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의 앤은 그래도 오래 한 셈이네
처음부터 소란스러웠던 영국 총리 보리스가 퇴임했다. 이것도 너무나 과거완료형이다. 왜냐하면 그 뒤를 이은 리즈 트러스가 이미 또 44일 만에 사퇴를 했기 때문이다.
리즈가 취임을 하고 감세정책을 내놓았을 때 나의 뇌는 두근두근 펌핑질을 해댔다.
대체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
세계적인 긴축 흐름에 역행하는 영국이란!!
이자율 상승과 감세라는
모순적인 정책이 어떻게 돌아갈까?!
역시 고전적 선진국인가?
아주 아주 궁금했다. 시간이 증명해 줄 이들의 실험이.
나조차 믿었던 건가? 영국이 이자율 상승과 감세라는 상호 모순적인 정책을 내놓았지만, 나름의 생각은 있지 않겠느냐고. 그리고 그게 어떤 작용을 일으키고 과연 그 정책이 성공인지 실패인지 시간이 증명해주길 설레하고 있었다.
아무도 해보지 않은 걸 너네가 해봐 줘!
그런데 보수와 자유주의의 당당한 상징처럼 "우리는 (누가 뭐래도) 감세합니다"같은 표정의 리즈는 44일 만에 세상 미안한 표정이 되었다. 아, 내심, 아니 노골적으로 아쉬웠다. 파운드가 너무 크게 흔들리지 않았거나, 경제가 이렇게까지 국제적인 시장이 아닌 시절이었더라면 그 감세정책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흥미롭게 바라볼 기회가 있었을 텐데.
사실, 선진국이라는 단어에 알레르기가 있다. 영어로 들으면 더 끔찍하다.
Developed Country
Advanced Nation
Leading Country
웃기고 있네, 너희가 세상을 이끌긴 뭘 이끌어. 니들 유리한 대로 쥐 흔든다는 말을 그렇게 포장해도 되는 거야?
한자어를 유심히 잘 들여다보면 ‘선.진.국’의 진의를 얻을 수 있다.
선. 먼저
진. 나아가 본
국. 나라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건 "먼저", "실험해본", "나라"라는 건 인정할 수 있다. 수많은 실패를 먼저 실험했던 것만큼은 확실했고, 안타깝게도 소위 개도국들은 그 결과는 보지 않고 아묻따 따라한 행정들로 선진국의 실패와 병패 답습의 실적을 꾸준히 쌓아 올리고 있다.
그 과정에서 귀중한 고전적 방식들이 사라져가기도 했고 맞지 않는 행정을 씌운 사회는 어그적거리는 역사를 빚어낸다. 좋은 것을 가져오는 것은 옳은 일이나 고증은 반드시 필요한 것을…….
모든 행정은 시작과 단기적 성과는 좋아 보일 수 있는데 그 후 10년 정도의 결과물은 꼭 봐야 한다. 하지만 그런 리뷰를 하고 들여오는 수입 행정은 사실상 전무하다. 템즈강을 거대한 하수로로 만들어버렸던 런던의 초기 하수처리 사례를 비롯하여 지금도 정석처럼 회자되고 따라 하는 영국의 도시재생 사례 중 영국 내부적으로 실패로 판명된 케이스들이 많다.
* 다만, 영국은 잊지 않는다. 뭐든 잊지 않고 끝없이 곱씹는다. 그리고 변해간다.
우리는 그들의 실패를 잘 이용할 수는 없는 걸까. 감사하게도 먼저 저질러보고 먼저 넘어져보고 먼저 진탕에 굴러봐주는 그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표하며 샤샥~샤샥~ 피해간다면 그 맛이 참 짜릿할 터인데.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그들의 실패였다.
그래서 국외훈련 준비를 하던 후배에게 면접에서 이렇게 대답하라 했다. "그들의 성공이 아니라 그들의 실패를 보러 간다."라고.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웬만한 정보와 자료 수집은 해외를 가지 않아도 된다. 다만, 그들의 숨겨진 실패는 그 현장에 가서 보고 느끼는 것이 맞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의 실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