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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코티시 Feb 12. 2016

프롤로그 : 밑밥

밑장빼기 같은 얕은 수

글을 쓰는 게 무섭다

일단 하나 써두면 앞으로 글 쓰는 게 좀 더 편해질 것 같아서 글을 '써두려' 한다


내 문투가 일본스러워서 주저하게 된다. 어릴 적 일본어 번역본을 너무 많이 읽고 심취했나보다. 잡스러운 번역어투의 만화를 많이 봤다. 세일러문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나는 조금 더 조신했을게다. 우리 할머니는 내가 얌전할 때만 칭찬했다. 그래서 나는 얌전하지만,


아 나의 글은 이렇게 주제를 벗어난다.

말하자면 주제가 없다.


곁다리 때문에 글이 재미있어지는 거라고 어느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그러나 곁다리만 있는 게 내 글이다. 뼈대가 없다.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내보낸다. 왜냐하면 쓴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고치기를 귀찮아한다. 천성이 게을러 흐르는 시간을 느끼며 아득바득 글을 뜯지 않는다.


괴롭게도, 나는 내가 글을 못 쓴다는 것을 안다. 내 글이 아름답지 않다는 것도 안다. 취재하지도 않고 게을리 쓰는 글이다. 평생 한 자국 남지도 않는 먼지 같은 글을 쓰고 있으며, 그래도 좋아한다.


나는 비난받을 글을 쓰면서도 글 쓰고 있다는 것에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참 못됐지. 읽는 사람의 시간을 뺏고 쓰는 내 자신을 자위하는 글. 지금 내 실력이 이뿐이라 어쩔 수 없이 이런 글을 쓰게 된다.


게다가 나는 글을 이용한다.

다음부터는 좀 더 자유롭게 쓸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이글로 밑밥 깔았다. (지금 나는 밑밥 깐다는 말이 너무 좋아졌다. 밑밥 까는 음흉한 기분을 한껏 느끼며, 퇴근길 지하철의 현실에서 조금 떨어질 수 있었다. 그런데 밑밥깐다는 말이 맞춤법이 맞나 모른다. 찾아보면 되지만 귀찮아. 브런치에 국어사전이 달려 있거나 맞춤법 검사를 해주시면 감사할텐데. 내가 이렇게 똥 닦은 뒤에 아픈 똥꼬처럼 질질 끄는 이유는 글을 끝맺고 싶지 않아서다.


지하철 내릴 때까지만 쓸게.


무슨 얘기 했었지?


아, 난 글 못써. 그러니까 기대하지마.

-누가 기대했냐고? 내가 기대한다. 내가 글을 잘 쓸지도 모른다고 기대하고 있다.

 )



내가 지금부터 쓸 주제를 고민하고 있다.

나는 예쁘다. 내 생각엔 그랬다. 그런데, 얼마 전 내 등급이 2.5등급이라는 걸 알았다. 5점 만점에 별점 2~3개...


뭇남성들의 시선에 낮은 평가를 받고 헌팅을 잘 당하는 미녀와 아울렛을 가서 제대로 코치를 받았다.


흰 니트를 샀고, 플레어 치마를 입었다.



나는 내가 정말 예쁜 줄 알았다. 내가 나를 예쁘게 꾸몄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내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과, 남들이 '예쁘다'고 생각하는 게 다르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예쁘다고 하는 모습으로 바꾸려고 한다. 나도 연애하고 결혼하규뀨웅 .. 해야지


그렇지만 나는 내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사랑한다. 그래서 그 예쁜 것들이 얼마나 예쁜지, 남겨두고 싶다. 그렇다. 예쁘지 않은 게 억울해서 글을 쓴다.


내가 내릴 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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