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오늘이다.”라고 알려준다.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날이다.
그런 날엔 1년 동안 미루고 미루었던 실내 세차를 하거나, 옷장에서 겨울옷을 잔뜩 꺼내 무거운 손으로 세탁소에 간다. 겨울옷은 세탁소에서 깨끗하게 해 줄 거라 그리 큰일이 아니다. 반면 자동차 실내 청소는 내가 직접 한다. 그래서인지 드디어 하겠다고 마음을 먹기까지는 엄청난 의지가 필요하다. 일의 양도 양이지만, 차 안에는 지난 한 해 동안 뿌려놓았던 많은 감정과 기억이 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소모가 되는 일이다.
차 안을 청소하는 것은 묘한 의식처럼 느껴진다. 차만큼 오롯한 나만의 공간으로 느껴지는 곳이 없어서일까? 지난날들을 저절로 되돌아본다. 운전석에 앉아 엉엉 소리 내며 아이처럼 울었고, 하기 힘든 통화를 했으며, 혼자만 들을 수 있는 노래를 했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와 사랑하고 미워하고 걱정하고 짜증을 부렸다. 태어나서 이제껏 소리 낸 것 중에 제일 큰 목소리로 꽥 소리도 질러봤다. 그 공간에 들어왔던 사람들도 생각한다. 조수석 바닥에 떨어져 있는 모래를 치우며 가까웠던 사람들을 생각한다. 뒷좌석에 쌓인 먼지를 빨아들이며 스쳐갔던 사람들을 생각한다. 아, 그땐 그랬지, 나는 그때 그런 사람이었지, 그런 생각을 한다.
작년을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찡하다. 즐거운 날보다 힘들었던 날이 조금 더 많이 남아있구나. 부끄러움과, 후회와, 쓰라림이 여전히 여기 있었구나. 내년 5월의 나는 좀 더 편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올해를 돌아봤을 때, 깊은 안도의 숨을 내쉬고, 기대하고, 뿌듯해하고, 감사의 눈물을 흩뿌렸던 나를 기억했으면 좋겠다. 행여나 그런 해를 보내지 못했더라도, 모든 것을 꿋꿋하게 지나온 나를 토닥토닥 안아주며 따뜻하게 대해 줄 수 있는, 좀 더 넓어져 있는 내가 되어있으면 좋겠다.
나는 봄의 중간에 도착해서야 지난 한 해를 끝낸다. 자동차 에어컨 날개에 쌓인 먼지를 하나하나 닦아가면서.
봄은 시작이고, 시작하려면 끝내야 한다. 깨끗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