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비만학회 연수교육을 다녀온 후 배우고 느꼈던 여러 가지 것들을 두서없이 정리해 보았다.
비만은 더 이상 “의지 부족”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명확하게 질병이다.
최근에는 ‘비만’이라는 표현 대신 ‘비만병’이라는 개념이 강조된다.
과도하게 축적된 지방이 신체의 대사·호르몬·면역 기능을 교란하는 만성질환이라는 의미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이렇게 말한다.
“다이어트는 마음먹기에 달렸다.”
정말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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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를 실패하면 사람들은 대개 자신을 비난한다.
“내가 나약해서 그렇지.”
하지만 진짜 문제는 개인 내부보다 외부환경에 있다.
• 배달앱은 24시간 열려 있다.
• 고열량 음식은 가장 싸고 접근성이 좋다.
• 스트레스는 높고 수면은 부족하다.
• 기본 활동량은 줄어들었다.
인간의 뇌는 원래 고칼로리 음식에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의 환경은 그 반응을 무한히 자극한다.
의지가 약한 것이 아니라 환경이 지나치게 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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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중반, 165cm, 95kg 여성에게 처방된 감량 식단을 보자.
• 아침 : 계란 2개
• 점심 : 작은 햇반 1개 + 고등어
• 저녁 : 계란 2개 + 바나나 1개
이 식단을 보면 대부분 이렇게 반응한다.
“이걸 먹고 사람이 살아?”
“여자 아이돌 식단 아냐?”
하지만 운동을 거의 하지 않는 40–50대 비만 여성의 경우,
이 정도가 오히려 적정 칼로리 범위에 가깝다.
문제는 우리가 너무 적게 먹고 있다고 착각한다는 점이다.
현대인은 생각보다 훨씬 많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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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전에 철인 3종 경기에 참가했었다.
당시 기록표를 보면,
수영 1.5km + 자전거 40km + 러닝 10km
총 소모 칼로리 1598kcal
빅맥 라지 세트와 맥너겟 몇 조각
또는 두쫀쿠 4개면 상쇄된다.
밥 한 공기를 먹는 데 5분이 걸린다.
그 열량을 빼려면 한 시간 이상 걸어야 한다.
우리는 먹는 것은 과소평가하고
운동량은 과대평가한다.
이 간극이 체중 증가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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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기준 우리나라 비만율은
(BMI 25 이상)
• 남성 49.6%
• 여성 38.4%
남자 둘 중 한 명, 여자 셋 중 한 명이 비만이다.
하지만 우리는 “SNS/TV/유튜브 보면 다 날씬하던데? “라고 느낀다.
왜냐하면 몸 관리를 하는 사람은 더 철저히 관리하고,
관리하지 않는 사람은 아예 노출조차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운동시설에서 체감하는 현실도 비슷하다.
이미 건강한 사람들이 더 열심히 운동한다.
정작 운동이 필요한 사람들은 헬스장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
몸 역시 양극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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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음식은 생존 수단이 아니라
하나의 주요한 즐거움이 되었다.
특히 아이들은 배고픔을 거의 경험하지 않는다.
배고픔과 심심함의 경계가 흐려져 있다.
소아청소년 비만율은 약 19% 수준이다.
소아비만은 성인비만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자기 조절 능력은 아직 성숙하지 않았는데
환경 자극은 끝없이 무한정 제공된다.
이미 미래의 비만 후보군은 준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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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P-1 계열 약물은 체중 감소에 매우 효과적이다.
• 위고비
• 마운자로
• 경구제 후보물질들 (orforglipron)
투여하면 상당수에서 체중이 감소한다.
이제 “살이 빠질까? 안 빠질까?”의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무엇이 빠지느냐다.
약제를 통한 체중 감소 시 대부분 근육 손실을 동반한다.
근육량이 감소한 상태에서 약을 중단하면
요요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결국 우리는 다시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하고 근력운동을 병행하라”는
기본 원칙으로 돌아온다.
지름길은 있지만 대가는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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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지방만 선택적으로 줄이고
근육은 유지하거나 증가시키는 약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날이 오면 세상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노력, 절제, 자기 통제라는 가치가
재정의될 수 있다.
체중은 더 이상 개인의 노력의 상징이 아니라
구매 가능한 결과가 될지도 모른다.
그 변화는 편리하지만, 동시에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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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뀐 게 하나도 없잖아!!!”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적어도
더 과학적이고
더 체계적인 접근이 가능해졌다.
다이어트 알약을 수십 개 복용하고
무조건 굶고
땀복을 입고 달리던 과거에서
약제를 통한 체중감량,
유산소와 저항운동을 통한 기능 개선,
식이처방을 통한 근육량 유지의 현재로.
의학은 계속 진화하고 있고,
결국 우리는 적절한 답을 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