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의 개똥철학
“해외여행은 자기 계발에 도움이 되는가?”
얼마 전 주변에서 이런 질문을 들었다.
이 질문은 단순히 여행에 대한 호불호를 넘어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또 개인이 어떻게 삶의 가치를 전환해 왔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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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LO에서 YONO까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YOLO(You Only Live Once)라는 구호 아래, 안정된 직장을 과감히 그만두고 세계를 여행하거나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에 열광했다. 그들의 경험은 책이 되었고, 강연이 되었으며, “나도 저렇게 살아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동경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늘 그렇듯, 유행의 소멸도 빠르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이미 일자리는 사라져 있었고, 누구나 한 번쯤 시도했던 방식이 되어버리니, 강연자나 작가로 살아남는 것도 더 이상 쉽지 않았다. 경제적 보장이 사라지고, 결국 거품처럼 사라진 유행은 이제 YONO(You Only Need Once), 거지방(거지방 라이프), 0원 챌린지 같은 새로운 흐름으로 대체되었다. 저성장 사회 속에서 우리는 가성비와 절약을 최고의 미덕처럼 이야기하게 되었다.
유튜브를 켜면 “여행은 허영이다”, “주식 배당금만큼만 여행비를 써라”, “적어도 5년은 모으고, 여행을 떠나라”라는 메시지가 넘쳐난다. 여행은 더 이상 자기 계발의 통로라기보다, 단순한 사치나 여가로 치부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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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경험: 물질에서 경험, 그리고 형이상학으로
나는 돌이켜보면, 내 삶의 가치는 물질 경험 형이상학적 무언가의 순서로 이동해 왔다.
대학생 시절, 나는 주변 사람들의 아비투스를 따라잡기 위해 명품에 집착했다.
폴스미스, 비비안 웨스트우드, 디올옴므 그리고 소위 ‘솔타시(솔리드옴므+타임옴므+시스템옴므)’로 불리던 브랜드의 옷들을 모았다. 과외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명품 중고 장터에 쏟아부으며 루이뷔통, 몽클레어, 버버리, 처치스 등의 고급 구두 브랜드까지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모든 소비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국 깨달았다.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같은 부조화. 같은 옷을 입어도 내가 닮고 싶던 사람들의 모습은 나오지 않았다.
의대를 졸업하고 공중보건의사로 일하면서는 방향이 바뀌었다. 물질적 추구에서 벗어나 경험에 매달렸다. 웨이크보드, 웨이크서핑, 승마, 골프, 스노우보드, 스쿠버다이빙, 프리다이빙 등등까지 시도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물질적 소비는 단순 허영”이라고 단정하며, 새로운 경험을 쌓는 내가 더 우월하다고 착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끝에는 묘한 허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웨이크보드를 타는 순간에는 “살아있다”는 짜릿함이 몰려왔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어김없이 공허감과 고독감이 찾아왔다. “나의 경험을 이해해 줄 사람이 없다”는 쓸쓸함. 경험 역시 물질과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이 따라왔다.
지금은 조금 다른 지점에 서 있다. 나는 현재 건강, 가족 간의 유대감, 지적인 외연의 확장 같은 형이상학적 가치에 마음이 더 끌린다. 그렇다고 해서 물질이나 경험을 무가치하다고 치부하지는 않는다. 그저 이제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조금은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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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슬로와 앨더퍼: 욕구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심리학자 매슬로는 인간의 욕구가 위계적으로 발전한다고 설명했다.
•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소속·사랑 욕구 존중 욕구 자아실현 욕구.
: 하위 욕구가 충족되어야 상위 욕구가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나는 한때 이 질서를 믿었다. 명품을 추구할 때는 그것이 최상이라고 여겼고, 경험을 쫓을 때는 물질적 소비를 비웃었다. 그리고 형이상학적 무언가에 눈을 돌리면서는 경험마저 물질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겼다. 늘 ‘더 높은 단계’에 가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던 것이다.
하지만 앨더퍼는 달랐다. 그는 인간의 욕구를 Existence(생존), Relatedness(관계), Growth(성장) 세 가지로 묶으며, 이 욕구들은 동시에 작동하고, 때로는 퇴행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상위 욕구가 좌절되면 하위 욕구가 오히려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돌아보면, 내 삶의 여정도 앨더퍼의 설명에 더 가깝다. 물질, 경험, 형이상학적 가치가 위계질서로 연결된 단계가 아니라, 유동적으로 오가며 얽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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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자기 계발일까, 아닐까?
그래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해외여행은 자기 계발에 도움이 되는가?
지금의 나에게 대답은 단순하다.
“자기 계발이고 뭐고, 진짜 가고 싶으면 가라.”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담론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 여행이 누군가에게는 자기 계발일 수 있고, 다른 이에게는 단순한 여가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호불호를 다른 요소에 영향받지 않고 알아가는 일이다.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당신의 행복을 위한 첫 번째 숙제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