하여 쿠팡에 계속 팔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다 보니 발생하는 정보의 괴리가 있었는데요. 예컨대 지인은 롯데택배 대리점과 계약하여 고객에게 택배 발송을 하고 있었는데요. 쿠팡 판매자는 같은 상품을 ‘CJ대한통운’을 통해 발송한다고 고객에게 안내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CJ대한통운이 국내 가장 큰 점유율을 갖고 있는 택배업체기에 자의적으로 배송 정보를 기입한 것으로 추측되고요. 그 결과 쿠팡에서 이 상품을 구매한 고객은 CJ대한통운으로 온다고 했는데, 롯데택배로 받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상품만 제때 온다면 고객은 택배사가 어디든 별로 신경 쓰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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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괴리는 지인의 택배 포장 방식에서 찾을 수 있었는데요. 그는 상품과 함께 고객 주문서를 함께 출력하여 택배 포장 안에 동봉하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그 주문서에는 그가 판매하는 유리창 청소기의 ‘가격’이 그대로 노출돼있습니다.
그러니까 쿠팡에서 2만4900원에 유리창 청소기를 구매한 고객은요. 배송받은 상품 박스를 열어보니 그 안에서 ‘1만1400원’에 유리창 청소기를 구매했다는 주문서를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건 택배사가 어디냐의 이슈와는 다르게, 고객을 당황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해 보이고요. 추후 고객 클레임으로 연결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 CS를 원래 상품을 팔던 네이버 셀러가 받을지, 그 상품을 그대로 옮겨 쿠팡에 팔던 쿠팡 셀러가 받을지는 차치하더라도 말이죠.
마지막으로 소비자와는 상관없이 이슈가 될 가능성이 있는 부분도 보였는데요. 쿠팡 판매자가 지인의 것과 동일한 상품 썸네일과 상품상세 이미지를 상당부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지인에게 확인해보니 그도 직접 찍은 이미지는 아니고, 전달받은 이미지를 사용한 것이라고 했는데요. 어쨌든 콘텐츠 원저작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이미지를 도용하는 것은 저작권 침해 소지가 있습니다.
실제 한 중국 구매대행 플랫폼 사업자에 따르면 중국의 상품 이미지를 무단으로 사용하여 상품을 팔다가, ‘내용증명’을 받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고 하는데요. 재밌는 건 중국에서 이미지를 가져왔는데, 중국이 아닌 한국업체의 내용증명을 받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고요. 그 이유는 중국업체가 도용해간 한국업체의 이미지를 다시 한국 구매대행업자가 도용하는 연쇄(...)가 발생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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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사건의 전개인데요. 사실 지인을 당황하게 만든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그가 네이버뿐만 아니라 ‘쿠팡’에서도 동일한 유리창 청소기를 팔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에 검색하여 첫 번째로 노출되는 상품은 그의 상품이 아니었고요. 그의 상품을 도용한 그 셀러의 상품이었습니다. 심지어 상품 가격은 그가 올린 것이 훨씬 저렴했음에 불구하고 말이죠.
이는 쿠팡이 자랑하는 ‘아이템 위너’ 노출 알고리즘이 절대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사례가 아닌가 생각하고요. 여전히 이러한 알고리즘의 틈새를 뚫고 우선 노출을 선점하기 위한 셀러들의 도전과, 여기 때때로 섞이기도 하는 어뷰징을 막기 위한 플랫폼의 방어전이 한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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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의 활동을 오랫동안 보셨던 분들은 아시겠지만요. 저는 위탁판매나 구매대행 리셀러가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잃어갈 것이라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한 적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네이버 상품을 사서 쿠팡에 되파는 단순한 리셀링 구조는 태생적으로 고객 서비스나 물류 관리가 어렵고요. 덩달아 누구나 쉽게 들어올 수도 있어서 경쟁도 치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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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군다나 아마존, 쿠팡, 네이버를 막론한 글로벌 이커머스 플랫폼들의 최근 전략은 모두가 ‘브랜드’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D2C(Direct to Customer)’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기존 중간 유통상(리셀러)들과 협력하던 제조 및 브랜드업체들이 직접 이커머스로 뛰어드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고요. 리셀러들은 이제 그들에게 상품을 공급해주던 ‘원청’과 경쟁해야 하고, 이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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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누구보다 리셀러 스스로가 잘 알고 있는데요. 처음 글을 시작하면서 소개했던 쿠팡 상품 사서 쇼피에 팔던 그 셀러는요. 당시 그의 목표를 ‘브랜드’ 론칭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가 브랜드를 만드는 이유 역시 ‘치열한 경쟁’ 때문이었고요. 히트 상품을 소싱하더라도 금방 따라오는 구매대행 경쟁자들이 늘어나고 있었다고 했고요. 점차 그가 남기는 마진율은 떨어졌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남들이 쉽게 따라하지 못하는 경쟁력, 즉 ‘브랜드’가 필요하다고 그는 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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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구매대행은 약해질지언정 사라지진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공간을 초월했다는 디지털 시대에 왔다고 하지만요. 모든 디지털 공간을 둘러볼 만큼 우리의 시간은 충분하지 않거든요. 똑같은 상품이 네이버와 쿠팡 모두에 올라와 있을지 모르고요. 때로는 네이버가, 때로는 쿠팡이 더 저렴할지 모르지만요. 우리 모두가 그것을 일일이 찾아볼 만큼 많은 노력을 투하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끔은 네이버보다 1만원 가까이 비싼 상품이 쿠팡에서 팔릴 수 있고요. 사실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이처럼 발견되지 못했을 어떤 상품을 어떻게든 누군가에게 소개하고, 웃돈을 붙여 팔아내는 것은 어쩌면 유통업자의 실력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온오프라인을 막론한 상거래의 본질은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니까요.
지난주 올리브영이 본격적으로 주류 카테고리를 확장한다는 소식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익히 알려졌듯 ‘주류’는 전통주를 제외하고는 온라인 판매에 제약이 크고요. 그렇기 때문에 오프라인 리테일 업체들이 온라인에 맞서기 위한 전략 카테고리로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대형마트 3사의 리뉴얼된 미래형 점포들만 하더라도 일정 규모 이상 거대해진 ‘주류’ 판매 코너를 항상 끼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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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영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주류 카테고리를 확장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특히나 기사에 언급된 주류 중에서도 ‘전통주’ 카테고리가 눈에 띄었는데요. 전통주는 올리브영이 이미 확충한 퀵커머스 물류망을 바탕으로 빠른 온라인 배송까지 연계 가능하니까요. 이렇게 되면 꽤나 파괴적인 결과가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미 올리브영이 뷰티를 석권한 것처럼, 새로운 전통주 브랜드의 ‘등용문’이 돼버리는 그림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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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따라오는 한 줌의 의문이 없진 않았는데요. 올리브영의 핵심 카테고리 중 하나인 ‘헬스’와 ‘주류’가 과연 브랜드 스토리텔링 측면에서 맞을까에 대한 의문입니다. 물론 올리브영이 이번 주류 카테고리 확장 보도자료에서 즐거움을 챙기는 ‘헬시 플레저’라는 문구를 강조할 만큼 주류와 올리브영의 연결성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긴 하지만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술이 건강에 해로운 것은 과학이 증명한 사실이니까요.
그래서 제가 궁금했던 것은 올리브영이 확충한 주류의 큐레이션입니다. 당연히 올리브영이 ‘희석식 깡소주’를 팔진 않을 것 같고요. 원래 그들의 핵심 고객이었던 2030 여성들도 부담없이 즐길만한, 왠지 건강해질 것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기는 주류를 소싱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건 책상머리에 앉아 제 생각을 말하는 것보다는 한 번 가보는 게 명확할 것 같은데요. 조만간 관련 소식 전할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오늘 커넥트레터는 여기까지고요. 이 외에도 지난주 커넥터스는 아래와 같은 콘텐츠를 만들었는데, 특히 F&B 관련 주제가 많았네요. 관심 있는 분들은 네이버가 선별적으로 흩뿌린 무료쿠폰이 계정 안에 들어있을지 모릅니다. 겸사 무료 쿠폰을 활용하여 커넥터스를 구독해보셔도 좋을 것 같은데요. 그럼 저희는 다음 주에 더 의미 있는 콘텐츠와 함께 또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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