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 후회인 위한 처방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2025.01

by 김서니

책 제목에 나와있듯, ‘무게’에 대한 이야기다.

‘존재’를 수식하고 있지만 ‘삶’이라 대입해도 된다.


두께가 만만치 않은 이 책은,

가벼움과 무거움에 관한 주제로 오백페이지에 육박하는 이야기를 이끌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네 명의 남녀로 이루어진 등장인물들의

신념, 가치관, 성향, 추구하는 관계를 보여줌으로써

가벼움과 무거움에 관해 이야기한다고 보면 되겠다.


가벼움으로 대변되는 토마시와 사비나는 각각 쾌락과 배신이라는 키워드를

무거움으로 대변되는 테레자와 프란츠는 영혼과 희생이라는 키워드로 이뤄져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견고했던 키워드는 때때로 약화되기도 한다.

인물들이 평면적이지 않고 입체적으로 느껴진 이유다.


IMG_6865.jpg?type=w966


후회와 고민의 굴레를 털어내고 싶은
사람이 읽으면 좋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흥미롭게 본 건 토마시였다.

그의 가치관에 감응했는데 (성생활 말고,,) 삶의 무게에 관한 것이었다.

einmal ist keinmal.

한 번은 중요하지 않다. 한 번이면 그것으로 영원히 끝이라는 것.



IMG_6862.jpg
IMG_6863.jpg

20대의 나는, 한번 삼킨 여물을 뱉어내어 다시 씹어내는 소와 비슷했다.

작은 행동, 사소한 말 등 지나간 모든 것을 곱씹고 자책하곤 했다.


그런 나를 정신차리게 한 건, 발췌한 위의 대목들이었다.


한 방향으로 향하는 시간의 화살 위에서

인간은 과거로 돌아갈 수 없고 그러므로 다른 선택지의 결과도 알 수 없다.


모르지 않았음에도, 새삼 깨닫게 된 거다.

무언가 기존 세계가 깨진 느낌에 더불어, 이런 변화가 찾아왔다.


그러므로 스스로의 선택에 대해 우수/미달이라는 평가를 하는 것 대신

(어차피 확인할 수 없으므로) 최선의 선택이었을 거라는 믿음만이 남게 되었다.


나를 일깨운 대목은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책의 첫장에 있던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


IMG_6861.jpg?type=w966

einmal ist keinmal이 니체의 영원회귀와도 맥을 같이 한다고 생각했다. (einmal ist keinmal의 '한 번'과 영원회귀의 '인생'이.)

이 사상은, 인생은 짧고 순간은 영원하다 말하는데

이를 이해하는 순간 무언가 머리를 탁 치고 지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똑같은 삶이 무한히 반복되므로

짧은 인생에 얽매이기 보다, 영원한 순간에 집중하라는 것.

지금 이 순간에 슬퍼하고 후회하면 돌아오는 이 순간에도 또 똑같이 슬퍼하고 후회하고 있을 것 아닌가.


그때부터 순간에 집중할 수 있었고,

순간을 만끽하는 기쁨과 즐거움을 깨달았다.



'한 번은 중요하지 않다. 한 번이면 그것으로 영원히 끝이라는 것.'과 니체의 '영원회귀'는

후회와 자책으로 가득찬 비관에서 나를 해방시켰다.

믿음과 나아감, 긍정으로 채워진 밝은 세상으로 진입한 감각이었고, 비로소 평화가 들어찼으니까.


걱정인형이 지배하는 집에서 나고 자랐기에

걱정, 고민, 후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도 못한 내게

이건 삶의 전환, 인생의 분기점이나 다름 없었다.


잘못을 곱씹고, 후회하고, 과거의 선택지를 떠올리고, 자책하며

스스로를 갉아먹는 사람에게

그 어떤 자기계발서나 에세이보다 이 책이 효과 좋을 거라 추천한다.




삶의 무게에 관한 토마시의 가치관은 흥미롭지만, 난잡한 성생활에는 공감하기 어렵다고 했는데. 모든 인물이 그랬다.

어느 정도는 비슷한 면이 있지만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부분도 동시에 존재했던 테레자, 사비나, 프란츠.


이것들은 모두 책에 쓰인것처럼 ‘나 자신의 가능성들(p.341)’이었다.


네 명의 인물 중 누구의 신념과 가치관에

어느 정도 비율로 근접한지 대입해보며 읽는 것도 재미있다.




철학적인 내용치고 술술 읽히는 책이었으나

마냥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멈춰서서 생각하며 읽으면 좋다.

하지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고민을 해보긴 하되 그래도 안 되면 과감히 넘어가는 것을 추천한다. (읽다보면 저절로 이해되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진도가 안 나가 읽기 싫어질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첫페이지 니체의 영원회귀에서 하차 선언을 한 것처럼,,


나는 6장이 가장 안 읽혔는데, 자주 언급되는 '키치'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전체주의,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동의, 틀릴 가능성 없다는 확신과 단언.. 정도로 보면 되는 걸까.

매거진의 이전글이 사회에 필요한 것 - 신형철<슬픔을 공부하는 슬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