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될 것인가, 파괴할 것인가
서울 전역 ‘5000원’ 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업체가 있어 화제입니다.
퀵서비스 요금 5000원이 갖는 이미지는 엄청납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저 매우 저렴한 서비스 요금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퀵서비스 공급자인 ‘퀵사’와 ‘퀵라이더’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때려죽이고 싶은 요금제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현재 국내 이륜차 물류업계는 어느 정도 ‘서비스 평준화’가 이뤄진 상태입니다. 고객사로부터 물량을 수취하고, 목적지로 곧바로 화물을 전달하는 ‘직배송(Point to Point)’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더욱 빠른 속도’를 만들어내기는 어렵습니다. 많은 퀵라이더들이 지입 형태로 여러 업체에 등록하여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퀵사에 소속감을 갖고 일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자연히 ‘더 친절한 배송’을 만들어내기도 어렵습니다.
때문에 새로운 업체가 업계에 진입하여 고객을 확충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저단가 영업’입니다. 고객이 일정 수치 이상 퀵서비스 주문을 하면 현금 리베이트를 주는 방식이 애용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문을 닫은 날도 같은 경우는 고객이 10회 주문할 경우, 3만원을 현금으로 환급해주는 방식으로 영업을 했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저단가 영업경쟁으로 인해 퀵서비스 요금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졌습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퀵라이더들에게 전가됩니다. 유류비, 차량유지보수비 등의 비용은 계속 올라가는데, 매출은 그대로인, 그야말로 수익이 오히려 악화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퀵사 입장에서도 저단가 영업경쟁이 부담스럽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저단가 영업으로 경쟁업체의 공격이 들어올 경우, 고객사를 뺏기지 않기 위해 더욱 높은 할인율로 저단가를 책정합니다. 퀵사의 수익은 자연히 더욱 낮아지고, 현금흐름은 악화됩니다.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퀵라이더, 주문을 공유하는 퀵사의 연합체인 공용센터는 이를 막기 위해서 공용센터 소속 퀵서비스 업체들의 경쟁 저단가 영업을 규정으로 금지하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도 서울 전역 ‘5000원’ 퀵서비스 요금은 일반 업체 입장에서는 도저히 책정할 수 없는 요금입니다. 말 그대로 “너 죽고, 나 죽고, 같이 죽자”는 더 이상 내릴 수 없는 한계요금이기 때문입니다. 5000원 퀵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많은 퀵사, 퀵라이더 사이에서 화제가 된 이유입니다.
업체의 이름은 ‘원더스’입니다. 이번주 기준으로 서비스 론칭 3주차에 접어든 신생기업입니다. 신생기업임에 불구하고 성장속도는 엄청납니다. 원더스는 현재 200여개의 신규화주를 유치했으며, 하루 평균 50개의 주문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같은 이륜차 물류스타트업 날도는 서비스 3년 사이 700여개의 고객사를 보유했으며, 이는 퀵사중에서도 이례적인 빠른 성장이라 평가받습니다. 그런데 원더스는 불과 3주 만에 날도의 1/3에 달하는 거래처를 만들어낸 것이지요.
어찌 보면 ‘5000원’ 퀵이 갖는 힘이 있었기에 당연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원더스는 과연 5000원 가격정책을 유지하며 생존할 수 있을까요? 원더스는 현재 15명의 월급제 기사(월급 200만원 + 보조금 50만원)를 운영합니다. 다음 달까지 을지로, 가산, 역삼, 여의도까지 서울내 물류거점을 4개 확충한다고 합니다. 어림잡아 보더라도 지속적으로 빠져나가는 비용은 엄청납니다.
원더스는 ‘운영’에서 그 해답을 찾았습니다. 원더스는 기존 이륜차 물류업계의 물류운영 방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구조를 만들고자 합니다. 택배와 같은 허브앤스포크 방식을 퀵서비스 업계에 도입하는 것이지요. 원더스는 픽업기사, 배송기사를 따로 운영하며 각 기사들은 권역에서 단거리 배송을 수행합니다. 픽업기사가 거점에 모아놓은 화물들은 배송기사가 재차 픽업하여 고객에게 순회배송(Milk run)합니다. 당연히 ‘규모의 경제’가 창출됩니다. 원더스가 재편한 퀵서비스의 구조는 한 기사가 한 화물만 가지고 가는(물론 많은 퀵라이더들은 같은 경로의 여러 화물들을 자발적으로 업어갑니다.) 기존 퀵서비스와는 달리, 한 기사가 10개 이상의 화물을 운송하는 구조인 것이지요. 자연히 ‘운영비용’은 줄어듭니다.
때문에 원더스 퀵서비스는 느립니다. 원더스가 자랑하는 ‘5000원’이라는 가격에는 ‘3시간 퀵’이라는 뒷모습도 있지요. 하지만 고객 입장에서는 ‘3시간 배송’도 충분히 수긍할 수 있습니다. 50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이 뒷받침되며, 정기화물일 경우에는 발송시간을 미리 조절하는 것 또한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원더스가 현재 수행하는 하루 50개 정도의 주문 정도로는 허브앤스포크 방식의 퀵서비스를 실행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원더스는 손익분기점(BEP)을 넘기는 지표를 하루 주문수행 1000건 이상으로 잡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화주 3000개 이상을 확보해야 된다고 합니다.
때문에 현재 원더스의 퀵라이더들은 유휴시간을 활용하여 영업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하루 4~5건의 주문을 수행하는 월급제 퀵라이더들인지라, 충분히 남는 시간을 활용한 영업이 가능합니다. 원더스는 성과를 낸 퀵라이더들에게는 추가적인 인센티브 수당을 줍니다. 원더스에 따르면 이렇게 퀵라이더 각각이 하루 5개의 거래처를 확보한다면, 앞으로 3개월 뒤에는 BEP를 돌파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거래처 3000개를 확보한다는 것은 분명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원더스는 서비스 론칭 3주안에 거래처 200여개를 확보했습니다. 기존 거래처와의 계약관계, 쿠폰 형식의 리베이트로 인해 일시적으로 거래처를 바꾸지 못한 업체들이 원더스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 속도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전망입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속도입니다. 원더스가 목표하는 수치만큼 빠르게 도달하느냐, 혹은 그 이전에 총알이 바닥나느냐의 싸움이 되겠지요. 그러나 원더스가 목표한 바를 달성한다면 그들의 말마따나 ‘퀵서비스의 새로운 기준’이 탄생할 수 있습니다.
가령 기존 모든 이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지입제 퀵라이더’, ‘직송방식’의 퀵구조가 ‘월급제 퀵라이더’, ‘허브앤스포크 방식’으로 재편됩니다. 1시간 배송, 매번 달라지는 배송요금이 당연했던 업계는 3시간 배송, 서울전역 5000원 균일가가 당연한 세상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그야말로 ‘파괴적 혁신’입니다.
제가 수없이 만나봤던 여러 이륜차 물류스타트업 중에서도 원더스의 아이템이 유독 신선하게 다가온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