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유튜브, 무임승차, 그리고 성숙한 사회의 조건

by 김수철


오랜만에 광장시장에 갔다.

육회자매집에서 육회&비빔밥을 먹으려고 셀프오더 기계를 눌렀는데,

화면에 각종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백만 유튜버가 알려주는 AI로 돈 버는 비법!”

“실제 코칭 사례 공개!”

“지금 연락 주시면 300만 원 상당의 비법서 PDF 증정!”


그 광고를 보며

요즘 계속 마음에 걸리던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절박함은 언제나 가장 좋은 먹잇감이다


진료실에서 보던 사기 피해자들을 떠올려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완전히 작정한 범죄를 당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절박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는 점이다.


당장 돈이 필요하거나,

지금의 삶을 벗어나고 싶거나,

미래에 대한 불안이 너무 커서

‘정상적인 경로’를 견딜 여유가 없어진 상태.


사기꾼들은 그걸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그들은 늘 인간의 심리를 공부한다.


AI든, 코인이든, 부동산이든

도구는 계속 바뀌지만

먹히는 지점은 늘 같다.


노력은 최소로, 보상은 확실하게.



AI 유튜브는 왜 이렇게 빠르게 늘어났을까


요즘 유튜브에는

AI가 쓴 대본에, 조악한 삽화, AI 음성을 입힌 영상들이 쏟아지고 있다.


내용은 대부분 식상하다.

새로운 통찰도 없고, 깊이도 없다.

그런데도 조회수는 놀랍도록 잘 나온다.


이 영상들의 상당수가

경제, 투자, 돈 이야기를 하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사람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영역,

즉 생존과 직결된 주제이기 때문이다.


불안이 커질수록

사람은 복잡한 사고를 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 당장 나아질 수 있을 것 같은 선택지”에 손이 간다.


이건 콘텐츠의 승리가 아니라

불안의 승리다.



무임승차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의 기본값


AI 유튜브를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보면

마치 사회에 무임승차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플랫폼의 신뢰도와 질을 소모하면서

눈앞의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행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발만 물러나서 보면,

이 행동은 특별히 악해서라기보다

너무 인간적인 선택에 가깝다.


누구나

같은 노력으로 더 큰 보상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선택을 완전히 외면하기는 어렵다.


사람들이 갑자기 무임승차를 꿈꾸게 된 게 아니라,

오랜 노력 끝에 불확실한 보상을 기다리는 방식을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워졌을 뿐이다.


이건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보상 구조의 문제다.



그래서 성숙한 사회는 개인에게만 기대지 않는다


성숙한 사회는

개인의 양심과 도덕성에

모든 걸 맡기지 않는다.


자신의 이득만 취하려고 하면 손해가 되도록,

다른 사람을 배려하면 이득이 되도록

시스템을 설계한다.


AI 유튜브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개별 창작자를 비난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그 방식이 ‘먹히도록’ 만들어진 플랫폼의 구조가 문제다.



하지만 시스템이 과해질 때 생기는 풍경들


다만 아이러니한 지점은

이 시스템화가 지나칠 때도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개인의 판단과 맥락이 사라지고,

모든 상황이 규칙과 책임, 처벌의 문제로 번역되는 순간이다.


교권 추락 논란을 떠올려보면 그렇다.

예전 같으면 인간 대 인간으로 조율하고 넘어갔을 일들이

이제는 모두 회의가 열리고,

서류가 만들어지고,

결국 처벌과 고소·고발로 이어진다.


옛날 기준으로 보면

“정이 없다”는 말이 나올 법한 장면들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개인의 냉혹함이라기보다

모든 판단을 시스템 안으로 밀어 넣은 결과에 가깝다.



우리는 지금 두 극단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


AI 유튜브 문제도

이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개인의 도덕성에 맡기기엔

이미 너무 커진 시장이고,

모든 걸 규제로 막기엔

사회가 지나치게 경직된다.


우리 사회는

‘각자도생’과 ‘과도한 시스템화’ 사이를

진자처럼 오가고 있다.



결국 필요한 건 균형 감각이다


이건 AI의 문제도,

유튜브의 문제도 아니다.


불안한 사회에서

인간의 본능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그리고 그 본능을

어디까지 시스템으로 다룰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비난도, 방임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의 균형.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그 기간 동안 아마 우리는

답을 찾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흔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