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의 의지와 운송업계 분위기
1. 이 글은 커넥터스가 만드는 큐레이션 뉴스레터 '커넥트레터'의 1월 25일 목요일 발송분입니다.
안녕하세요, 한 주 건너 돌아온 엄지용입니다. 저는 숫자를 참 좋아합니다. 학창 시절 문과를 선택했지만, 대개 언어보다는 수학 성적이 좋았고요. 어쩌다 글쓰기로 먹고 살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제가 글을 잘 쓴다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보의 파편을 조립하는 것에 문학적 소양이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요. 물론 이따금 감성 묻은 글을 쓰지만, 놀림 받았던 지난날의 기억을 상기하면 역시 이쪽은 재능이 없습니다.
이런 제 성향은 조직을 운영하는 데도 반영이 됐습니다. 매일 버릇처럼 하는 일은 커넥터스를 새로 구독한 사람들과 누적 구독자의 숫자를 기록하는 것이고요. 전월 구독자 숫자 대비 구독 해지한 사람들의 비율을 계산합니다. 이 숫자 변화 하나하나에 그날 기분이 달라지죠.
밝히자면 커넥터스 콘텐츠의 성과 지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구독 기여도’입니다. 네이버에 강력하게 요구한 덕인지, 언제부턴가 프리미엄콘텐츠 관리자 시스템에는 ‘구독 전환 분석’ 기능이 생겼는데요. 이를 통해 매일, 매주, 매달 특정 콘텐츠의 구독 전환 기여도를 확인하고 있고요. 기여도가 높은 콘텐츠를 중심으로 광고 집행을 하고, 그 비용 대비 성과를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저의 성향 때문일까요. 제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대체로 ‘숫자’에 맞춰져 있습니다. 얼마 전 독자 여러분에게 지난해 저희 성과와 올해 계획을 공유 드렸을 때도, 틈틈 숫자를 늘어놨던 기억이 납니다. 별로 대단치 않은지라 부끄럽지만, 이게 가장 진실한 소통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가끔은 감성의 소중함을 느끼곤 합니다. 때로는 숫자만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메일링을 할 때도 그렇습니다. 잔뜩 우리와 인터뷰를 하면 좋을 정량적인 이유를 늘어놓는 것보다는요. 툭 던진 어떤 한 마디가 인터뷰를 성사시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물론 그 배경에는 우리의 오랜 관계가 있었을 것이고요. 이는 이성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겠죠.
오늘의 추천곡은 브로콜리너마저의 <커뮤니케이션의 이해>입니다.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이해하지 않아도 되는, 숫자를 늘어놓지 않더라도,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는 관계를 더욱 많이 만들고 싶습니다. 대체로 저의 감성 묻은 글은 이런 식으로 끝나곤 했고요. 어쩐지 놀림 받았던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부끄러우니 뉴스픽 시작하겠습니다.
얼마 전인 19일 대한민국 정책브리핑을 통해 입법예고를 알리는 보도자료 하나가 공개됐습니다. <운송사, 화물차주에 번호판 사용료 요구 못한다…위반시 제재>라는 제목이었는데요. 국토교통부 이름으로 발송된 이 자료는 “앞으로 운송사가 화물차주에게 지입계약 체결 명목으로 번호판 사용료를 요구하는 행위가 원천적으로 금지된다”는 문장으로 시작했습니다.
번호판 사용료? 화물운송 업계에 계신 분들이 아니라면 그게 뭔가 싶을 수 있는데요. 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지입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입제란 ‘화물차의 실소유자인 차주가 운송 사업권을 가진 운송사와 위수탁 계약을 체결하여 화물을 운송하는 형태’를 뜻하는데요.
여기서 왜 굳이 화물차량에 직접 투자한 차주가 운송사와 위수탁 계약을 체결해야 하는지 궁금할 수 있는데, 이는 규제와 연결돼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부터 화물차 영업용 번호판의 신규 발급을 ‘허가제’를 바탕으로 막고 있고요. 정부가 신규 공급을 규제한 화물차 번호판에는 유가 거래 시장이 형성됐는데요. 영업용 번호판 거래소 이카내카에 따르면 개인화물 기준 화물차 번호판은 2500~3000만원 상당의 가격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새롭게 화물차 영업을 하고 싶은 사람은 기존 시장에 풀렸던 번호판을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 유가로 구매하거나요. 여력이 안 된다면 기존 번호판을 보유하고 있는 운송사의 번호판을 월 사용료를 내고 빌려서 이용해야 했습니다.
여기서 후자의 형태로 업무를 수행하는 차주를 ‘지입 차주’라고 하는데요. 지입제를 바탕으로 운송사는 차량 인프라 투자비용과 고용 구조를 유연화 했고요. 차주는 운송사가 영업한 화주의 물량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공생 구조가 나타나게 됐습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운송사 차량 22만대 중 92.5%인 21만대가 지입 차량일 정도로 국내에서는 일반적인 형태죠.
여기서 국토교통부가 규정한 문제가 있었다면 ‘물량 영업’을 전혀 하지 않으면서 지입 차주를 운영하는 운송사도 꽤나 많았다는 건데요.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입제는 ‘운송사가 영업한 물량을 차주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지만요. 일부 운송사는 화물차주에게 ‘번호판’만 빌려주고, 월 20~30만원 정도의 지입료만 받는 형태로 운영을 했습니다. 일종의 화물차 번호판 임대를 바탕으로 한 ‘구독’ 시장이 형성된 것인데요.
이를 막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가 2013년 도입한 것이 ‘최소운송 의무제’입니다. 연간 시장평균 화물운송 매출액의 20% 이상은 운송사가 직접 영업한 물량을 처리하도록 한 것입니다. 해당 규제 이후 대형 물류기업을 중심으로 직접운송 비중을 높이는 작업들이 진행됐지만요.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10년이 지난 지금도 규제 미이행률이 20% 이상이고요. 중소 운송사까지 실효성 있는 규제가 이루어지진 않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배경 설명이 길었는데요. 이번 입법예고에서 ‘번호판 사용료’ 수취를 금지한다는 것은 월 20~30만원 상당의 지입료를 받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정확하게 이야기한다면 ‘지입료’를 제외한 운송사가 화물 차주에게 받는 모든 번호판 관련 비용 수취를 금지한다는 뜻인데요.
대표적인 지입료 외 화물차주 부가 비용으로는 ‘T.O비’라고도 불리는 번호판 사용료가 있습니다. 한 운송사 대표에 따르면 번호판 사용료는 일종의 가입비이자 권리금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좋은 상권의 부동산 권리금이 올라가는 것처럼요. 운송사가 얼마나 많은 괜찮은 물량을 차주에게 제공하느냐에 따라서 이 비용은 달라질 수 있고요. 그 금액은 경기에 따라 변하며 통상 수백만원, 많게는 수천만원을 오간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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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국토교통부가 지입 차주로부터 부당 금전 요구 사례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운송사가 지입료 외에 번호판 사용료를 차주로부터 받는 경우는 89%에 달했고요. 이 외에도 번호판 보증금, 대폐차 비용, 차량 명의 이전 비용 등을 차주에게 요구하는 경우가 빈번했다는 평가입니다. 이를 국토교통부는 ‘부당한 금전을 요구하는 사례’로 규정했고요. 이러한 부당 금전 요구 사례만 이번 규제의 대상이 되기에 피규제자(운송사)의 준수 가능성이 높다고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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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국토교통부는 운송사가 차주에게 받던 지입료 외에 번호판 사용료를 이번 입고예고를 통해 금지하고자 하는 것이고요. 만약 운송사가 차주에게 부당 금전을 수취한다면 과태료 500만원에 최대 ‘화물자동차 감차 처분’까지 하겠다고 입법예고에 명기했습니다. 국토교통부는 해당 정책을 통해 ‘운송사에 부가 지불하는 비용 부담으로 과로, 과속, 과적을 감수하는 화물차주의 수송 안전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고요.
여기까지 내용을 봤을 때 화물차주들은 이번 입법예고를 당연히 ‘환영’할 것이라고 저는 생각했는데요. 영운모 등 화물차주 커뮤니티의 반응은 생각보다 싸늘한 모습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불신 정서가 깔려 있다고 해야 할까요. ‘좋긴 한데, 가능하겠냐?’와 같은 반응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더군요.
그 이유를 커넥터스가 화물운송업계 다양한 관계자들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취재했는데요. 일단 운송사가 화물차주에게 수취하는 번호판 사용료 상당 부분이 ‘중개인’을 통해서 ‘현금 거래’ 되고 있기 때문에 내역 추적과 책임 소지 규명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고요.
어렵사리 이를 규명하더라도, 결국 화물차주가 지입제를 이용하는 이유인 ‘영업용 번호판’의 소유권은 운송사에게 있는 것이잖아요. 어떤 형태로든 이유(aka. 괘씸죄)를 붙여서 운송사가 번호판을 회수하고자 한다면, 화물차주 입장에서는 대응할 방법이 막막하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 더해 기존 운송사가 받던 번호판 사용료를 다른 명목으로 화물차주에게 수취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예컨대 기존 운송사는 ‘물대’라고 해서 화물차주에게 영업 물량 제공에 따른 일종의 권리금을 받는데요. 이것을 ‘번호판 사용료’ 부가로 해석할 수 있는지 애매하다는 화물차주의 의견이 있었고요.
또 이번 입법예고가 현실화 되더라도 월별로 ‘지입료’를 받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데요. 운송사들이 번호판 사용료를 받지 않음으로 줄어드는 수익을 지입료 인상으로 대응해버리는 것도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아울러 일부 운송사는 협력 업체를 통해서 차주에게 화물차량 판매를 주선하기도 하는데요. 차량 판매대금에 번호판 사용료와 관련한 수익을 녹이는 것도 가능하고, 이미 그렇게 하는 운송사도 있다고요.
정리하자면, 이번 입법예고는 지난해 2월 국토교통부가 발표했던 ‘화물운송산업 정상화 방안’의 연장으로 ‘잊지 않았다’는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4월 예정된 총선에 앞서 23만에 달하는 화물차주들의 표심을 노리고자 하는 의도도 숨어 있다는 화물운송업계의 분석이 함께 나왔고요.
하지만 앞으로 법제화 여부와 관계없이 화물운송 시장에서 이미 ‘음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행위들을 지하까지 내려 보내는 것은 아닐지 그 실효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존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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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정부의 수급 조정 정책으로 인해 한국의 화물차 번호판에는 ‘가격’이 생겨 버렸고요. 정부의 최초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시장은 ‘번호판 구독 모델’과 여기 연결되는 ‘파생 상품’과 ‘변종 사기’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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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이 상품을 사고 판 이들이 상당한 시장에서, 정부의 개혁 시도는 누군가에게는 ‘재산권’ 침해로 느껴질 수 있고요. 그들은 재산권을 지키기 위한 무엇이라도 감수할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운송사에게만 국한된 내용은 아니고요. 번호판을 구매한 화물차주까지 엮이는 복잡한 문제입니다. 정부는 이번에야말로 대타협을 이룩할 수 있을까요?
서두에 커넥터스 콘텐츠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는 ‘구독 전환’ 기여도라는 이야기를 했는데요. 흔히 트래픽이 많이 밀리고, 구독 전환율도 높은 콘텐츠의 대표적인 유형은 역시나 ‘이슈’를 타고 가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의 관심이 주목되는 사건을, 독립적인 관점을 담아 분석한 콘텐츠가 나온다면 그 반응이 굉장하죠.
이번 주에는 컬리의 퀵커머스 진출과 관련된 콘텐츠가 그랬는데요. 사실 새로운 소식은 아니고, 커넥터스에서도 전에 한 차례 다뤘던 내용이긴 하지만요. 그래도 몇 가지 새로운 사실들이 붙여진 것은 나름의 의미가 있으니까요. 커넥터스의 관점을 담아서 이제는 공식화된 컬리의 퀵커머스 진출에 대한 업계의 평가를 회의론과 낙관론으로 나눠서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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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컬리의 퀵커머스 진출 사례는 다른 미디어들이 만든 ‘이슈’에 커넥터스가 올라탄 사례라면요. 다음으로 소개할 것은 커넥터스가 먼저 이슈 가능성이 있는 주제를 독립적으로 파고든 사례입니다. 지난해 말을 기점으로 네이버의 물류 플랫폼 NFA(Naver Fulfillment Alliance)의 파트너 물류사 두 곳이 연합군을 나갔는데요. 네이버의 투자를 받고, 동대문 패션 상품의 글로벌 진출까지 함께 준비했던 이들은 무슨 이유에서 네이버를 떠나게 된 것일까요? 네이버와 파트너사들의 공식적인 이유가 있고요. 파트너사 전현직 실무자들이 이야기하는 숨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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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은 요즘 규모를 갖춘 이커머스 플랫폼들의 관심사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반품’에 특화한 역물류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기업 ‘부메랑리턴(운영사: 리터놀)’의 대표를 커넥터스가 만났는데요. 이 반품 특화 비즈니스는 잊혀질 만하면 한 번씩 등장하긴 했지만요. 아무래도 정방향 물류에 비해서 집화 밀집도와 물동량을 만들기 쉽지 않다는 이유로 쉽지 않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는데요. 이커머스 시장이 성숙기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는 지금은 조금 이야기가 다를까요? 쿠팡도 한다는 ‘반품마켓’, 아웃소싱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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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커넥트레터는 조금 많이 늦었습니다. 커넥터스 구독자 여러분은 목요일 늦은 저녁에, 뉴스레터 독자 여러분은 금요일 아침에 이 내용을 받아봤을 텐데요. 사실 원래 준비하던 다른 주제가 있었는데, 쓰다 보니 영 마음에 안 들더라고요. 뒤집어엎고 다른 주제를 취재하고 작성하다 보니까 조금 더 시간이 들었습니다. 늦은 알림에 죄송합니다. 다음 주에는 정상적인 스케줄로 찾아오겠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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