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을 통해 보는 인격장애

by 김수철


이번 푸껫 여행 중, 바다보다 오래 바라본 게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


처음엔 그저 함께 일하는 선생님들의 언급이 생각나 보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빠져들었다.

느린 전개… 주인공들의 깊은 심리묘사… 그리고 재벌/출생의 비밀/PPL이 없는 특이한 한국드라마

그저 두 사람이 묘하게 엇갈리고, 맞부딪히는 그런 이야기였다.

그런데 정신과 의사로서 보니, 이건 단순한 멜로가 아니었다.

인격의 구조와 방어기제가 살아 움직이는 심리극이었다.



“쟤는 왜 저래?”의 다른 질문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쟤는 왜 저래?”

하지만 정신과 의사의 질문은 조금 다르다.

“쟤는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은중과 상연〉을 그렇게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로 보인다.

‘은중과 상연의 대립’이 아니라,

내면의 상처가 어떻게 사람을 왜곡시키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인격장애란 무엇인가


DSM-5에서 인격장애는 이렇게 정의된다.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고 관계 맺는 방식이 지속적으로 경직되고 왜곡된 상태.


주로 이 네 가지 영역에서 문제를 보인다.


1️⃣ 인지 — 자신과 타인,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이 비틀림

2️⃣ 정동 — 감정이 지나치게 과도하거나, 너무 둔감하거나

3️⃣ 대인관계 — 친밀함을 유지하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깨짐

4️⃣ 충동조절 — 순간 감정에 휘둘려 파괴적인 행동을 함


이런 패턴이 성격 전체를 지배하면서,

삶의 거의 모든 장면에 영향을 미친다.


즉, “그때만 그랬던 게 아니라, 늘 그런 사람인 경우”다.



상연 — 상처를 숨기기 위한 과잉의 방어


드라마 속 상연은 은중의 작품을 훔쳐 성공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너도 나처럼 망가졌으면 좋겠어.”


이 장면에는 상연의 전 인격이 압축돼 있다.


• 인지의 왜곡: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을 오히려 위협으로 인식한다.

• 정동의 불안정성: 감정이 감당 불가능할 만큼 폭발적이다.

• 대인관계의 붕괴: 사랑하는 사람을 공격하고, 믿는 사람을 배신한다.

• 충동적 행동: 일을 갑자기 그만두고, 감정적으로 결혼하고, 자기 파괴적 선택을 반복한다.


상연의 이런 모습은 단순한 ‘나쁜 성격’이 아니다.

그녀는 트라우마 속에서 “상처받기 전에 먼저 공격하는 법”을 배웠다.

결국 자기애적 성향과 경계선적 성향이 뒤섞인 인물이다.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죽는 것보다 중요하고,

끊임없이 애정을 갈구하나, 애정을 느끼면 불안해져 도망가는 그런 사람.


그녀의 공격성 뒤에는, 버림받을까 두려운 상처받은 어린아이가 숨어 있다.



은중 — 이해하려 하지만 구원하려는 사람


은중은 상연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다.

하지만 동시에 ‘구원하려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런 관계는 심리학적으로 공동의존(co-dependency), 병적결합 (pathologic bonding)이라 부른다.

한 사람은 끊임없이 구원하려 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 구원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무너진다.

이 관계는 결국 서로의 결핍을 자극하며,

“너 없인 살 수 없지만, 너와 함께할 수도 없는” 상태로 이어진다.


“은중은 상연의 상처를 보며 자신의 존재 이유를 확인했고, 상연은 은중의 선함을 보며 오히려 분노했다.”


그들의 관계는 사랑이 아니라, 결핍이 서로를 향해 부딪치는 충돌이었다.



미움과 사랑 사이 — 우리의 마음에도 있는 은중이와 상연이


〈은중과 상연〉은 사실 인격장애의 교과서적인 장면들로 가득하다.


누구나 상연처럼

사랑받고 싶으면서도 가까워지면 두려워하고,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는 동시에 시기/질투가 올라온다.


누구나 은중처럼

아낌없이 사랑을 퍼주고 상대에게 상처받고,

다시는 사랑을 주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또 사랑을 주며 후회한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불편하면서도, 묘하게 끌린다.

그들의 불안정한 관계 속에서 우리의 그림자를 보기 때문이다.



인격장애는 이상한 성격이라기보다, 삶의 언어다


정신의학에서 인격장애는 단순히 “이상한 성격”이 아니다.

그건 각자의 생존 방식이다.

너무나 큰 고통에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든 삶의 언어다.

단지 그 생존방식이 나를 지키기보다, 고통받게 하는 것이다.


상연이 그토록 왜곡된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했던 이유는,

진심으로 사랑했던 대상들과의 갑작스러운 또는 안타까운 이별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방어기제는 때로는 잔인하지만, 동시에 절박하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인격장애를 이해하는 일은, 인간을 이해하는 일이라고.



드라마 속 은중과 상연을 보며 우리는 묻는다.


“재네들은 대체 왜 저럴까?”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 질문은 곧 이렇게 바뀐다.


“혹시 나도, 저런 면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때 비로소,

나와 나를 둘러싼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고 드라마가 아니라 우리 마음의 이야기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