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아닌 '데이터'의 시대를 맞이하며
지난달 1일 싸이월드의 방명록, 일촌평, 쪽지 등 일부 서비스가 종료됐습니다. 이번 서비스 종료는 같은달 싸이월드 서비스 전면개편을 맞아 순차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지난 7월 싸이월드의 음원판매 서비스인 ‘싸이월드 뮤직홈’이 종료된 것의 연장입니다. 99년 탄생 이후 스마트 디바이스 등장 이전 웹 시대를 풍미했던 SNS(Social Network Service)는 그렇게 사라지고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게 됐습니다.
여담이지만 싸이월드 개편 이후 제가 원래 사용했던 싸이월드 블로그는.. 망했습니다. 기존 싸이월드와 싸이블로그의 UI/UX는 괴상하게 통합되어 작성하는 이조차 당황스럽게 만듭니다. 나름 하루 방문자 100명 이상 찍었던 블로그였는데, 이제는 평균 방문자수는 0명을 찍고 있고, 그래서 열심히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죠.
과거 싸이월드의 수익모델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던 것이 ‘도토리’ 판매였습니다. ‘도토리’는 싸이월드 공간에서 활용 가능한 전자화폐로 싸이월드가 제공하는 개인화 홈페이지인 ‘미니홈피’의 아바타 꾸미기, 홈페이지 꾸미기, 배경음악 설정 등에 사용됐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특별한 미니홈피를 꾸미는데 돈을 지불하는 것, 즉 도토리를 구매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싸이월드의 유행은 때 아닌 ‘인디음악’ 붐을 몰고 오기도 했었습니다. 남들이 다 듣는 ‘대중음악’이 아닌 자신의 특별한 색을 표출할 수 있는 ‘인디음악’을 통해 자신의 공간을 표현하고 싶은 사람들의 니즈를 정확히 겨냥한 결과였죠.
싸이월드의 플랫폼 사용료는 무료입니다. 그러나 싸이월드가 구축한 수익모델은 소비자(C)를 겨냥한 B2C 모델이었습니다. 플랫폼을 이용하는 사람이 곧 플랫폼의 소비자가 되는 모양입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완전한 ‘공짜’ 플랫폼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한국사회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싸이월드는 페이스북, 트위터 등 개방형 SNS의 등장과 함께 서서히 쇠퇴합니다. 새롭게 등장한 개방형 SNS들은 소비자들에게 있어 ‘전면무료’ 정책을 사용합니다. 공짜플랫폼의 시대가 왔습니다.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이들 기업들은 ‘공짜’를 표방하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다른 누군가에게는 수익을 얻어내고 있습니다.
스마트 모바일 디바이스의 보급은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냈습니다.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플랫폼’이 범람한 이유입니다. 한 가지 재밌는 것은 이러한 플랫폼들이 대부분 ‘무료’ 정책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싸이월드의 도토리 판매 같은 부분무료가 아닌 완전한 무료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합니다.
배달의민족은 오프라인 배달 음식점 전단지를 모바일로 치환한 어플리케이션입니다. ‘좋은 음식을 먹고 싶은 곳에서’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배달 플랫폼 기업을 넘어 푸드테크 기업으로 성장하고자 합니다.
배달의민족은 플랫폼 소비자에게 돈을 받지 않는 무료 플랫폼입니다. 대신 배달음식점, 즉 공급업체에게는 별도의 광고수익, 결제 수수료를 받고 있습니다. 소비자와 공급자를 중개해주며, 소비자가 아닌 공급자에게 수익을 얻고 있는 B2B2C 모델인 것입니다.
이랬던 배달의민족이 지난 7월 28일 ‘바로결제 수수료 무료’를 선언했습니다. ‘바로결제’는 소비자가 전화주문을 하지 않고 모바일 상으로 결제, 주문할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바로결제 수수료는 당시 배달의민족 매출액의 30%를 차지하는 수준이었죠. 결코 쉽게 ‘무료화’를 논할 수 없었던 서비스였다는 의미입니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 김봉진 대표는 “단기적인 매출보다는 고객 창출에 집중하기 위해 수수료 무료화를 선택한 것”이라 수수료 무료화에 대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바로결제 수수료 무료화는 한 때 배달앱들이 뭇매를 맞기도 했던 공급자에 대한 수수료 갑질 논란을 일부 불식시킬 수 있었습니다. 소비자에게도 보다 편리한 주문, 포인트 혜택 등 부가적인 기능을 함께 제공해주며 신규 유입자를 촉진시킬 수 있었습니다.
배달의민족의 파격적인 무료화 행보는 플랫폼의 사용자인 공급자와 소비자를 동시에 유입시키는 결과로 돌아옵니다. 배달의민족에 따르면 바로결제 무료화 이후 소비자 신규유입은 24% 증가하였으며, 신규 등록 업소 수 또한 13.4% 증가했습니다.
물론 플랫폼 사용자 증가는 당장 회사의 이익을 가지고 오지는 못합니다. 때문에 배달의민족의 무료화가 만든 결과가 마냥 좋은 것이라 낙관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플랫폼 신규 사용자 유입은 그것에 따른 데이터의 증가를 가지고 온다는 사실입니다.
또 다른 무료플랫폼 ‘마이돌’을 살펴보겠습니다. 마이돌은 안드로이드와 가상대화를 즐길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입니다. 마이돌 사용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스타의 사진을 스마트폰 잠금 화면에 설정하고 마치 해당 스타와 직접 대화를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아이돌 스타가 먼저 말을 걸어주기도 하지요. 저도 한번 사용해봤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AOA 초아의 사진을 설정하고 나니 “심심해 지금 뭐해?”라는 등의 문자가 도착합니다. 흐뭇하죠.
현재 1000만 다운로드 수를 돌파한 마이돌은 ‘무료 서비스’입니다. 앞서 언급한 배달의민족은 ‘공급자’라는 B라인을 통해 수익모델을 만들었지만, 마이돌은 현재 수익모델이 전혀 없습니다. 순수하게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플랫폼이기 때문입니다.
마이돌은 지난해 총 10억원 규모의 추가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이 투자금 또한 ‘이용자 확보’에 사용될 계획입니다. 그렇다면 완전한 공짜 플랫폼 마이돌은 대체 무엇을 통해 수익을 창출할까요. 안드로이드의 인공지능을 업그레이드하거나, 더욱 예쁜 사진을 소비자에게 판매할까요? 마치 예전에 싸이월드가 플랫폼 사용자에게 도토리를 판매했듯이 말입니다.
마이돌의 수익모델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중 지인에게 ‘마이돌의 수익모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때 들었던 마이돌 이진열 대표의 이야기를 인용합니다.
“마이돌에 적용시킬 수 있는 수익모델은 꽤나 많습니다. 가령 어떤 아이돌의 콘서트가 끝나면 마이돌에는 ‘오늘 오빠 옷 너무 멋있었어!’ 혹은 ‘왜 또 그런걸 입고왔어?’ 등의 팬들의 반응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됩니다. 이러한 데이터는 아이돌 기획사가 원하는 마케팅 데이터가 됩니다. 판매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이진열 대표의 말마따나 마이돌에 축적되는 데이터는 상상 이상의 파괴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마이돌이 수집하는 데이터는 아이돌 팬의 원초적이며 명확한 니즈를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이돌 소속사는 그러한 데이터를 누구보다도 원하고 있습니다. 팬들은 곧 소속사가 판매하는 아이돌이라는 ‘문화콘텐츠’의 가장 열렬한 소비자, 즉 핵심 마케팅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충분한 플랫폼 사용자를 확보하고, 그로 인해 탄생하는 ‘데이터’를 통해 새로운 수익모델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는 여러 곳에서 관찰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사례는 택배현황 조회 어플리케이션 스마트택배를 개발한 ‘스윗트래커’입니다.
스마트택배는 국내외 30여개 택배사의 배송현황을 실시간으로 조회할 수 있는 앱입니다. 스마트택배 사용자는 배송목록에서 여러 택배사의 항목을 동시에 조회가능하며, 실시간으로 변하는 배송현황을 푸시알림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간편합니다. 스마트택배는 앱 사용자에게 사용료를 받지 않습니다. 수익모델은 사용자도 공급자도 아닌 전혀 다른 곳에서 탄생했습니다.
스마트택배의 수익모델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중 하나가 ‘택배 정보 판매’입니다. 스마트택배는 100만 명에 달하는 앱 사용자를 통해 택배운송과 관련된 정보를 수집합니다. 고객이 주문한 상품정보가 수집되며, 그 상품이 어느 곳에서 어느 곳으로 이동했는지에 대한 경로정보 또한 수집됩니다. 대한민국 택배와 관련된 모든 정보들이 ‘스마트택배’에 모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데이터는 유통업체에게 있어 소비자에 대한 마케팅 도구로 활용 가능합니다. 스윗트래커가 데이터 판매사업을 기획하게 된 이유입니다. 스윗트래커 김범수 COO는 “스윗트래커의 정보판매 사업은 단순 배송정보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닌, 몇 차례 가공을 통해 더욱 가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라 강조했습니다.
스윗트래커는 배달의민족과 같은 B2B2C 모형입니다. 공급자인 택배업체의 ‘정보’를 모아 소비자에게 제공해주는 플랫폼인 것이죠. 그러나 스윗트래커의 ‘택배정보 판매’ 모형은 택배업체에게도, 소비자에게도 돈을 받지 않는 모형입니다. 공급자도 소비자도 아닌 데이터가 필요한 ‘유통업체’에게서 새로운 수익모델을 창출한 것입니다. 그렇게 발생한 수익은 정보 공급자인 택배업체와 함께 나누기 때문에 공급자는 오히려 부가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삼성SDS는 지난 8월 27일 개방형 B2B 물류 플랫폼 ‘첼로스퀘어’를 출시했습니다. 첼로스퀘어는 대형화주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물류기업들이 자유롭게 진입할 수 있도록 ‘개방형’으로 설계됐습니다.
삼성SDS는 “글로벌 중소기업의 수출액 규모는 5000조원에 달하며, B2B 영역의 e커머스 또한 2000조원 이상으로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 반면 전 세계 중소기업의 수가 워낙 많기 때문에 삼성SDS로서는 일대일로 물류 솔루션을 제공하는데 어려움이 많다”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첼로스퀘어를 만든 것이라 밝혔습니다.
삼성SDS 미주 연구소 샴 필라라마리 전무는 첼로스퀘어 발표 기자회견장에서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를 비롯해 선진 물류시장에서는 온라인 플랫폼 기반의 물류 서비스가 주목 받고 있다”며 “IT기반의 물류서비스가 화주에게는 업무 간소화 및 돌발상황 에측 등 다양한 가치를 제공할 것”이라 말했습니다.
첼로스퀘어를 사용하는 화주 입장에서는 삼성SDS가 구축하고 있는 물류 인프라를 통해 구매력(Bargaining Power)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또 화물에 대한 가시성 확보 및 위험관리도 가능합니다. 첼로스퀘어 솔루션은 화물이 안전하게 운송될 수 있는 최적의 일정을 자동 계산, 추천해주며 이는 실시간으로 변하는 외부요인에 따라 자동 업데이트되기도 합니다.
물류기업 측면에서도 첼로스퀘어를 통해 한 자리에서 글로벌 고객 확보가 가능합니다. 삼성SDS가 제공하는 가시성 확보 및 위험관리 등 IT기술 또한 화주 대상으로 제공 가능하여 이를 통해 물류업체의 기술제고 또한 가능합니다.
흥미로운 대목은 첼로스퀘어 또한 화주, 물류기업 양측에 수수료를 받지 않는 ‘공짜 플랫폼’이라는 점입니다. 플랫폼 사용자는 이득을 얻을 수 있는데 정작 삼성SDS는 이를 통해 얻는 이득이 없다는 사실이 재밌습니다.
이에 대해 삼성SDS SL사업팀 장화진 전무는 “당장 플랫폼을 통해 수익모델을 만들기보다는 전 세계 물류인들이 교류할 수 있는 하나의 ‘물류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 설명했습니다. 삼성SDS가 생각하는 물류 생태계는 세계적으로 다양한 화주들이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받으며 첨단 IT환경을 통해 보다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아름답죠.
삼성SDS는 우선 첼로스퀘어 플랫폼 사용자를 더욱 확충할 계획입니다. ‘공짜 플랫폼’은 새로운 사용자 유입을 충분히 지원해주는 요소가 될 것입니다. 처음 배달의민족이 이윤창출보다 ‘고객창출’에 집중한다고 말했던 사실이 스쳐갑니다.
그렇다면 삼성SDS가 첼로스퀘어를 통해 얻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요. 아름다운 ‘물류 생태계’ 조성일까요?
앞서 스윗트래커의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스윗트래커는 ‘국내 택배와 관련된 정보’를 모아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 판매하는 사업구조를 만들었죠. 만약 첼로스퀘어를 이용하는 화주, 물류기업이 늘어난다면 삼성SDS는 이들이 배송하는 화물, 운송루트, 운송시간 등 글로벌 물류와 관련된 통합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게 됩니다.
세상 어딘가에는 이러한 데이터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존재하지 않을까요. 삼성SDS가 굳이 첼로스퀘어 플랫폼의 사용자인 화주, 물류기업에게 돈을 받지 않더라도 수익모델을 만들 수 있는 곳은 많습니다. 일단 충분한 플랫폼 사용자, 즉 데이터가 확보된다면 말이죠.
첼로스퀘어가 공짜임에 불구하고 공짜가 아닌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