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와 블로그를 다시 읽는 시간, 과거의 나를 통해 단단해진다
어쩌면 여행지에서 무엇보다 마주하고 싶은 건, 건강하고 빛나던 나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지치지 않은, 일상에 감사하고 관계를 소중히 하던, 조금 더 적극적이고 마음을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어제의 나를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낯선 여행길을 떠나면 일기장을 가지고 간다. 나는 매일 일기를 쓰는 사람은 아니다. 일상생활을 할 때는 일주일, 혹은 이주에 한 번씩 손으로 일기를 쓴다. 월 달력에 있었던 일을 사실적으로 대략 적어두고, 나중에 그때의 감정 중 기억나는 - 기억하고 싶은 - 감정을 복기해 쓴다. 사실적 정보는 장소와 사람, 시간적 정보와 사진으로 추억되지만 감정은 기록하는 활동을 통해 추억한다. 내 일상을 충만하게 하는 것들은 그렇게 쓰이고, 내일의 나에 의해 읽힌다.
대학생 때 내일로 기차여행을 하면서, 기차 칸 사이에서 일기장을 읽었다고 한다. 특별할 것도 새삼스러울 것도 없어 의식하지 못했는데, 얼마 전에 만난 친구가 이야기해줬다. 우리는 입석이었지만 기차 칸에 자리가 없어 통로 바닥에 앉아있었다. 그 친구랑 다른 친구는 셀카 찍으며 놀고 있는데 나는 일기를 읽고 있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에도, 우리는 여행 중이었고 내 가방에는 일기장이 들어있었다. 친구를 만나기 전날 밤에도 밀린 일기를 쓰고 읽었다.
초등학생 때는 숙제의 개념으로 일기가 있었고, 중학생 때 선물 받은 다이어리 덕분에 자발적으로 일기 쓰기에 재미를 붙였다. 일기들을 잘 보관하다가, 작년에 중학생 때 일기장들은 일부만 사진 찍어 기록하고 버렸다. 언제까지고 과거를 반추하며 살 수는 없다. 그때의 기억과 배움과 기쁨이 누적되어 나를 구성하고 있으므로 나 안에 그 일부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20대인 나는, 치열하게 진로와 삶에 대해 고민했던 고등학생 시기의 일기는 차마 손대지 못했다. 꿈꿨고, 좌절했고, 기뻐했고, 슬퍼했고, 질투와 선망과 은근한 애정과 흠모가 담겨있던 그 시간의 기억은 아직 너무 강렬하다. 언젠가는 이때의 감정과 기억도 충분히 숙성되어 떠나보낼 용기가 생길 것이다.
세상에 대해, 사람에 대해, 자연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아 끊임없이 무언가를 읽고 보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은 그 속에서 내가 무엇을 느끼고 깨달았는지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여행 중 일기를 읽으며, 자극과 정보가 넘쳐나는 속세와 거리를 둔다. 한 발짝 뒤로 물러나 가까운 현재의 나는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반추한다. 모든 것을 기록하지도 기억 하지모 못할 것이지만, 나라는 존재를 온전히 바라보는 그 시간은 내면의 단단한 힘과 확신을 준다.
나는 읽고 기록하는 걸 좋아한다. 차분하고 꼼꼼한 성격이기는 하지만, 뭔가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자신이 없다. 주변 환경에서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고 사람에 따라 반응도 달리 해야 한다. 많은 데이터를 습득하고 패턴을 분석하여 내게 맞는 반응 양식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그래서 일단은 세세한 부분도 기록하여 데이터화한다. 언젠가 내가 적절한 순간에 과거의 나의 지혜를 빌어 이겨낼 수 있도록 말이다.
가끔 블로그에 댓글이 달린다. ‘힘든 순간에 선생님 글을 보고 위로와 공감을 많이 얻고 갔어요.’ 몇 년이 지난 글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어떤 점에서 통할 수 있었던 걸까. 가끔씩 한 번 더 내 글을 읽어본다. 아, 이때 나는 참 건강한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보다도 성숙하면서 열린 시각, 세상에 대한 도전 정신, 관계에 대한 깨달음을 과거의 나에게서 배운다. 기록해두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나누지 못했을 것이다. 이를 통해 더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일생동안 성장한다고는 하지만, 어떤 정신적 기질은 고점을 찍는 시기가 따로 있을지 모른다. 어릴 때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배움의 즐거움이, 젊을 때는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정신과 성취가 주는 희열이 더 크게 와닿듯이. 그때 글로 남긴 내 생각은 내 정신적 기질의 전성기였을 것이다. 건강한 마음의 명예의 전당 같은 그곳에서, 나는 나를 읽고 나를 통해 세상을 더 크게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