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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정훈 Aug 24. 2019

권여선의 ‘ 봄밤 ’ 을 읽고


  뼈가 무너져 내리는 수환이 있다. 그리고 술에 잠식해가는 영경이 있다. 둘은 사랑하지만 죽음으로 내달리고 있다. 누가 먼저 스러지게 될지는 모른다. 그나마 둘에게 다행인 건 함께 한다는 것. 둘은 언제가 끝이 될지 모르는 파멸의 시간 속에서 남은 사랑을 쏟는다. 다만 그 사랑을 나누는 장소가 보통인들의 모습들과는 다른 것 같다. 어쩌면 죽음이 예비된 장소이기도 한 지방 요양원에 수환과 영경은 함께 입주한다. 그리고 서로를 보살피고 사랑을 한다. 권여선 작가의 ‘ 안녕 주정뱅이 ’ 의 첫 번째 단편소설로 수록된 ‘ 봄밤 ’ 이라는 단편소설을 읽었다. 소설의 첫 문장은 이 소설의 운명과 분위기를 조금은 짐작하게 하였다. 주인공 영경의 큰언니 영선이 둘째 언니 영미에게 하는 말이다. “산다는 게 참 끔찍하다. 그렇지 않니?”  

  인생을 산다는 것은 어떤 영화 속 대사처럼 고통일 뿐이라고 그런 진실을 체감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함부로 행복을 낙담하는 건 오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간혹 살다보면 문득문득한 행복의 순간이 오기도 하는데, 그런 순간은 어쩌면 운의 순간 같은 건데, 그래서 그런 순간은 더 소중하고 귀한 거라고. 어쩌면 수환과 영경은 그 귀하고 빛나는 생애 그 운의 순간을 서로가 나누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소설 속 수환과 영경은 둘의 만남 이전에 큰 절망의 시간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수환은 스무 살 때부터 시작한 쇳일로 제법 큰 돈까지 벌기도 하였으나, 어쩌면 뻔하기도 한 삶의 행태처럼 이내 곧 사업은 부도를 맞고 아내는 모든 재산을 팔아치우고 도망을 간다. 그리고 밤마다 자살할 시기를 생각하며 수환은 하루하루를 버틴다. 영경 또한 수환을 만나기 이전의 삶은 스스로를 버린 삶이었다. 중등교사 국어교사로 20년을 재직한 영경은 서른셋에 결혼한 남편이 있었고, 결혼한 지 1년 반 만에 이혼을 하게 된다. 슬하엔 백일 된 아들이 있었다. 남편은 이혼하자마자 바로 재혼을 한다. 아이의 양육권을 영경은 가지게 되었으나, 어느 날 시부모댁에 잠깐 맡겨진 영경의 아들은 그들 가족과 함께 이민을 떠나게 된다. 그들 가족이 준비한 사전 계획이었다. 이후 영경은 모든 일에서 손을 놓고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의지의 대상이 사라진 그녀는 알코올을 의지의 대상으로 상정한다. 술에 대한 의존증은 더욱 깊어져 갔고, 그녀의 교직 일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교사로서의 업무가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가게 되자, 그녀는 결국 마흔셋에 퇴직을 결심하게 된다. 퇴직한 지 두어 달쯤 지났을까? 친구의 재혼식에서 영경은 수환을 처음 만나게 되고 자신에게 아직 남겨진 행운의 몫에 의아해한다. 둘은 어느 봄날에 만나게 된 건데, 수환이 기억하는 영경에 대한 첫 기억은 그녀의 달그락거릴 것 같은 앙상한 몸이었다. 영경은 재혼식 술자리에서 평상시대로 억병으로 취하게 마셨고, 그녀를 지켜보던 수환은 그녀를 등에 업고 집에 바래다준다. 이후 그들은 매일 만나 함께 저녁을 먹고 술을 마셨다. 언제나 만취해서 뻗는 건 영경이었고, 수환은 매번 첫 만남때처럼 그녀를 등에 업고 그녀의 집에 또다시 바래다주었다. 그 후 수환은 일주일만에 옥탑방을 정리하고 영경의 아파트로 들어오면서 함께 살기 시작한다. 그리고 딱 한번 빼고는 둘은 떨어져 살아본 적이 없었다. 딱 한번 떨어져 본 그때는 다름 아닌 수환의 류마티즈 관절염의 증상악화로 지방요양원에 수환이 먼저 입주하게 되고 영경은 서울아파트에서 각자 지낼 수밖에 없었던 단 두 달의 시간이었다. 불행한 사람들에겐 더 불행이 다가서는 것일까? 수환에게 류마티즈 관절염 증상이 나타난 건 3년 또는 3년 반전 쯤이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그의 병은 신용불량자인 그의 신분으로선 크게 염려하지 않고 낙관하는 것으로써 사태를 수습하려 했다. 하지만 점점 증상은 상황은 겉잡을 수 없이 나빠져갔다. 결국 영경과 수환은 건강보험 가입을 위해 혼인신고를 하고 제대로 치료를 받으려 한다. 하지만 이미 그는 걸을 수 없는 상태로까지 병이 진전된 상태였다. 병원치료를 받았지만 온갖 합병증이 발발하였고, 결국 수환은 병원치료를 포기하고 지방요양원에 입주하게 된다. 수환의 병도 병이지만, 영경의 알콜중독 증세도 날이 갈수록 나빠져 갔다. 결국 영경도 수환을 따라 요양원에 입주하게 된다. 그렇게 뼈가 무너져내리는 수환과 술에 잠식해 가는 영경의 위험한 동거가 요양원에서 시작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둘은 세상에서 가장 비관적 상황에 놓인 커플임이 분명하다. 상황은 둘째치더라도, 둘의 사랑은 그 어떤 확실성도 예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녀가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서로에 대한 약속을 하는 건, 무엇보다도 확실한 행복에 대한 기대일 것이다. 그렇지만 영경과 수환은 그 행복을 꿈꿀 수는 없다. 대신에 그들은 지금의 서로를 그저 바라봄에, 그저 함께 있음으로 서로의 사랑을 기댄다. 영경은 수환에게 똘스토이의 ‘ 부활 ’을 읽어주며 이야기한다. 똘스토이는 어떤 정치범을 보며 그는 이지력은 남보다 뛰어나지만 자만심 또한 굉장하여 결국 별 쓸모없는 인간이라 생각했다고, 그러면서 이를 달리 이야기하면 이지력이 분자고 자만심은 분모같은 거여서 아무리 분자가 크더라도 분모가 그보다 크면 분자를 초과해버리기에 좋은 사람일 수 없다고, 만약에 분자에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놓고, 분모에 그 사람의 나쁜 점을 놓아 그 사람의 값이 나온다면 과연 수환과 영경 둘은 과연 서로에게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에 대해 같이 생각해보았다. 수환은 자신의 병이라는 분모 값이 무한대로 커져감을 느꼈고 자신의 분자를 현재 상황에서 늘릴 수 있는 건 무엇일까를 고민한다. 그리곤 영경이 기꺼운 마음으로 외출하여 술을 마실 수 있게 허락해 주는게 그나마 자신의 분자를 늘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소멸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수환의 유일한 사랑의 길이었다. 내가 만약 수환의 상황이었다면 어떠했을까를 생각해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 내 육체는 기약을 알 수 없는 몸뚱아리일 때 그녀에게 해가 되지만 그녀가 간절히 원하는 무언가가 있다라면 하는 가정 말이다. 나 또한 그녀를 해하는 그 어떤 것이라도 그녀가 원하는 게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결정과 도움을 수환처럼 허락할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한다. 수환은 어쩜 누구보다 극한적 상황에 처해 있는 건데, 어쩌면 수환의 상황은 우리 모두의 한계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은 누구나 생의 한계점을 지니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라는 영원성과, 미지성을 꿈꿔야 하는 거니까, 사랑은 그런 속성을 가지고 있는 거니까. 

 결국 수환이 영경에게 외출을 허락한 어느 봄밤이 둘에겐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영경의 몸을 처음 업었던 봄밤이 둘의 시작이었다면 외출을 허락한 그 봄밤이 둘에겐 마지막이 되었다. 영경은 외출 후, 쓰러질 때까지 술을 마셨고 어느 모텔 주인의 신고로 의식불명이 된 그녀는 앰뷸런스로 실려 오게 된다. 그리고 수환은 영경이 혼자 술을 마시던 그 시간 속에 생을 마감한다. 결국 둘은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지 못한다. 영경은 이틀 만에 의식을 회복하였지만, 온전히 되찾지 못한다. 영경은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다. 수환에 대한 기억마저도...

혼자 남겨진 영경은 무언가 자신의 삶에서 뭔가 엄청난 것이 증발한 것이라고 느끼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는 듯 요양원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렸고, 다른 환자들의 병실의 문을 열고 다녔다. 그리고 오랜 시간 울기도 하였다. 요양원 사람들은 영경없이 죽어간 수환을 생각하며 그녀에게 처음엔 적의를 품었으나, 이내 곧 깊은 동정과 연민으로 바뀜을 느낀다. 안절부절 못하는 영경을 보며 그녀의 온전치 못한 정신이 수환을 보낼 때까지 죽을힘을 다해 견뎌냈음을 그들은 본능적으로 느낀다. 

 권여선의 ‘ 봄밤 ’을 읽으며 삶의 조건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주어진 삶의 조건 속에서 행하는 사랑 행위의 전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영경과 수환은 각자의 충분치 못한 조건 속에서도 서로를 필요로 하였다. 그리고 주어진 조건 속에서도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였다. 죽을힘을 다하였다. 각자의 인생에서는 스러진 삶을 살았는진 몰라도, 둘은 함께 있음으로 함께 서로를 허락함에 서로를 완성한 사랑이었다. 짧은 단편소설에서 이토록 깊이와 감동을 받은 건 무척 오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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