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해야 할 모든 업무를 마치고 온 데다, 고객의 급박한(?) 연락도 없어서 거리낄 게 없었다.
몸도 마음도 가벼운 상태에서 오래간만에 스노쿨링을 하기로 했고, 스노쿨링 포인트로 가는 길에 코나커피 퍼베이어스에 들렀다.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줄을 선다는 곳이지만, 웬일인지 대기줄이 거의 없어서 금세 커피를 주문할 수 있었다.
테라스석에 앉아 하늘 한번 바라보고, 코나커피 향을 맡다가 호로록- 하고 마시는데,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었다. 완벽했다.
와이키키 해변을 걸을 때는 방수팩 속에 넣어둔 휴대폰을 자꾸만 꺼내고 싶었다. 깨끗한 하늘과 시원스레 내리치는 파도, 한껏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어우러진 이 광경을 분명 나중에 꺼내보고 싶을 테니까. 그러나 수심이 가장 얕아지는 간조 시간에 맞추려면 발걸음을 서둘러야 했다. 결국 사진은 거의 찍지 못했는데, 미련 없이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뭐, 어차피 스노쿨링이 끝날 시간 또한 한낮일 테니 말이다.
도착한 스노클링 포인트는 산호와 바위가 많은 곳이었다. 맨발로 걸으면 발이 무척 따갑고 미끄러지기 일쑤라 크록스를 신어야 했다. 제법 걸어 나가니 수영할 만한 지점이 나왔다. 스노클 안경을 착용하고 바닥을 살펴보았다. 바위 끄트머리에서 갑자기 확 깊어지는, 바닷속 낭떠러지 같이 보였다. 그렇다 해도 큰 감흥은 없었다. 물에 들어갈 준비를 마치고 곧 입수했다.
음, 왜 이렇게 물고기가 없는가 -
이곳이 바다이긴 한 건지, 마치 대형 어항에 혼자 들어가 있는 기분이었다.
예전처럼 물고기도 많이 볼 수 있고, 거북이랑도 인사(라고 쓰지만 눈 마주친 후 각자 갈 길 가는) 하려면 더 깊은 곳으로 가야 하나 싶었다. 밑져야 본전, 가보지 뭐.
제법 헤엄을 쳤는데도 여전히 혼자였다.
고개를 살짝 들어 해안 쪽을 살펴보았는데, 응? 생각보다 멀리 왔다.
이렇게까지 왔는데도 없다니? 여기서 더 멀리 가면 나중에 돌아갈 체력이 남아있을지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 아쉬워도 돌아가야 했다.
그런데 왜 자꾸 장비에 물이 들어오는 느낌이 드는지. 눈을 뜨는 게 점점 더 불편해졌다.
이물감이 들었고 답답했다. 살짝 수경을 들어 물을 빼내려고 했다.
풍-덩.
그 순간 몸이 바로 가라앉았다. 장비가 튜브의 기능을 하고 있던 셈인데, 수영을 못하는 사람도 아니니 별생각 없이 한 행동이었다. 시야를 확보하기는 (당연히) 더욱 어려워졌고, 순간적으로 호흡을 못하자 당황했다.
전날 저녁까지 풀장에서 물안경 없이 수영했던 나였다. 비록 수영장에서 하는 수영과 바다에서의 수영이 다르다고는 해도 눈도 뜨려면 뜰 수 있고, 물에 뜰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멘탈이 나갔다는 사실.
바다에서 물안경없이 수영을 해본 경험이 없어서 더 두려웠다.
두려움은 눈을 뜰 시도조차 못하게 만들었고, 순간적인 당혹감 때문에 쓸데없는 힘만 잔뜩 들어가면서 몸이 물에 뜰 수가 없었다.
TV에서 본 것처럼 'Help!'하고 외쳐볼까?
물에 빠진 사람이 해변을 향해 '사람 살려!'를 외치는 장면이 떠올라서 시도를 해보았다. 그리고 그 씬이 전혀 현실성 없단 걸, 확실히 알았다. 뭘 말하려고 하는 순간, 풍-덩이다. 살려줘의 '살'이라도 말하면 다행이게. ('ㅅ'나 'ㅅ ㅏ' 정도까지는 아주 찰나에 가능할 수 있다. 그 이상 말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본다)
생각해 보면, 육지에서 발 딛고 있을 때도 웬만큼 큰 소리가 아니라면 안 들리고 들려도 무슨 말인지 명확하게 알기 어렵다. 하물며 바다에서는 오죽하랴.
아무튼 나는 가라앉고 있었다.
고등학교 국사 수업 시간이었나, 죽을 때 느끼는 고통 수준에 관해 들었던 게 갑자기 떠올랐다.
거기에 익사가 고통 순위 몇 위였더라? 생각보다 높은 순위였는데. 확실히 고통스럽긴 했다.
그런데도 상황 자체가 여전히 현실같지가 않았다. 그 와중에 '바닷물을 다 마실 수 있는 초능력이 있다면 괜찮을까?'하고 상상하고 있었다. 그러다 '아, 사람이 이런 식으로 가는 거구나?' 생각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