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nocent! Innocent?!
너 마음대로 Innocent라고?
다시 생각해도 그 몰지각한 영국 애미의 발언에 속이 다시 부글거린다.
그녀의 남편은 여왕 근위대 군악대였다. 학교 뉴스레터에도 근위병 옷을 입고 와서 이벤트한 사진이 실린 일도 있었다. 막연한 기대를 했던 내가 잘못인가.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다. 영국 학교에서는 아이들 사이에 크리스마스 카드를 많이 주고 많이 받는 것이 유행이었다. 크리스토퍼에게서 카드를 받았다며, 아이는 카드를 쓴다고 했다. 크리스토퍼는 그 엄마를 학부모 상담때 보았을 때 칭찬을 살짝 했더니 '자기 아들 리딩레벨이 높다는 것에 겸손없이 자부심을 갖고 있었지.' 정도의 기억과, 그 아빠가 여왕 근위병이었지 정도의 기억을 갖고 있는 아이었다. 겸손이 없는 것은 어색했지만 그래도 기본 소양있는 집이겠지 생각했다.
겨우 7살이었는데 카드 내용을 미리 검사할 걸 그랬나보다. 그랬더라면 이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또 미안하다고 하지 말걸 그랬나보다. 내가 미안하기 전에 니가 미안했어야지, 선사과했다고 내 위에 올라타겠다는 건 뭐냐. 나의 과잉 예의는 나에게 상처와 오랜 분노로 자리잡게 된 결과만 가져왔을 뿐.
크리스토퍼와도 친한 노리키네 엄마가 크리스토퍼 엄마가 나의 연락처를 물어보더라며 줘도 되냐고 했다. '플레이 데이트를 하자는 건가?'하고 설레는 맘에 그러라 했고, 나도 연락처를 달라했다. 주책이지, 먼저 연락을 했다. 아이들의 카드에 "이제 더이상 뽀뽀하려고 장난치지말라"며 Natural born 아티스트인 녀석이 잡으러 다니고 도망다니는 그림도 곁들였다는 것을 그 연락으로 알게 되었다.
나는 요즘 학교에서 뽀뽀 장난이 있다는 것도 몰랐고, 추격자가 크리스토퍼고 도망다니는 자가 우리 딸이라는 것도 이로서 처음 알게 된 것이었으며, 그 내용으로 크리스마스 카드를 썼다는 사실은 더더욱 처음 알게 되었다.
이성을 가다듬고, 먼저 선사과라는 생각에 과잉 예의를 보였던 건데,
크리스마스 카드에 적절한 내용은 아니었던 것 같네요.
미안합니다. 카드를 체크했어야하는데.
라고 보냈다. 내가 예상한 시나리오는
우리 아이가 뽀뽀를 장난친 건
정말 무례하죠?
미안합니다.
였던 것이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나는 아이들의 이 키스는 Innocent하다고 생각한다
였다.
순간, 이걸 가해자가 결정한다고? 지금 니가 이렇다고 주장하며 내가 인정하길 바라나보지? 이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영국에서 아이들 간의 가벼운 키스가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겠고, 실제로 했다는 것도 아니고 한다고 장난치고 쫒아 아니고 도망다닌 상황에서 이에 민감하게 구는 것도 난감하다는 빠른 판단을 내렸다. 그리곤 동의했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마치 계속해서 키스를 하겠다는 듯 대답이 오길래 이때는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 영국 애미가 나의 연락처를 알고 싶었던 것은 내가 이 문제를 크게 만들지 아닐지, 왕실 근위병으로서 사회적 지위와 체면에 손상이 될 상황이 펼쳐질지 여부였을 뿐이었던 것이다. 내가 일을 크게 만들지 않을 것 같아보이니 이제 고삐 풀린 듯 막 나가는 듯 했다.
미안하지 않을 땐 수시로 sorry하지만 진짜 미안할 때는 물러서지 않을 수 없을 때까지 절대 미안하다 말하지 않는 영국것들.
조금은 직설적이고 강경한 대답을 돌려주었다.
You are misunderstood about that.
we don't want to happen this again.
그녀는 이해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은 완벽하게 이민자를 아래로 보고 무시한 태도라고 생각했다. 상대의 의사를 묻지 않았고, 스스로 의미를 부여했고, 또 하겠다고 하는 것은 무시이다.
이야기 끝에 우리는 약 2년 뒤에 돌아간다고 했더니,
이제 Lacey에게만 키스할 수 있겠다.
이 농담이 대답으로 돌아와서 다시 한번 경악했다. 남의 아이를 함부로 입에 그런 식으로 올리다니. 한소리 하고 싶었지만, 남의 아이의 일까지 나서기엔 몸을 사리고 살아야하는 타국인일 뿐이었다. 그리고 레이시네 엄마가 어떻게 생각할지 영국인들끼리는 통용되는 장난일 뿐인지 알 수 없었다.
며칠 뒤, 레이시네 집에 놀러갔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더니, 레이시네 엄마도 그런 장난이 있다는 것도 몰랐던 것 같고 '레이시에게 밖에 키스 못하겠다'고 이야기한 것에 무례하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고로 장난 키스는 통용되는 문화는 아니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무슨 자기 아들의 키스는 God blessing이라도 되는 것인가? 그저 자신이 로얄패밀리를 위한 꼬봉이라는 이유 하나로? 감정이 격하다 다시 생각해도 말이다.
너에게나 여왕이지 나에겐 여왕이 아니라고.
최근에 있었던 사건이 같이 떠오른다. 최근 버킹엄 왕실 행사 리셉션에서 윌리엄 왕자의 대모인 수잔이 영국 국적의 체리티기관 대표인 Ngozi Fulani에게 무려 세번이나 "어디 출신이냐?"고 캐물은 일이 있었다. 마지막엔 참 말을 못알아듣는다는 듯
Really came from
이라고 물었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피부색이 다르다고 해서 그렇게 캐묻는 일이 없다. 심지어 영국인이라고 대답을 했음에도 그렇게 되물었다는 것은 크나큰 충격이다. 이 사태를 접하니 나의 사건이 떠오르며, 하물며 왕족의 대모조차 배우 윤여정님이 말한 영국인의 snobbish(고상한척하는 것)를 내려놓았는데 왕족 꼬봉에게 무얼 바란 내가 바라였는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