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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량 Jan 15. 2023

불평등을 만드는 세대

책, <불평등의 세대>




불평등의 세대
(이철승/ 문학과 지성사/ 1판 9쇄/ 2021.02.26)

- 불평등을 만드는 세대 -



MZ, MZ, MZ세대. 각종 방송과 유튜브에서 MZ세대가 거론된 지 한참 됐다. 이들에 대해서 안 들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금은 MZ세대가 가장 핫하지만, 이전에도 핫한 세대가 있었다. 씁쓸한 의미가 담긴 88만 원 세대가 있었고, 그 이전에는 386세대가 있었다. 또 그 이전에는 산업화 세대가 있었다. 각 세대는 자신들이 남긴 유산을 다음 세대에 남겼다. 산업화와 민주화가 그것이다. 하지만 유산에는 빚도 포함된다. 그 빚은 무엇이고, 누가 남겨 놓았을까?

 

책, <불평등의 세대>는 현재 우리나라 불평등을 세대 네트워크라는 관점에서 파해친다. 그리고 현재 불평등을 만드는 세대가 누구인지 조명한다. 저자의 답은 386세대로,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을 위해 피땀 흘렸던 세대다. 저자는 386세대가 민주화 운동을 통해 형성한 그 끈끈한 네트워크를 갖고 주요 경제, 정치판에 들어갔고, 그때의 네트워크를 통해 여전히 정치, 경제에 중요한 요직을 차지하고 놓지않는 게 불평등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잠깐 386세대를 알아보자. 386은 80년대 대학을 다닌, 60년대생으로 처음 사회에 진입했을 때 30대였던 사람이다. 구체적인 인물로 말하면 영화 <1987>에 강동원 배우가 배역으로 맡은 이한열 열사와 같은 세대다. 이들은 민주화 운동을 위해 나섰고, 공장에 들어가 노동운동을 펼쳤다. 그 결과 민주화가 일어났고, 노동조합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이들은 민주화 운동과 노동 운동으로 자신들만의 네트워크를 만들게 됐다. 이 네트워크는 한 다리 건너면 다 알게 되는 네트워크였다. 강렬했던 20대를 함께 불태운 동지였다. 문제는 이들이 30대가 되고, 직장에 들어가고, IMF 등 외환위기 등을 겪으며 스스로가 기득권이 됐다는 점이다.


386세대는 다른 말로 하면 베이비 부머 세대다. 즉, 가장 많은 아이를 낳던 시대에 태어난 세대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말이 없던 이들은 1997년 IMF를 기점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나누게 된다. 정규직은 쉽게 자를 수 없지만, 비정규직은 쉽게 자를 수 있다. 파견직, 계약직, 하청으로 돌리면 되기 때문이다. 386세대는 이 당시에 정규직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80년대 같으면 머리띠를 메고 파견, 하청, 계약직이 부당하다며 싸웠을 이들이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그들과 싸우게 된 것이다. 기득권이 된 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이원화가 이때부터 발생했고, 386세대는 이미 주요 요직을 차지한 상태였다. 정치, 경제 가를 것이 없었다. 과거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주요 요직에 가게 되니 노동운동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386세대 이후론 아이를 낳는 수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노동운동의 폭이 점차 줄어드는 것이다. 더군다나 정치, 경제 주요 요직에 이들이 있으니, 이들이 원하는 대로 이들의 입맛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치권만 봐도 당시에 함께 활동했던 사람들이 주요 정치인이 되어 있고, 기업 내에서도 차장, 부장 급이 많고 대리, 실무급은 적은 게 그 이유다.


기업에 오래 있으면 자연스럽게 임금도 오르는 연공제로 이들의 임금은 나날이 높아진다. 반면, 그 안에 들어가려는 젊은 층은 많으나 들어갈 수 있는 문은 좁다. 불평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한 건 이들 기업에 속한 노동조합들은 자신들의 자리가 위협을 받을 때면 다시금 머리띠를 두르고 과거 80년대 사람들처럼 열심히 노동운동을 한다는 점이다. 참 아이러니하다.


저자 역시 386세대이지만, 이러한 문제점을 정면에서 지적한다. 연봉 1억을 받는 자신과 연봉 1,500만 원을 받는 시간강사의 강의 질과 연구가 얼마나 차이가 있냐며, 동료 정교수들에게 묻는다. 일갈이다. 정말 이를 악물고 하는 일갈이다.


책을 읽으면서 다시금 모든 것은 양명을 가진다는 걸 느낀다. 또한 유산을 받을 때는 재산만이 아니라 빚도 함께 받는다는 걸 다시금 느낀다.


밑줄

- 금융 위기는 각 사회집단별로, 각각의 계층과 세대 집단에 다른 흔적을 남긴다. 안전한 거대 조직 (예를 들면 공무원과 대기업 정규직 직원들)에 이미 밥그릇을 확보하고 20~30년의 적당한 근속 기간과 자산을 확보하고 있는 이들에게 금융 위기는 하늘이 준 기회다. 이들은 조용히 폭락한 부동산 시장의 금매물들을 찾아 나설 것이다. 한계 기업들이 줄도산하고 망한 집안의 가장들이 번개탄을 놓고 머리를 싸매기 시작할 때, 이들은 조용히 쾌재를 부르며 정보망을 가동시킨다. 금융 위기를 버텨줄 거대 조직에 몸담고 있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은, 특히 이제 막 직장을 구하러 학교 문을 나서는 청년들에게 금융 위기는 지옥이다. 10여 년의 교육 투자를 마무리하는 졸업식은 한숨으로 뒤덮이고, 주고받는 꽃다발은 어색한 위로의 말들 속에서 향기를 잃을 것이다. 1997년과 2008년의 겨울에 우리가 서로 다른 위치에서 이미 목도한 금융 위기의 흔적들이다.(p.14~15)


- '세대'와 '위계'는 어떻게 맞물리는가? 나는 특정 세대가 자신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혹슨 세대의 기회(운)를 통해 이 위계 구조의 상층을 '과잉 점유'하면서 세대와 위계가 얽히게 된다고 주장한다. 세대 네트워크가 정치권 및 기업 조직의 '위계 구조'들을 날줄이 되어 연결하면서 '세대의 정치'는 '정치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p.20)


- '네트워크 위계'는 '네트워크'와 '위계'가 톱니바퀴처럼 물려 돌아가며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위계'가 연공에 기반하여 조직 구성원의 직무 간 수직적 명령과 복종 및 보상 체계를 규정하는 생산과 수취의 기제라면, '네트워크'는 조직 상충 지도부가 조직의 목표 달성과 자신의 권력 유지 및 재생산을 위해 조직 내부와 외부에 수평적으로 구축한 사회적 연결망 soical ties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세대 네트워크는 기업, 정당, 시민사회 조직들 간에 공식∙비공식적으로 정보아 자원을 동원하고, 협의와 거래를 성사시키는 세대 기반이 인적 교통망이자 연대 체계로 정의된다. 세대 네트워크는 위계 구조와 결합함으로써 자원 동원과 교환∙정보 공유∙협력∙수취 체제 구축이라는 한국형 위계 구조를 완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p.20~21)


- 바야흐로 386의 세대라고들 한다. 어떤 의미에서 그런가? 왜 386세대가 권력의 중추에 진입했는데 언론∙학계∙관계∙재계가 덩달아 들썩이는가? 그것은 그들의 '동년배'가 , 그들의 '친구의 친구'가 권력을 쥐었기 때문이다. 친구가, 친구의 친구가 권력을 잡았다는 것은 그만큼 나의 권력도 증대되었음을 의미한다. 다른 모든 사회에서 그렇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국 사회에서 '세대'란 역사적 경험과 기억을 공유하는 집단 그 이상의 것, 즉 '자원 동원 네트워크'를 의미한다.(p.33)


- 왜 이 386세대의 네트워크가 문제가 되는가? 첫째는 그 규모다. 이 베이비붐 세대는 그 규모에서 다른 모든 세대를 압도한다. 둘째는 그 네트워크의 응집성이다. 이 세대의 네트워크는 '평등주의' 혹은 '분배 정의'라는 기치 아래 20대 초부터 선후배 및 동년배 간 지하 이념 서클, 문화 서클, 학생회, 동아리. 동문회 등의 조직을 중심으로 구축되었다. 따라서 이 세대의 네트워크는 다른 어떤 세대의 그것보다 더 조밀하고 이념적으로 균질하며 체계적이다.(p.34~35)


- 유교적 연공 사회의 특징은 '가만히 숨죽이고 할 일 하고 있으면' 자신의 때가 온다는 것이다. 거세되지 않고, 조직에 남아 있으면 언젠가 자신의 세대가 조직을 장악하는 때가 오는 것이다. 그런데 386세대는 마냥 기다리지 않았다. 산업화 세대를 아래에서 치받으면 20대 때부터 스스로를 조직화했다. 이들은 20대에 이미 권위주의 정권의 물리적 폭압에 맞설 수 있는 전위 조직과 대중 조직을 건설했다. 이 '조직화'의 경험과 그 결과로 남은 네트워크가 이 세대의 최대 자산이다. 20대에 목숨 걸고 지하활동을 해본, 아니면 야학, 공부방, 학회라도 같이해본 경험, 아스팔트 위에서 전경 및 사복조와 육탄전을 벌이며 쌓은 동지애는 386 세대에게 평생의 자산이 된 것이다.(p.38~39)


- 박정희를 숭상하고, 심지어는 전두환까지 (경제성장 성과에 대해) 칭찬하는 산업화 세대의 내면에는 이러한 '수행 능력'에 바탕을 둔 유교적 정상성론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 놀랍게도 이 정당성론은 반도의 북부에 사도, 중국 대륙에서도 오늘날까지 작동하고 있다. 누가 어떻게 그 자리에 오르건 잘만 해라. 그러면 인정해 주마(모든 권력을 다 주마). 하지만 잘못하면 바닥으로 끌어내려질 준비를 하라, 대체재는 널려 있다. 이것이 냉혹하기 이를 데 없는 동아시아 국가와 시민사회의 근본 관계이자 윤리다.(p.44)


- 겨우 인구 4천만 명밖에 안 되던 나라에서 도시 집회에 수십만 군중을 연중무휴로 동원할 수 있는 강력한 조직력과 동원력을 가진 '반체제 세력'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 몸과 인생을 송두리째 '운동의 대의'에 던진 한 세대 전체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들이 20~30대에 걸쳐 주도한 이 '조직화 사업'은 한국의 시민사회를 양적∙질적으로 한 단계 도약시켰다. 이들은 '조직'을 통해 국가와 대항하고, '조직'을 통해 시민사회에 '침투' 및 '동원'하고 '진영'을 갖추었다. 이 조직화의 경험은 이 세대에게 집합적인 정체성을 형성시켰을 뿐만 아니라 대중적 '정당성'을 부여한다. 386세대가 90년대 중∙후반부터 한국 사회의 '대항권력'으로 성장하여, 2016년 촛불시위를 거쳐 오늘날 '주류'로 자리매김하게 된 데는 이 '조직화의 경험'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p51)


- '민주주의'를 기치로 내걸었다는 점에서, 386세대는 과거의 배제된 사대부층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민주주의'의 원리를 체화한 집단이란 의미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게임 원리'에 맞춰 권력 투쟁을 하는 집단이자 세력이란 의미다. 이 세대는 '절차주의자'들이란 점에서 형식적 민주주의자들이며, 제도 변화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집단적 믿음'을 공유한 세대란 점에서 (대만의 당외 새대와 함께) 동아시아 최초의 '절차적 제도주의자'들이다.(p.57)


- 먼저 대기업 노조의 증발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노조들은 세계화와 그에 따라 한국 경제의 부상으로 가장 많이 수혜를 받은 집단을 대표한다. … 이 노조들은 대부분 임금 상위 20퍼센트에 속하는 최상층 임금노동자 집단이 되었다. 한 노조 지도자가 한탄조로 이야기하듯이 "너무 잘 싸운 게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이들은 싸운 만큼 그 보상을 받았고, 간단히 말해 체제 내화되어 '내부자'의 지위에 등극했으며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 활동에서 — 자연스럽게 — 사라졌다. 연대해서 싸워 얻어내기보다는 가진 것을 지키면 되는 지위에 올라선 것이다. 시민사회와 노동운동의 중핵이자 중추였던 대기업 및 공기업 노조들은 불평등의 '치유자'가 아닌, 불평등 구조의 '생산자' 혹은 '수혜자'로 변모했다.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와 민주노총 입장에서 이들의 이탈로 국가가 자본에 대해 시민사회 진영이 가졌던 '협상력'이 극적으로 약화되었음을 의미한다. 현대자동차 노조가 앞장서는 노동문제와 그들이 빠지는 노동문제는 그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p.59~60)


- 2016년 총선에서 50대와 60대 당선자 구성비는 무려 83퍼센트다. 산업화 세대 전성기를 구가했던 1996년의 73퍼센트를 10퍼센트나 추월했다. 산업화 세대의 세대 독점 이후 20년 만에 '세대 독점' 현상이 더 노골적인 모습으로 재귀한 것이다. 2016년 총선에서 30대 당선자는 단 두 명이다. 불과 20년 만에 30대 정치인이 한국 정치에서 사실상 거세된 것이다. 30대의 당선자 점유율 또한 17퍼센트로 역대 최하위다. 문제는 이러한 한 세대의 과대 대표가 정치권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상층 노동시장을 구성하는 조직 어디에서든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라는 데 있다.(p.73)


- 한국의 기업들의 정치권 및 국가 부문의 세대교체에 맞춰 국가권력에 '연줄이 닿는 동기'들을 이사진으로 배치하는 경향을 띤다. 따라서 정치권과 국가 부문에서 386세대가 장기 집권할 경우, 기업의 386세대가 조기 등판하여 장기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이 또한 '세대 네트워크'의 힘이라고 볼 수 있다.(p.81)


- 386세대의 '운'은, 이 '유연화된 위계 구조'가 도입되어 확산되던 시기, 이들의 다수가 '정규직'의 지위에 '이미' 진입해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1997년 금융 위기 이후 20년에 걸쳐 상층은 보호되고 하층은 유연화된 '이중화' 경제 구조가 기업과 관련 조직 깊숙한 곳까지 뿌리내리는 동안, 이들은 내부자의 지위를 가장 대규모로, 오래 누란 세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 기간 동안 정치적 민주주의 확대와 시장의 위계화가 동시에 진행된 것이다. 좀 더 단순화시켜 이야기하면 정치적 민주주의의 확대와 세계화의 결과는 윗세대인 산업화 세대의 퇴장이었으며, 시장의 위계화로 인한 결과는 386세대가 상층을 점유하고 있는 위계구조의 아랫세대의 편입 및 복속이었다.(p.82)


- '평등의 가치'를 한국 사회에 전파한 (해방 후) 첫 세대지만, 그 자신은 동아시아적 위계 문화를 여전히 체내 화하고 있는 마지막 세대다. 한 세대 안에 존재하던 이 두 가치의 충돌은 '세계화'를 거쳐 더욱 '극대화'되었다. 이 세대는 동아시아 위계 구조와 자신들의 세대 네트워크를 경합시켜 시장자유주의에 적응한, 보다 진화한 형태의 — 내가 '네트워크 위계'라 부르는 — 위계 구조를 발전시켰다. 이 모순적 결합과 접합을 주도한 이들이 바로 386세대다.(p.83)


-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 가격은 언제 폭락했는가? 바로 두 차례의 금융 위기다. 경제 위기 직후에는 자산 가격이 폭락한다. 따라서 상층 자산계급에게 경제 위기는 새로운 자산을 구입할 기회일뿐더러, 자산을 다음 세대로 대물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p.199)


- 저출생 세대의 노동시장 진입과 함께,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입은 한층 활발해질 것이다. 하지만 한국형 남성 위계 구조로 짜여 있는 노동시장과 기업 조직에서 여성들을 평등하게 대우하는 양성평등의 문화를 만들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이들 청년 여성들의 양성평등 사회를 위한 투쟁의 가장 큰 장벽은, 아마도, 오늘날 각 분야에서 최상부를 장악하고 있는 386세대 남성들일 가능성이 크다. 산업화 세대의 가부장 리더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출산휴가를 써본 적도 줘본 적도 없다. 민주화 투쟁과 조직화의 경험에는 육아와 가사에 대한 분담의 의무 또한 없었다. 기업을 세계화하기 위한 이 세대의 장기 출장 시, 육아의 의무는 오롯이 여성들의 독박이었다.  청년 여성들로서는 이토록 극단적인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따로 없을 것이다.(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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