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에 안 익어서 몰랐을 뿐,
결국 귀가 트인다

수술실의 직업 용어와 집도의의 말을 학습하는 시간

by 간호사K

귀에 안 익어서 몰랐을 뿐, 결국 귀가 트인다

현장에서 쓰는 말들을 직업 용어, 현장 용어라고 흔히 부른다. 처음 수술실 간호사로 일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배우고 익히는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리지도 않는 점'이 문제였다. 인지 과정에서 알지 못하는 언어, 예상하지 못한 단어기 때문에 한국어로 발화된 말을 들어도 '???'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귀로 들었으니 감각적으로는 순간 인지했으나, 의미를 몰라 인지적인 이해 불가 상태다.


스크럽 간호사로 멸균 영역에서 집도의와 수술을 하다보면 집도의가 웅얼거리는 말을 알아듣기 힘든 때가 있다. 특히나 수술 흐름을 잘 모르던 신규 시절에 심했는데, 지식과 경험 부족으로 예측이 불가능하니 유추도 힘든 것이다. 신규의 눈에는 집도의가 조직을 잡고 박리하고 있는지, 피가 나서 핏줄을 먼저 지혈하려는지 잘 안 보인다(게다가 수술 필드를 살펴보고 먼저 반응할 여유가 잘 없다).


그래서 같은 모음 구성의 단어들을 들으면 특히 헷갈리곤 했다. 예를 들면 '모기'와 '보비'의 경우. 작은 곡선형 겸자로 조직을 박리하거나 임시로 결찰하여 집어둘 때 쓰는 '모기(mosquito, 모스키토)'와 '보비(bovie, 전기소작기)는 목적과 용도가 아예 다르다. 직접 말을 해보면 이게 잘못 들리나 싶지만, 집도의의 말과 수술 흐름에 익숙하지 않은데 긴장이 더해지면 말귀를 알아듣기가 힘들다. 수술실은 마스크를 쓰고 일해 발화가 뭉그러지는데다 장시간 수술하고 있는 집도의가 크고 또렷한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집도의 외에 수술에 참여한 의사, 스크럽 간호사 등의 수술 팀원들은 종종 집도의에게 반응이 느리다고 '집중 좀 하세요!'라며 혼난다. 그러다 점차 수술 흐름을 읽어가고 그의 언어 습관을 익히며 손을 맞춰가며 성장한다.


예전에 교육심리학에서 배웠던 것 같은데, 사람의 시각적 인지는 인지 처리 과정보다 빠르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어떻게 느꼈냐면, 휴대폰 본인인증 번호를 보내면 순간 슬쩍 보고 번호를 치지 않는가. 이 때 짧게 순간 바라보고(시각적 인지, 자극 수용) 머릿속에서 복기하며 쳐내는 과정(지각적 조직화같은 반응 과정)을 겪는다. 바라본 순간 이것을 외우는 것이 아니고, 이 정보가 전해지면서 초단기 암기가 가능해지는 기분이랄까.


우리가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은 청각적 자극은 수용했지만 이해하고 복기하는 인지 과정에 오류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수술 과정에 사용하는 용어에 대한 지식 부족과 수술 흐름에 대한 이해 미숙으로 유추가 미흡했기 때문에 말이다. 시간이 지나다보면 지식과 경험이 더해져 '그거 있잖아요, 그거. 이거 할 때 쓰는... 아 뭐더라.'하는 집도의들에게 먼저 'A 기구 찾는 거 맞으세요? A' 수술할 때 자주 쓰는데 a 용도로 쓰는 기구에요.'라고 말할 수도 있게 될 것이다.


'저는 선생님들이 하는 말도, 집도의가 하는 말도 못 알아듣겠어요. ㅠㅠ'라며 고민한다면, 결국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수 밖에 없다. EMR과 수술 간호 기록을 통해 수술 용어와 기구, 재료들의 단어를 익혀가고, 문맥상 어떤 흐름으로 어떤 상황에서 자주 사용하는지 꾸준히 공부하자.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귀에 익을 정도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중요하다. 거기에 더해 같이 일하는 사람이 하고 있는 행동을 관찰하다보면 다음 과정에서 어떤 것을 필요로 할 지 예측하여 말하지 않아도 착착해내는 뿌듯한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