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모바일 디자이너로 보낸 3년간의 이야기 #3
오늘은 조금 투덜대고 싶다. #1에서 마냥 즐겁게 일했던 것처럼 썼지만 답답한 점도 매우 컸기 때문이다. 요즘 쿠팡에서 디자이너도 많이 뽑고 있는데 여러 관점으로 비교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쿠팡엔 UX Bible이 존재한다. 한 번씩은 들어봤을, 혹은 지금 UX 관련 부서 책장에 꽂혀있을 그런 책이다.
스티브 크룩의 'Don't make me think'. 국내엔 '상식이 통하는 웹사이트가 성공한다'라는 제목으로 2001년에 출판되었다. 최근에 모바일이 추가되어 다시 나왔지만 2012년엔 2001년 판으로 읽었다. 미국에선 필독서로 뽑히는 책이었는지 대표는 이 책을 전 직원에게 필수적으로 읽고 이 내용을 따르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책에 나온 내용을 거스르면 큰일이 날 만큼 BIBLE 수준으로 절대적인 책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에겐 '애증'의 책이다. 내용은 굉장히 좋다. UX에 관한 기초적인 상식들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통찰력이 높은 책이다. 지금도 여기에 나온 얘기들을 곱씹으며 디자인하는데 참고하기도 한다. 사용자가 웹/모바일을 '의식'이 아닌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게 해야 한다는 점이 내가 해석하는 핵심이다. 이 책 때문에 모든 직원들은 같은 기준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돼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막을 수 있었다. -누군가는 옛날 책이라며 깎아내리기도 하는데 그런 사람에겐 이런 얘길 해주고 싶다. '사람의 무의식은 그렇게 빨리 변하지 않아요.'
이 정도가 이 책의 장점이라면 쿠팡의 디자이너들을 괴롭혔던 부분은 비 디자이너가 너무 직접적으로 디자인의 표현을 결정지으려 했다는 점이다.
첫 번째로 행동 유도성(Affordance)이 있다. 2001년판엔 구체적으로 '입체감'이라는 단어를 강조했었다. 언젠가는 대표가 나에게 직접 아이콘은 볼록해야 한다며 신신당부를 할 만큼 UX헌법 제1조에 해당하는 규칙이었다. 모든 버튼은 입체감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당연히 입체감을 내기 위해선 그라데이션을 사용해야 했는데 그 당시는 애플의 스큐어모피즘이 유행하던 시기라 크게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위기는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2013년 애플이 iOS7을 발표했던 날, 그 시각적 유희에 들떠있었지만 암울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 우리는 저렇게 하면 사형인데......'
물론 나도 Flat Design이라고 불리는 디자인 흐름의 추종자는 아니다. 인지적/효율적 측면에서 당연히 입체감은 평면보다 효과적이다. 오히려 Flat만을 주장하는 디자이너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입장이다. 하지만 페이지 내부의 시각적 소음(Visual Noise)을 줄이고 주변과의 맥락이 명확하다면 평면과 입체감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입체감은 꼭 필요한 곳에만 쓰기 위해 아껴야 할 요소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이 규칙은 아직도 쿠팡 디자이너들을 괴롭히고 있다.
두 번째는 탭이다.
쿠팡에서는 이렇게 생긴 탭만이 탭으로 인정된다. 세그먼트 컨트롤(Segment Control)은 탭의 변형된 UI인데도 탭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2013년쯤, 작은 개편을 하면서 아무도 모르게 볼록한 버튼들에 손을 댔다. 아무래도 그라데이션 떡칠한 앱의 낡은 느낌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렇다고 평평하게 디자인을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타협한 것이 납작한 입체 버튼이다. 1mm만 남기고 납작하게 잘라낸 형태의 버튼. Navigation Bar와 Tab Bar에서 그라데이션을 제거했다. 그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다행히 아무도 눈치 못 챈 것 같았다.
그렇게 몰래몰래 바꿔가다 결국 눈치를 챘나 보다. 홈 Tab bar가 왜 탭처럼 생기지 않았는지에 대한 지적이 내려왔다. 구체적으로 그라데이션을 넣어서 바꾸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추가로 검색창은 펼쳐 놓으라는 얘기도 함께. 앱 업데이트 마감을 위해서 정신없었던 때라 급하게 대안 마련하기가 어려웠던 상황이다. 그래서 그렇게 업데이트됐다.
그 후 몇 번의 업데이트를 통해 탭 형태의 디자인은 사라졌지만 온 몸에 힘이 빠지며 부들거릴 정도로 힘들었던 사건이었다. 이 정도면 쿠팡 디자인이 왜 엉망인지 이해할 수 있을까? 물론 내 부족함에 대한 변명은 아니다. 나도 부족했다. 모바일 디자인에 대한 철학이 생기기 전까지 삽질도 많이 했고 그 결과들이 최근까지 남아있었다. 그런 요소들이 다 합쳐서 디자인 품질의 낙후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혹시나 쿠팡에 가서 디자인을 확 바꿔주겠다는 의욕을 가지고 입사를 하려고 한다면 말리고 싶다. 이건 회사 철학과 시스템의 문제라 개인이 바꾸기엔 쉽지 않다. 언젠간 좋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은 희망으로 버텨봤지만 끝내 포기하게 됐다.
모바일 디자인 원칙을 수립하고 프로토타입을 디자인하면서 생각했다. '이 프로토타입은 쿠팡에서 절대 반영시킬 수 없겠구나.' 쿠팡을 나오게 된 가장 큰 이유중 하나는 이 스티브 크룩의 규칙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며 새로 디자인한 프로토타입을 반영할 수 있는 회사를 찾고 싶었다. 논리적으로는 스티브 크룩이 맞지만 개인적으로는 완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꽤 큰 컴플렉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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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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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I/GUI Desig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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