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본, 세대 간 대화가 막히는 이유

by 김수철


가족과 함께 차를 타고 해운대를 지나가던 어느 날이었다.

마린시티의 고층 아파트들을 보며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내가 어릴 때는 여기가 다 뻘밭이었어.”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곧바로 다른 이야기를 꺼내셨다.

“여기 한국전쟁 때 미군 비행장이었어. 나 여기서 돌 줍는 일도 했고.”


같은 풍경을 보며

나는 빌딩 숲을 떠올리고,

어머니는 간척지를 떠올리고,

아버지는 전쟁 직후의 시간을 떠올린다.


이 장면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과연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



진료실에서 반복되는 익숙한 장면


정신과 진료실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자주 마주한다.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는 분명 같은 한국어를 쓰지만,

서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회 적응의 어려움으로 병원을 찾는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환자들을 보면

세대 간 대화가 왜 이렇게 자주 막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들에게서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특징들이 있다.



1. 똑똑하지만, 심리적 유연성은 낮다


이들은 매우 스마트하다.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문화적·교육적 자원을 충분히 누리며 성장했다.


자연스럽게

자아, 무의식, 내적 세계에 대한 관심이 높고

외부 환경에 적응하는 에너지보다

내면을 조율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쓴다.


다만 보호된 환경 속에서 성장한 만큼

자신의 경계를 벗어나는 경험은 상대적으로 적다.


그래서

정확한 지시와 안내가 주어질 때는 잘 움직이지만

자발성은 낮고,

예측되지 않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은 큰 편이다.



2. 공정성에 대한 민감도가 매우 높다


이 세대는 개인의 경계가 분명하다.

그리고 그 경계를 넘는 것에 매우 민감하다.


개인의 권리, 침해, 불공정함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데 거리낌이 없고

이를 외부로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다.


이 변화는 분명 의미가 있다.

다만 이전 세대와의 대화에서는

갈등의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3. ‘최적화된 인생’을 살려고 한다


정보는 넘쳐난다.

그래서 이들은 방황하기보다

정보를 수집하고, 분류하고, 정리해

가장 효율적인 경로로 인생을 설계하려 한다.


생산성은 높고, 합리적이다.


하지만

청결 강박 환자가

‘완벽하게 씻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씻지 못하는 것처럼,


최적의 선택을 고민하다

결정하지 못하고 멈춰버리는 경우도

진료실에서는 자주 보인다.



우리는 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까


영화 컨택트에는

외계인과 소통하기 위해

언어학자가 고군분투하는 장면이 나온다.


“언어는 문명의 초석이자,

사람을 묶어주는 끈이며,

모든 분쟁의 첫 번째 무기다.”


각 세대는

서로 다른 문화를 공유하며 성장했고

머릿속에 설치된 ‘운영체제’ 자체가 다르다.


겉으로는 같은 말을 하지만

그 말 아래 깔린 의미, 맥락, 비언어적 신호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대화는 어긋나고

오해는 쌓인다.



대화를 포기하지 않으려면


이 간극을 줄이는 방법은

사실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표현된 언어 아래 깔린 의미까지 이해하려는

길고 깊은 대화를 지속하는 것.


다른 하나는

의미를 최대한 제거한

정보 전달 수준의 대화만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깊은 대화에는

시간, 에너지, 정서적 여유가 필요하다.

효율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이 선택은 늘 어렵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


대화할 때

상대가 “어련히 알아차리겠지”라고

기대하지 말자.


의도는

조금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그에 대한 반응에

내 감정을 과도하게 투사하지 말자.


존중하며,

오해가 쌓이기 전에

열린 대화를 이어가 보자.


다만 그 대화를 버텨낼

체력과 심적 여유는

미리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