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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팔청춘 Nov 14. 2022

불평등을 막는 방법

책, <최고임금>



최고임금
(샘 피지게티 / 루아크 /초판 1쇄/ 2018.12.05)

- 불평등을 막는 방법 -



매년 6, 7월 정도가 되면 뉴스를 들썩이는 주제가 있다. '최저임금'이다. 다음 해 최저임금을 얼마로 할지, 근로자 집단과 사용자 집단의 대표가 긴 협상을 한다. 서로가 원하는 액수를 내놓고, 그 안에서 의견을 조율하며 금액을 정한다. 물론, 원만하게 되는 경우는 없다.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 않거나, 나와도 나가버리는 경우도 있다. 보통 근로자 측은 그 임금으로는 생계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사용자 측은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의 부담이 커진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최저임금은 어느 측이 맞다, 틀리다를 명확하게 따지기 어렵다. 근로자, 사용자 측 모두 일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협상 테이블에 근로자, 사용자 측만 있는 게 아니라 공익 위원도 함께 한다. 세 집단의 결정으로 최저임금이 결정된다. 2022년의 최저임금은 9,160원이고, 2023년 최저임금은 9,620원이다. 주 52시간 일한다고 했을 때, 2022년에 받을 수 있는 월급은 1,914,440원이다. 하루 8시간 근무 시 받는 돈은 73,280원이다. 한편, 기사에 따르면 모 그룹 회장의 연봉이 86억 원이었다고 한다. 하루에 2,400만 원을 번 꼴이다. 최저임금 대비 327배 더 많이 벌었다.


최저임금이란 한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금액을 말한다. 최저임금을 높이는 것은 최하위층의 소득을 상향 평준화하는 방법이다. 최저임금이 상승되면 최하위 급여를 받는 사람들이 올라간 급여만큼 선택지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수많은 사람들이 최저임금을 받으며 풀타임으로 일하지만, 삶은 더 나아지지 않는다. 더 열심히 일할 수록 삶은 더욱 어려워진다. 그 이유는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고, 부자들이 더 많은 혜택을 받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버는 돈에는 제한이 없다.


책, <최고임금>은 최저임금의 한계선은 있으면서, 왜 최고임금의 한계선은 없는지 의문을 던진다. 또한 이것이 불평등을 일으키는 원인이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최고임금 받는 사람의 급여를 최저임금 받는 사람의 급여와 연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는 가장 낮은 급여를 받는 사람의 10배를 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을 받으며 월 1,914,440원을 받는 사람이 있다면, 최고임금 받는 사람은 월 19,144,400원을 초과해서 받을 수 없다. 이 급여를 초과할 경우 100% 세금을 물려서 회수하자는 이야기다.


저자인 샘 피지개티는 최저임금과 최고임금을 묶게 되면 부수 효과가 나온다고 주장한다. 우선 근로자의 복지가 증진한다. 높이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급여를 높이기 위해선, 밑에 있는 사람들의 급여를 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근로자들 또한 이러한 제도가 정착되도록 노력할 것이고, 정치권에서도 핵심 아젠다로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높은 급여를 받는 사람들이 낮은 급여를 받는 사람들의 복지를 신경 쓸 것이고, 정치권에서도 이들에 대한 처우가 보다 활발하고 핵심적으로 논의될 거라는 주장이다.


또한, 거대기업의 경우 대부분 국가와 함께 사업을 추진하는 경우가 많은데, 최저-최고임금을 연동하지 않은 기업에게 해당 사업을 수주할 권한을 박탈하거나, 계약을 하지 못하도록 하자고 주장한다. 그렇게 할 경우, 기업 경영진들은 최저임금 받는 사람들의 처우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 샘 피지개티는 이를 위해서는 그저 이 길을 택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샘 피지개티의 주장이 어처구니없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실제 최고임금에 대한 움직임은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주장이다. 실제 국내에서도 2018년 당시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최고임금을 주장했었고, 스페인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최고임금 받는 사람의 급여가 최저임금 받는 사람 급여의 6배를 넘지 못하도록 했다. 아 움직임만 봐도, 급여 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으며 실천 움직임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


비단 협동조합만이 아니라, 기업도 움직이고 있다. 비콥 기업 대부분의 CEO와 직원 간의 급여 차이가 7:1 정도이며, 닥터 브로너스의 경우 CEO-직원의 급여가 5배를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기업 차원에서 불평등 문제를 인식하고, 행동한다는 건 분명 주목할만하다.


큰 기업들이 변하지 않는다면, 작은 기업들의 변화를 만들고 파이를 키우고 하나의 움직임을 만들 수 있다. 기후변화 문제와 함께 가장 큰 문제는 불평등과 양극화이다.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기업에게는 벌금을 물리고, 투자를 제한하면서 불평등을 야기하는 기업과 문화를 이끄는 곳에서는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면, 양극화와 불평등은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양극화와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최고임금을 제한하는 것이 분명 필요해 보인다.


밑줄

- 과하면 엉망이 되는 법이다. 우리 사회는 이런 실상을 본능적으로 잘 알고 있기에 과함을 방지할 수 있도록 제한을 둔다. 가령, 도로에서 최고 속도를 제한하고, 공장에서 하천으로 내다 버리는 폐수를 규제한다. 이웃 주민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소음도 통제한다. 하지만 우리가 모든 것에 제한을 가하지는 않는다. 개인 소득은 제한하지 않는다. 부자들이 더 부자가 되는 '속도'에도 '제한'을 두지 않는다. 그래서 부자들은 더 부유해졌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부자로 말이다.(p5~6)


- 국제 빈민구호활동 단체인 옥스팜 Oxfam은 크레디트스위스 연구소에서 산출한 숫자들을 기억하기 쉬운 이미지로 전환하는 작업을 해왔다. 2009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억만장자 380명이, 이를테면 대형 여객기 한 대에 탈 정도의 작은 집단이 가장 가난한 인류의 절반과 맞먹는 부를 쥐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2017년에 이르러서는 억만장자 42명의 순자산 총합이 세계인의 절반인 하위 37억 명의 전체 순자산을 상쇄할 수 있었다. 이 42명은 일반 버스에 편안히 탑승할 수 있는 인원이다.(p.7)


- 최저임금의 몇 배에 해당하는 최고 소득 상한선을 새로이 설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몇 배수가 넘는 소득에는 모조리 100퍼센트 세금을 물리는 것이다. (중략) 이런 방식으로 설정된 최고임금은 곧바로 사회 내 최하위층과 최상위층의 경제적 운명을 얽어맬 것이다. 19세기 펠릭스 애들러의 고전적 표현을 써서 "허영과 오만과 권력"이 과도한 사람들에게는 경제적 그늘에 가린 사람들의 복지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실질적 동기가 갑자기 생길 것이다. 사회의 가장 어두운 그늘에서 애쓰는 사람들, 곧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소득이 먼저 오른 다음에야 사회 최고 부자들이 자신의 세후 소득을 증가시킬 수 있을 테니 말이다.(p.41~42)


- 음지에서 고생하는 이 노동자들은 곧 자신들이 사회의 조명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최상위 소득을 최하위 소득과 연동시키는 사회에서는 그런 노동자들의 복지를 증진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된다. 최저임금 노동자들은 이런 결합이 사회에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현상은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긴 돈을 버는 노동자들에게도 나타난다. 더 높아진 최저임금의 '파급 효과' 덕에 노동자들의 급여는 오를 것이다. 또한 그런 효과는 배수 기반의 최고임금을 지키는 일에 개인적으로 열성을 보이는 노동자들이 모인 상당한 규모의 선거구를 만드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고소득에 높은 세율을 선고하는 20세기 정치적 불균형도 막을 내릴 것이다. 대신 배수 기반의 최고임금은 지속될 것이다.(p42)


- 현대사회는 최상위와 최하위 간 소득 격차를 과연 10배로 제한할 수 있을까? 그런 일은 오늘날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불가능해 보인다. 소득이 너무나 불공평하게 분배되어 있어서 최상위와 최하위의 차이가 심지어 100배까지 나는 퍼레이드를 떠올리는 것조차 무색해진다. 예를 들어, 2015년 기준으로 미국 0.01퍼센트 갑부 지위에 오르려면 최소 1130만 달러의 소득을 올려야 했다. 이 상위 0.01퍼센트 부자들의 평균 소득은 3160만 달러였는데, 이는 최저임금 직종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는 미국인 노동자의 연소득 '2100배'에 가까운 금액이다.(p.45~46)


- 우리는 주주들이 기업 고용 관행의 공정성을 감시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가령, 우리는 직원을 고용할 때 인종이나 젠더 차별을 하는 회사에 정부가 지원하는 것을 반대한다. 미국에서 그런 회사는 정부 계약을 따낼 수 없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인종이나 젠더 불평등을 증가시키는 기업에는 세금을 지원하면 안 된다고 믿게 되었다.(p.65)


- 이해관계자 지향의 기업 개혁가들은 임원 보수 문제에도 그런 논리를 확장해 적용한다. '경제' 불평등을 증가시키는 기업 또한 세금을 지원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다. 현재 그런 기업에도 세금이 지원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직원들보다 수백 배 많은 연봉을 임원들에게 주는 회사들에게 매년 수천억 달러의 세금이 정부 사업 계약이나 세금 우대, 무조건적인 지원금 형태로 흘러들어 간다. 그런 회사의 임원들은 이런 상황을 바꿔야 할 이유가 없다. 너무나 많은 이익을 얻고 있으니 말이다. 직원들이 지면 임원들이 이긴다. 임원들의 승리는 언제나 불평등을 악화시킨다.(p.65)


- 옥스팜의 산출에 따르면, 세계 상위 1퍼센트 계층에 속하는 부자들은 극빈층 10퍼센트에 속하는 사람들보다 탄소 발자국이 175배 더 심하게 찍힌다고 하는데,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또 다른 분석 자료에서는 가장 부유한 1퍼센트에 속하는 미국인, 싱가포르인, 사우디아라비아인들이 인당 평균으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가 연간 200톤을 초과하며, 이는 '온두라스나 르완다, 말라위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보다 2000배 이상 많은' 양이라는 결과를 보여준다.(p.84)


- 세금 우대는 비싼 혜택이다. 일반적인 경험에서 나온 법칙을 적용하면, 미국 상위 1퍼센트가 3달러를 기부할 때마다 연방 정부는 1달러의 세수 손실을 입는다.(p.94)


- 한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12년에 개인이 공공 자선단체에 가장 크게 기부한 50건 중 34건이 교육기관에 들어갔고, '그 교육기관 중 대다수'는 '국내외 엘리트의 구미에 맞는' 고등 교육기관이었다. 같은 해에 '가난하고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주 대상인 봉사단체나 사회복지단체'에 이뤄진 기부는 상위 50위 가운데 단 한 건도 없었다.(p.94)


- 급여비율 정치는 풀뿌리 운동가들에게 의미 있는 참여 기회를 제공해 더 평등한 세상으로 나아가는 최상의 길이 될 것이다. 급여비율이 존재하면 거의 모든 사회적 상황이 평등주의자들의 투쟁의 장이 될 수 있다. 학생들은 대학 교수진이나 교직원들과 함께 학내 총장 연봉을 최저 급여의 적당한 배수로 연동시킬 것을 요구할 수 있다. 비영리단체 기부자들은 단체장의 급여를 그와 비슷한 배수로 제한하라고 조직에 요청할 수 있다. 노동자들은 급여비율 요구를 노사 협상 테이블로 가져갈 수 있다.(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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