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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corn and Whisky Nov 23. 2024

기생충 (Parasite)

그 이후 우리 세상은...

극장에서 처음 보고 나서는 그 impact와 여운이 너무 세서 TV로 풀리더라도 가급 굳이 보지 않는 영화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기생충>이 저에게는 그러한 영화였죠.

처음 관람했을 때의 여운을 그대로 간직하고픈 마음이 있었고 기생충이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며 그 마음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 당시 Best Picture 부문 후보작들입니다. 어마무시한 라인업이죠.

당시 많은 평론가들도 그랬고 저 또한 <기생충> 후보로 오른 부문 중 뭐라도 하나 상을 타갈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작품상, 감독상까지 싹쓸이 할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죠.

쟁쟁한 후보들을 물리치고 작품상과 감독상까지 수상한 것은 당시 라인업을 생각하면 2002년 월드컵 당시 이탈리아, 스페인을 꺾고 4강에 올랐던 기적에 버금 갑니다.

당시 저도 <작은 아씨들>과 <결혼 이야기> 빼고는 작품상 후보로 오른 영화들을 모두 봤었는데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을 정도로 모두 쟁쟁했고 그래서 <기생충>의 작품상 수상은 더더욱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죠.

저는 그 당시 개인적으로 <1917>의 수상을 예상했었습니다. 워낙 잘 만든 영화였고 샘 멘데스 감독이 본인이 잘하는 것들을 맘껏 보여준 작품 같았기에 작품상과 감독상 모두 <1917>에 돌아갈 듯 보였습니다.

그런데 왠걸.... <기생충>이 시상식을 휩쓸고 맙니다. 저에게는 최근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만큼이나 충격적이고 가슴이 뛰는 사건이었습니다.

소식을 실시간으로 듣고 당시 회사에서 동료들에게 신이 나서 얘기를 했지만 반응이 다소 떨떠름 했던 기억이 아직도 나네요.


너무나 꿈만 같았던, 어안이 벙벙했던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

여튼, 그러던 중 최근에 <기생충>을 OCN 채널에서 해주는 것을 우연히 마주하게 됩니다.

'오랜만에 한 번 봐볼까?'라고 생각하던 중 OCN 채널 우측 상단 카피 문구가 제게 채널을 고정하게끔 만들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의 시선으로 보고 있는가?"


정말 잘 만든 카피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너무나 당연하게 관객이 주인공 기우와 기정 가족의 시점으로 영화를 보겠거니 짐작했으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박 사장 가족의 관점에서 보면 기우 기정 가족은 천하의 몹쓸 인간들입니다.

어쨌든 카피 문구에 이끌려 영화를 관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이선균 배우의 모습을 보니 뭔가 한결 더 영화가 슬프고 애틋하게 다가오더군요.


국가의 지도자들의 안하무인 언행에는 한없이 관대하고 모른체 하지만 연예인들의 흠에는 득달같이 달라 들어 죽음으로 내몰고 가는 언론을 생각하면 더더욱 씁쓸합니다.

저렇게 연기를 잘하는 배우인데.... 그렇게 가야만 했을까....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당연한 얘기지만 이선균 뿐만 아니라 모든 배우들이 다시 보니 연기를 너무나도 잘했더군요.

그리고 영화도 너무 잘 만들었습니다. 뻔히 결말을 아는데도 영화 속으로 흡인을 시키는 요인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2회차 관람을 하니 당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의 성적이 오히려 더더욱 납득이 가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앞서 언급한 "당신은 누구의 시선으로 보고 있는가?"라는 카피에 있어 관객 대다수를 대동단결 하게 되는 대목이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정말 영리하게 심어 놓은 장치이기도 하고 영화의 주제인 계층간 갈등의 테마를 극대화 하는 구간이기도 합니다.

바로 극중 이선균 배우와 조여정 배우의 대화 내용입니다.


<이선균: 몰라. 암튼 뭐 말로 설명하긴 힘들고, 가끔 그 지하철 타면 나는 냄새 있어. 그런거랑 비슷해.

조여정: 어우 몰라 난 너무 오래돼서. 지하철 타본지.

이선균: 지하철 타는 분들 특유의 냄새가 있거든.>


둘의 대화를 거실 탁자 밑에 숨어서 들으며 본인의 옷 냄새를 맡는 기택...

이 '냄새'라는 주제는 영화에 걸쳐 여러 번 반복해서 등장하다 결국 영화의 climax에서 중요한 기폭제 역할을 하죠.

매일매일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관객 대다수는 이 대목에서 영화를 누구의 시선으로 볼 것인가 마음을 굳혔으리라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면 재밌기도 하고 현실 고증이 잘 드러난 또 다른 부분은 바로 기택(송강호)의 가족과 문광(이정은) 부부의 갈등이죠.

둘다 지하철을 탈 법한 "하층민"끼리 돕기는 커녕 치고 박고 싸우고 서로를 밟고 올라 가려 아둥바둥 하는 관계를 보고 있자면 너무 우리네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출퇴근 시간 만원 지하철에서 자주 보이는 표정들과 제스처들.... 그래서 더 몰입이 되는걸지도...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온지 5년.... 그 이후 우리 세상은 어떻게 바뀌었나?


때 아닌 인원감축 계획이 발표 되며 철도노조는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그로 인해 매일 지하철을 타는 일반 시민들은 불모로 잡혀 불편을 겪습니다.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을 알지만서도 시민들은 철도 노조를 욕합니다. 일단 당장 오늘내일이 불편하거든요.

그렇게,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끼리 또 사웁니다.


그럼, 아들 기우가 아버지 기택에게 편지를 남기는 형태로 끝나는 영화의 엔딩 대사를 한 번 볼까요?

<아버지, 저는 오늘 계획을 세웠습니다. 근본적인 계획입니다.

돈을 벌겠습니다. 아주 많이요. 대학, 취직, 결혼, 뭐 다 좋지만, 일단 돈부터 벌겠습니다.

돈을 벌면, 이집을 사겠습니다.

이사 들어가는 날에는, 저는 엄마랑 정원에 있을게요. 햇살이 워낙 좋으니까요.

아버지는 그냥, 계단만 올라오시면 됩니다.

그날이 올때까지, 건강하세요. 그럼 이만...>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서 비춰주는 장면은 기우의 다짐과는 사뭇 다르죠. 현실은 여전히 반지하 시궁창입니다.

5년이 지났습니다.

출산율은 계속해서 떨어지는 중입니다.

주변에 결혼 생각 없는, 아니 엄두를 못 내는 이들도 여전히 많습니다.

여전히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논란을 만들고 어그로를 끄는 것을 좋아하는 해외 모 기업인은 공개적으로 트럼프를 지지하더니 트럼프 당선 이후 중요한 정부 보직을 꿰찹니다.

그리고 그 기업인이 지지하던 가상화폐는 나날이 가치가 상승합니다.

집을 사기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돈을 벌기도 어렵고요.

그런 와중에 미국은 다시 한 번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었고, 대한민국은 과연 트럼프 시즌2에 현명하게 대응할 수 있을지, 그럴 능력이나 의지가 있긴 한지 의구심이 드는 지도자의 취하에 있고 믿기지 않지만 이제 그 임기의 절반 가량 밖에 안 지났습니다...

그리고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 응원해 주지 않고 본인들끼리 싸웁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갖은 명분을 내세워...


그렇습니다.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세상은 영화 <기생충>이 그린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계층 간의 갈등이 더 짙어졌다면 짙어졌겠죠.


다들 이렇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좋으련만...

영화 중 기우가 하늘이 보여서 좋다며 잔디에 누워 책을 읽는 장면이 있습니다.

다들 이렇게 하늘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세상이 5년 뒤에는 좀 더 가까워졌으면 좋겠네요.


이래저래 <기생충> 2회차 관람은 첫 관람만큼이나 여운이 길게 남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더군요.

5년 뒤, 영화 개봉 10주년을 맞아 3회차 관람을 하게 된다면 그 때는 또 어떠한 여운과 생각이 들지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됩니다.


그리고 최근, 역시 부자를 잡아 '기생'을 꾀하는 주인공을 다루는, 아주 발칙하고 골 때리게 이를 풀어내는 영화가 하나 있어 소개하고 마치려 합니다.

무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아노라>입니다.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라는 영화를 아신다면 특히 관심이 가실겁니다.

해당 작품을 연출한 Sean Baker 감독의 작품이고, 평론가들에 의하면 감독의 색을 여지 없이 잘 드러낸 작품이라고 평하더군요.

<기생충>과 테마적으로 오버랩 되는 부분들도 있고 웃프고 재밌습니다.

아직 영화관에서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뭐 조만간 OTT 어딘가에 풀리겠지요?

강력하게 추천 드리는 바입니다.


Till nex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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