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ㅋ

by 한량


낯선 아저씨가 집에 찾아왔고, 큰 형님과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더니 어르신에게 다가왔다. 그리곤 손을 내밀며 "가자"라고 했다.


어르신은 거부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아저씨였다. 낯선 아저씨에 대한 공포가 아직 어르신에게 있었다. 큰 형님이 어르신에게 다가와서 "삼촌 따라가. 가서 조금만 지내고 있어." 살아생전 몇 번 대화 나눠보지 못한 큰 형님의 말이었다. 그래서 더욱 커 보였던 큰 형님이었다.


큰 형님은 그렇게 말하며 어르신 짐을 삼촌이라는 사람에게 들려줬다. "가기 싫어 형, 가기 싫어." 울먹이며 큰 형님에게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삼촌이라는 사람은 손아귀 힘이 셌다. 뿌리치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어르신은 삼촌이란 사람에게 거의 끌려갔다. 문 앞에 다다를 때까지 어르신은 울부짖었다.


"엄마, 엄마, 엄마아, 어엄마, 어엄마아"


그 모습이 우리 안에서 끌려가는 어미를 부르는 강아지 같았다. 늘 어르신을 꼭 끌어안아주고, 누구보다 먼저 달려 나왔던 어머니였지만, 그날은 굳게 닫힌 문이 열리지 않았다. 삼촌을 따라가라던 큰 형님은 고개를 떨군 채 뒤돌아 보지 않았다.


집 앞에 있던 인력거에 올라 어르신은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갔다. 가는 동안 내내 울부짖었고, 삼촌이라는 사람은 시끄럽다며 어르신을 다그쳤다. 무서웠던 어르신은 입을 꾹 닫고 흐느꼈다. 다시는 어머니를, 누나들을, 동생들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르신이 심심하면 돌아다녔던 동네와 익숙한 풍경이 점점 낯선 풍경으로 변했다. 길을 잃을까 넘어가지 못했던 언덕을 지나 동네를 벗어났다. 처음 보는 풍경들이 지나갔다. 어르신은 돌아가는 길을 몰랐고, 돌아갈 수 없었다.


한참 걸려 간 집은 어르신이 살던 것보다 훨씬 좋은 집이었다. 삼촌이라는 사람은 어르신을 작은 방으로 끌고 갔고, 집어던졌다. 딱딱한 바닥에 무릎을 찧었다. 너무 아파 무릎을 붙잡고 아파하는 어르신에게 삼촌은 "앞으로 여기서 지내는 거다"라고 말하곤 방문을 쾅 닫고 가버렸다. 무서웠다. 어머니도 없고, 누나들도 없다, 동생들도 없다. 낯선 곳에서 혼자 남겨진 어르신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추워서 떤 게 아니라, 무서움 때문이었다. 그러다 지쳐서 잠이 들었고, 다음날부터 일어나 해보지도 않은 밭일을 해야 했다.


처음 하는 일은 모든 게 어색하고 서툴렀다. 하지만 실수는 용납되지 않았다. 잘못하면 바로 삼촌이 매를 들었다. 매는 별게 아니었다. 그냥 손에 잡히는 게 매였다. 나뭇가지, 다 쓴 연탄, 억센 지푸라기 뭉치. 손에 들린 게 무엇이든 가리지 않았고, 삼촌이란 사람은 손에 무엇이든 들었다. 일하다 짐이 무거워 무릎이 꺽이면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매를 맞았다. 소나기 같은 매질이었다. 때로는 실수가 없어도 본인 기분이 나쁘면 어김없이 매질이 시작됐다. 그때 매질은 온 힘을 다해 휘두른 매가 부러지거나, 제 힘이 꺽여서야 끝났다.


맞으면 아팠고, 아프면 무서웠다. 몇 번씩 잘못했다고 말하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빌 때가 돼서야 삼촌은 매를 거뒀다. 태어날 때부터 몸이 허약했다는 건 통하지 않았다. 자기 몸무게에 몇 배는 될 것 같은 수확물을 옮겨야 했고, 하루 종일 허리 굽혀 일해야 했다. 심하게 일한 날은 가만히 있어도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렇게 하루 종일 일하고 해가 빠지면 집으로 돌아왔다. 실수한 날이면 유독 밥이 더 적었다. 그러면 서글퍼서 울었고, "사내 새끼가 계집처럼 운다"며 욕을 먹었다. "개새끼야 시끄러워, 닥쳐." 우는 것조차 자유롭지 않은 그 집은 어르신 껜 지옥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난지도 모르고 일했다. 맞으며 일하는 것에 길들여져 어르신은 반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어르신을 "개새끼"라고 불렀다. 개집에게서 데려왔다고 하여 불린 이름이었다. 개집 자식, 개새끼. 분명 사지 멀쩡한 사람이지만, 최소한의 존중도 인격도 대우도 없었다.


배운 건 없지만, 자신의 처지는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도망치고 싶었다. 어떻게든 살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밤, 어르신은 집에서 도망쳤다. 야반도주였다. 너무 정신없이 도망쳐서 어떻게 빠져나왔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신없이 뛰었다. 꽁지가 빠지게 도망쳤다. 사냥감이 포식자에게 도망치듯 전력을 다해 뛰고 뛰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맨발로 거리를 뛰고 있었고, 발은 군데군데 긁혀 상처가 낫고, 그 위를 온갖 먼지가 뒤덮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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